
“글을 읽을 때도, 운전할 때도 사물이 두 개로 보이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가끔 그러다 말았는데, 요즘은 증상이 점점 심해지고 있네요.”
부산에 사는 60대 중반 윤모 씨(여)는 약 한 달 전부터 시작된 복시(複視) 증상으로 불안하다. 사물이 겹쳐 보이다가 다시 하나로 보이기를 반복하는 이 증상, 단순한 노화나 눈의 문제라고 치부하기엔 뭔가 굉장히 꺼림칙하다. 평소 백내장 치료를 해주던 안과 전문의는 그에게 뇌 MRI 검사 받아 보길 권했다.
복시, 단순한 눈의 피로가 아니다?
이런 증상은 일시적인 눈의 피로나 과로로 인해 잠깐 나타날 수는 있다. 하지만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복시는 심각한 건강 경고 신호다. 특히 중년 이후 갑자기 발생한 복시는 뇌졸중, 뇌종양 등 뇌신경계 질환, 또는 자가면역 질환의 초기 증상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 눈 움직임은 뇌신경에 의해 정교하게 조절된다. 특히 안구 운동을 담당하는 뇌신경(3번, 4번, 6번)이 손상되면 양쪽 눈의 협응이 깨지면서 복시가 발생한다. 한쪽 눈을 가리고, 다른 한쪽만 봤을 때 겹쳐 보이는 난시, 백내장, 망막 황반 이상 등 안과적 문제와는 차이가 있다. 두 눈을 뻔히 뜨고 있는데도 상이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갑작스러운 복시와 함께 두통, 어지럼증, 구토가 동반될 땐, 즉시 119를 불러 응급실로 달려가야 한다. 뇌졸중의 전형적인 전조 증상(FAST), 즉 F(Face, 얼굴 한 쪽이 처침), A(Arm, 한쪽 팔과 다리에 힘이 쭉 빠짐), S(Speech, 말이 어눌해지고 발음이 부정확해짐)가 있을 땐 즉시 T(Time, 이런 증상이 하나라도 있으면 즉시 119 구급차 호출)해야 하기 때문.
“안과에서 이상이 없다고 한다면...이 때 의심해야 하는 것은?”
윤 씨처럼 안과 검진에서 백내장이나 안구건조증 같은 안과적 문제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복시라면, 반드시 신경학적 검사가 필요하다. 뇌졸중의 경우, 증상 발생 후 3~4.5시간 이내가 치료의 골든타임이다. 복시가 뇌졸중의 유일한 증상일 수도 있기 때문에, “눈이 좀 이상하네” 하고 그냥 넘기다가는 치료 시기를 놓칠 수 있다.
특히 고혈압, 당뇨병 환자라면 더 위험하다. 여기에 ▲심혈관 질환 병력이 있는 경우 ▲흡연자 ▲고령(60세 이상) ▲고지혈증 비만인 경우도 위험하다.
하지만 빠뜨리지 말아야 할 것은 자가면역 질환일 수 있다는 사실. 면역체계가 자신의 몸을 공격하는 ‘오작동’ 상태다. 특히 중증근무력증(重症筋無力症)의 60%는 눈 근육에서 증상이 시작된다. 눈꺼풀 처짐과 복시가 대표적이다. 환자의 면역 체계가 신경근육접합부의 아세틸콜린 수용체를 공격하는 항체를 생성하여, 신경 세포와 근육 간 통신에 장애가 발생한다.
근육 피로와도 관련이 깊다. 자고 일어난 아침이나 낮보다는 피로가 누적된 야간에 안검하수 및 양안성 복시 증상이 심해지는 특징을 보이는 것은 그런 때문.
자가면역 질환의 일종인 ‘갑상선안병증’(甲狀腺眼病症)도 복시를 유발할 수 있다. 눈 주변 근육이 붓는 질환인데, 침범된 근육에 따라 사시와 복시, 안구돌출증을 불러온다. 갑상선기능항진증이나 류마티스관절염 등 다른 자가면역질환과 함께 오기도 한다.
뇌졸중과 자가면역 질환(중증근무력증) 차이는?
하지만 이들 자가면역질환은 뇌졸중과는 다른 특징이 있다. 자고 일어난 아침엔 증상이 별로 없다가 오후로 갈수록 증상이 심해진다. 뇌졸중은 시간과 상관없이 일정하게 두통, 어지럼증, 팔다리 마비, 언어장애 등이 함께 나타나는데, 자가면역 질환은 좋았다 나빴다를 반복한다. 서서히 진행하며, 한 달 이상 지속하는 특징도 있다.
과거에는 중증근무력증으로 인해 사망하는 환자도 많았다. 다행히도 지금은 적절한 치료약의 개발로 대부분 환자가 정상 생활이 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
봉생기념병원 신경과 손환준 과장은 “복시 증상이 한 달 이상 지속되며 점점 심해진다는 것은 반드시 정밀 검사가 필요한 상황이라는 것”이라며 “갑작스럽게 발생했다면 뇌졸중을 의심하며 즉시 응급실을 방문해야 하고, 서서히 진행되면서 오전보다는 오후에 더 심해지고 휴식 후 좋아지는 패턴이라면 중증근무력증 같은 자가면역 질환을 더 의심해봐야 한다”고 했다. 물론 두 경우 모두 조기 진단과 치료가 예후를 크게 좌우한다.

이처럼 눈에서 시작되는 증상이라고 모두 안과 문제는 아니다. 특히 복시는 건강에 중요한 경고 신호일 수 있다. 특히 중년 이후 갑자기 나타난 복시,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는 것은 그런 때문. “설마 나는 아니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