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지방'도 잡고 '혈관 재생'도 한 번에?
서울아산병원 연구진, 'CTRP9'의 동맥경화 치료 활용 가능성 규명
'좋은 지방세포'에서 분비되는 'CTRP9'라는 물질을 동맥경화 치료제로 활용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기존에 '비만 치료제'로도 연구돼왔던 만큼 조만간 약 하나로 비만과 심혈관 질환을 함께 치료할 가능성이 열렸다.
이는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김영학 교수와 서울아산병원 울산의대 융합의학과 하창훈 교수팀의 연구 결과다. 연구팀은 CTRP9이 우리 몸의 지질대사뿐 아니라 '혈관 신생성'(기존의 미세혈관으로부터 새로운 모세혈관이 생겨남)에도 관여해 혈관 건강에도 밀접하게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입증했다.
CTRP9은 지방세포에서 분비되는 세포신호물질인 아디포카인(adipokine)의 한 종류다. 아디포카인은 우리 몸의 신진대사와 면역 반응 등에 관여하는데, 몸 상태에 따라 조금씩 다른 종류의 아디포카인이 나온다.
이 중에서도 CTRP9은 우리 몸이 적당한 체중을 유지하게 도와주는 '착한 아디포카인'에 속한다. 지방세포가 비만이 아닌 정상적인 상태일 때 많이 분비하는 CTRP9은 종전까진 지방산 합성을 억제하는 작용으로 잘 알려졌다. 따라서 기존 연구는 비만과 당뇨 등의 대사질환에 대한 예방·치료제 활용에 집중했다.
연구팀은 분자생물학적 구조 분석을 통해 CTRP9이 지방산 합성 억제뿐 아니라 심혈관 건강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판단했다. 비만과 혈관 건강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지방산 합성이 활발해지면 체내 지질 흡수량이 증가해 '나쁜 지방'도 늘어나고 살이 찌기 쉽다. 이때 혈관 속에는 자연스럽게 나쁜 콜레스테롤인 'LDL 콜레스테롤'도 더 많이 쌓이면서 혈관이 좁아진다.
이 상태에서도 계속해서 건강 관리에 소홀한다면, 혈관이 딱딱하게 굳어지는 질환인 '동맥경화'로 이어지고 우리 몸은 비만과 당뇨와 같은 대사질환에 더욱 취약한 상태가 된다. 이는 다시 혈관 건강에 악영향을 끼쳐 동맥경화를 가속화하고 심각할 경우 돌연사를 불러오는 심근경색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가설은 실제 여러 실험을 통해 입증했다. 먼저 실험실에서 배양한 인간 탯줄 유래 혈관내피세포에 CTRP9을 처리한 결과 모세혈관이 약 50%나 새로 생겨나(혈관신생) 혈관이 더욱 건강하고 튼튼해졌다. 즉, 혈관을 구성하는 미세한 모세혈관이 꾸준히 재생(혈관내피세포의 밀도 증가)하면서 혈액순환 기능이 정상적으로 유지됐다(혈관 항상성)는 의미다.
실험용 쥐를 이용한 동물실험에서도 마찬가지다. CTRP9 유전자를 제거했을 경우 혈관 신생은 CTRP9 제거 전보다 80% 감소했다. 실험용 쥐에게 동맥경화를 유발시키고 CTRP9을 투여했을 땐 동맥경화 정도가 약 40% 완화했으며, 심근경색을 유발시켰을 떈 심근경색으로 인한 좌심실 허혈성 손상 증상이 62% 감소했다.
마지막으로 서울아산병원에서 실제로 치료를 받은 동맥경화 환자 100명의 혈액시료를 분석했다. 그 결과 잠재적인 관상동맥질환(동맥경화증, 협심증 등) 환자군과 심근경색 환자군의 혈중 CTRP9 수치는 정상인보다 70%나 감소한 상태였다.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김영학 교수는 "전 세계 최다 사망 원인 중 하나가 심혈관 질환일 정도로 그간 임상 현장에선 새로운 동맥경화 치료제 개발에 대한 요구가 절실했다"면서 "이번 연구로 CTRP9을 표적으로 하는 새로운 동맥경화 신약을 개발할 수 있는 단초가 마련됐다"고 설명했다.
서울아산병원 울산의대 융합의학과 하창훈 교수는 "이번에 CTRP9이 혈관신생에 관여한다는 점을 새로 밝혀내면서 스타틴과는 기작 자체가 다른 새로운 동맥경화 치료제를 개발할 기반을 마련했다"면서 "일단은 이번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심혈관 질환을 예방할 수 있는 위험성 예측 지표(바이오마커)로 CTRP9을 활용하는 방안을 먼저 연구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는 한국연구재단 보호연구과제의 지원을 받아 진행했으며,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의 자매지인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 IF=14.980)’ 최근호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