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중해 식단을 비롯한 건강 식단을 아무리 먹어도 초가공식품 즐기면 효과 없다.’
호주에서 치매가 없는 40~70세 성인 2192명을 대상으로 초가공식품 섭취와 인지기능 및 치매위험 간의 상관관계를 조사한 결론이다. 호주 공립대학인 모나시대와 디킨대, 그리고 브라질 상파울루대 보건대학원이 공동연구한 결과다. 연구 내용은 최근 국제학술지 ‘알츠하이머병 및 치매: 진단, 평가 및 질병 모니터링(Alzheimer’s & Dementia: Diagnosis, Assessment & Disease Monitoring)’에 발표됐다.
초가공식품은 정제된 식재료와 화학적 첨가제로 중심을 이루고 자연식품 함량이 최소한으로 줄어든 산업적 제조 식품을 가리킨다. 가공육·스낵·탄산음료·즉석조리식품 등이 해당한다. 가공식품은 최근 식품산업계의 적극적인 마케팅과 간편식을 찾는 생활습관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고 있다. 초가공은 식품의 맛과 보관성을 높여 생활을 편리하게 해주는 측면도 있다. 문제는 초가공식품 섭취가 심혈관 질환, 제2형 당뇨병, 비만 등 30가지 이상의 육체적 건강 문제와 연관돼 있다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초가공식품의 확산은 전 세계인 보건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현재 초가공식품은 특히 미국·영국 등 고소득 국가에서 전체 음식물 섭취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미국에서 그 비율은 약 55%나 된다. 호주에서는 약 42%를 차지한다. 저소득·및 중소득 국가에서도 초가공식품 섭취가 꾸준히 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초가공식품이 최근 들어 인지능력을 떨어뜨리고 치매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의심도 받고 있다. 연구팀은 초가공식품 섭취가 인지 기능 및 치매 위험 점수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를 살피는 한편, 이러한 연관성이 식단의 전반적인 품질과는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조사했다. 연구팀은 치매 진단을 받지 않은 40~70세 호주 성인 2192명을 대상으로 ‘코그스테이트 간이검사(CBB)’로 인지능력을 검사하고, ‘CAIDE 도구’로 치매 위험도를 살펴봤다.
CBB는 치매·알츠하이머·경도인지장애 등 다양한 신경학적 질환과 관련된 뇌 건강 및 인지 기능을 10~15분 만에 알아보는 인지 평가 도구다. 집중력(시각 주의력)과 시각학습능력, 작업 기억, 정신운동 기능 등 4가지 핵심 인지 영역을 검사한다. CAIDE 도구는 연령·교육수준·체질량지수(BMI)·혈압과 콜레스테롤 수치, 흡연 여부, 신체 활동량 등을 종합적으로 점수화해 치매와 심혈관질환 위험도를 평가한다.
아울러 연구팀은 참가자들의 식단을 식품 섭취 빈도 설문지를 이용해 파악하고 ‘노바(NOVA) 시스템’으로 분류패 초가공식품 노출 정도를 살폈다. 노바 시스템은 식품을 가공 정도와 목적에 따라 4개의 집단으로 나누는 식품 분류 체계다. 브라질 상파울루대에서 2009년 개발해 전 세계적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노바 시스템 분류에 따른 제1군은 영양소나 본질이 변하지 않는 선에서 세척·살균·건조 등 최소한의 처리만 거친 미가공·최소가공 식품이다. 과일·채소·생선·우유·달걀·생고기 등이 해당한다. 제2군은 제1군의 식품을 압착·정제·분쇄해 만든 것으로 제1군을 조리할 때 쓰는 식품이다. 식물성 기름이나 버터·설탕·소금 등이 해당한다.
제3군은 가공식품으로, 제1군 식품에 제2군 식품 1~3가지를 첨가해 보존성을 높이거나 맛을 좋게 만든 식품이다. 빵·치즈·통조림, 소금에 절인 육류나 생선이 포함된다. 제4군은 초가공식품으로, 착색료·향료·유화제 등 가정요리에선 거의 쓰이지 않는 화학적 첨가물을 거하든지 여러 산업적 공정을 거친 식품이다. 소시지 같은 가공육·스낵·탄산음료·즉석조리식품 등이 해당한다. 제4군은 이미 당뇨·비만 등 각종 질환과 관련이 깊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연구팀의 분석 결과 초가공식품의 섭취량이 10% 증가할 때마다 인지력 점수는 0.05점이 낮아졌으며 치매 위험은 0.24점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초가공식품을 먹으면 주의력이 떨어지고 사고 처리 속도가 느려진다는 이야기다. 통계적인 분석에 따르면 초가공식품을 더 많이 먹을수록 인지능력 저하와 치매 위험은 더욱 많이 떨어졌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초가공식품을 섭취하면 성인병 예방 등에 좋다는 지중해식 식단 등 건강식을 꾸준히 먹더라도 인지력 저하와 치매위험 증가가 변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UPF 섭취량에 따른 인지력 저하와 치매위험 증가는 전반적인 식단의 품질과 관계없다는 이야기다. 달리 말하면 건강한 식단을 병행해도 위험이 상쇄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다만, 초가공식품을 섭취하더라도 기억력에는 별 영향을 주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초가공식품을 즐기는 것이 기억력 감퇴 등 당장 스스로 느낄 수 있는 문제의 발생 없이 인지 능력을 조용히 낮출 수 있다는 의미다.

연구팀에 따르면 초가공식품이 인지능력을 떨어뜨리고 치매위험을 늘리는 원인은 다양하다. 우선 식품 초가공은 재료의 본래 조성을 무너뜨리고 비타민·미네랄과 몸에 좋은 천연화학물질 등 본연의 건강 성분을 감소시킨다. 초가공 과정에서 식품포장재 등에서 유래한 비스페놀, 플라스틱을 부드럽게 만드는 가소제에서 나온 프탈레이트 등 환경호르몬과 식품 고온조리에서 생기는 아크릴아미드 등 잠재적 유해물질이 식품에 함유돼 신경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게 연구팀의 지적이다.
아울러 초가공식품은 당뇨·고혈압·비만·고지질혈증 등 만성 질환의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는데, 이들 질환은 전 세계 치매 사례의 약 12%에서 동반된다. 이런 질환을 앓는 사람에게 치매가 많이 생긴다는 뜻이다.
결론적으로, 연구팀은 “식품 가공이 인지 기능 저하에 뚜렷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확인했다”며 “영양소 구성뿐 아니라 가공 정도까지 감안해 최적의 인지기능 유지 식단지침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보건복지부(HHS) 장관은 초가공식품을 ‘독’으로 규정하고 강력한 퇴출 캠페인을 주도하며 국가 차원의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케네디 장관의 생각은 지난 1월 7일 발표된 미국 보건부와 농무부가 함께 발표한 ‘2025∼2030년 미국인을 위한 식단 지침’에도 반영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