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무심코 집어 드는 라면, 과자, 탄산음료 등 ‘초가공식품(Ultra-processed foods)’이 인체의 모든 주요 장기에 해롭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초가공식품이 뇌와 심장, 간 등 인체의 거의 모든 장기를 손상시키고, 12가지가 넘는 만성질환과 조기 사망 위험까지 높인다는 것이다. 세계 보건 전문가들은 초가공식품에 담배에 준하는 강력한 규제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세계 최고 권위의 의학 학술지 《란셋(Lancet)》은 최근 발표한 세 편의 시리즈 논문을 통해 전 세계 43명의 최고 전문가가 참여한 초가공식품 연구 결과를 공개했다. 이는 지금까지 진행된 연구 중 가장 큰 규모다.
연구진이 2016년부터 8년간 발표된 104건의 대규모 장기 추적 연구를 종합 분석한 결과 92건의 연구에서 초가공식품 섭취가 최소 하나 이상의 만성질환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 중 78건은 통계적으로도 뚜렷한 연관성을 보였다. 연구진은 “현재까지 축적된 과학적 증거만으로도 즉각적인 공중 보건 조치가 요구되는 수준”이라고 경고했다.
초가공식품이란 공장에서 대량 생산되며, 인공 첨가물과 정제된 원료로 만들어진 식품을 말한다. 영양은 거의 없고 열량만 높아 ‘빈 껍데기 칼로리(empty calories)’의 주범으로 꼽힌다.
문제는 이런 식품이 이미 우리 식탁을 점령했다는 사실이다. 미국, 영국 등 서구권에서는 이미 전체 식단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젊은 층과 저소득층에서는 80%에 육박한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1998년 12.9%에 불과했던 한국인의 초가공식품 섭취 비중은 2018년 32.6%로 20년 아시에 2.5배 급증했다.
연구에 따르면 초가공식품은 식단 전체의 질을 망가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을 포함한 13개국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초가공식품 섭취가 늘수록 만성질환의 원인인 설탕과 포화지방 섭취는 늘고 건강에 이로운 식이섬유와 단백질 섭취는 줄었다. 식단에서 초가공식품 비중이 10% 증가할 때마다 하루 총열량 섭취가 약 35㎉씩 늘어나는 효과도 확인됐다.
연구진은 전 세계에 초가공식품이 범람하게 된 배경으로 연간 1조9000억달러(약 2800조원) 규모의 시장을 주무르는 거대 식품 기업들의 공격적인 마케팅과 정치적 로비를 지목했다. 이들이 막대한 이윤을 위해 인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연구진은 초가공식품의 위협을 막기 위해 구체적이고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연구팀이 제시한 규제는 ▲제품 포장 전면에 ‘초가공식품’ 여부 명시 ▲어린이 대상 광고 제한 ▲학교·병원 등 공공기관 내 판매 금지 ▲설탕세·소금세 부과 등이다. 실제로 최근 유럽연합(EU)은 초가공식품 대상 세금 신설을 추진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신중론도 제기된다. ‘초가공식품’이라는 분류 기준이 건강상 위험과 꼭 직결되지는 않는다는 지적이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지지하는 초가공식품 분류법인 ‘NOVA 분류’에 따르면 무첨가 두유나 대체육 소시지, 대체당을 사용한 단백질 음료 등 상대적으로 건강에 긍정적인 것으로 알려진 식품까지 모두 초가공식품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연구진은 “추가 연구를 기다리며 대응을 늦출 이유는 없다”며 즉각적인 정책 개입을 재차 강조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위트워터스랜드대 카렌 호프만 교수는 “과거 담배산업의 막강한 영향력에 맞서 싸웠던 것처럼, 이제는 초가공식품 기업들의 과도한 힘을 견제하기 위한 국제적 공조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