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이가 같아도 어떤 이는 90대까지 건강하게 생활하는 반면, 또 다른 이는 수십 년 앞서 당뇨병, 알츠하이머병, 심혈관질환과 같은 만성질환에 시달린다. 최근 국제 공동연구가 이러한 차이를 설명할 수 있는 유전적 단서를 발견했다.
과학전문매체 사이언스데일리 등의 보도에 따르면 미국 콜로라도대 볼더캠퍼스 연구팀은 ⟪네이처 제네틱스(Nature Genetics)⟫에 발표한 논문에서 ‘허약함(frailty)’과 연관된 408개 유전자를 새롭게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는 기존에 알려졌던 37개 유전자보다 10배 이상 많은 수치다. 연구진은 노화가 단일 현상이 아닌 여러 하위 유형으로 나타나며, 각 유형에 따라 관여하는 유전자 집단이 다르다는 점을 제시했다.
‘허약함’의 다면성...노화를 치료해야 질환도 예방한다
연구가 주목한 ‘허약함’은 노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다기관 생리적 기능 저하를 총칭한다. 미국에서는 65세 이상 인구의 약 40%가 허약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동일한 허약 점수를 받더라도 어떤 사람은 신체적으로 건강하지만 기억력이 저하돼 있고, 또 다른 사람은 인지 기능은 정상이지만 걷기가 힘든 경우가 있다. 이처럼 노화의 양상이 다양하다는 점은 원인 규명과 맞춤형 치료에 큰 장애물이 돼왔다.
연구팀은 영국 바이오뱅크 등 대규모 공공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된 수십만 명의 유전체와 건강 정보를 분석하는 전장유전체연관분석(GWAS)을 실시했다. 그 결과, 인지 저하·대사 장애·다중 질환·신체 장애·사회적 고립 등 6가지 유형에서 각각 연관된 유전자 집단을 확인했다. 예컨대 면역 기능 및 알츠하이머병과 관련된 SP1 유전자는 ‘인지 저하’와 밀접한 관련을 보였으며, 비만과 관련된 FTO 유전자는 여러 하위 유형에 동시에 영향을 미쳤다.
이번 연구는 ‘노화를 치료해야 만성질환을 예방할 수 있다’는 제로사이언스 가설(geroscience hypothesis)을 지지한다. 콜로라도대 행동유전학연구소 이자벨 푸트 박사후연구원은 “가속화된 생물학적 노화를 멈추거나 되돌릴 수 있는 치료법을 찾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생물학적 메커니즘을 밝혀야 한다”며 “이번 연구는 그 길을 열어가는 가장 큰 규모의 유전학 연구”라고 강조했다.
연구진은 단기적으로 현재의 허약 평가 기준을 인지적 허약, 대사적 허약 등 6가지 유형으로 세분해 맞춤형 예방 전략을 제시할 수 있다고 본다. 인지적 허약 환자는 치매 예방 치료로, 대사적 허약 환자는 당뇨병·심혈관질환 예방 관리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유전자 정보를 기반으로 개인의 ‘다유전자 위험 점수(polygenic risk score)’를 산출해 어떤 유형의 노화에 취약한지를 사전에 알려주고, 나아가 분자 수준의 경로를 조절하는 치료제 개발로 연결하는 것이 목표다.
‘단일 항노화 알약’ 가능성은 낮아
전문가들은 모든 노화 질환을 한 번에 막는 ‘마법의 알약’은 나오기 어렵다고 본다. 하지만 대사적 문제를 통합적으로 다루는 약, 인지 기능 저하를 겨냥한 약 등 분야별 맞춤형 치료제는 가능성이 있다.
논문의 교신저자인 앤드루 그로친저 콜로라도대 심리학·신경과학과 교수는 “노화와 관련된 다양한 생물학적 경로가 확인된 만큼, 이제는 이를 표적으로 삼아 치료 전략을 마련하는 것이 다음 단계”라며 “하나의 만능 알약이 필요하지는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