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7월 15일 (수)

약 잘 먹어도 왜 또 재발할까…흔들린 생체시계가 단서였다

생체시계 교정 앱 하나로 기분장애 재발 3분의 1로 '뚝'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스마트워치 등 웨어러블 기기는 수면과 활동 리듬을 기록할 수 있다. 고려대 의대 연구팀은 생체리듬 데이터를 활용한 디지털 치료 앱이 기분장애 재발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약 잘 먹고 있는데 왜 또 이러지."

우울증이나 조울증(양극성장애) 환자와 보호자가 진료실에서 자주 꺼내는 말이다. 약물치료로 증상이 안정된 뒤에도 수면 시간, 빛 노출, 활동 리듬이 흔들리면 재발 위험은 다시 커질 수 있다.

고려대 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헌정 교수 연구팀은 이 빈틈을 스마트폰 앱과 손목 밴드로 줄일 수 있음을 임상시험으로 확인했다.

연구팀이 개발한 일주기 리듬 기반 디지털 치료 앱 'CRM(Circadian Rhythm for Mood)'의 다기관 임상시험 결과가 미국 정신의학 학술지 《미국정신의학저널(American Journal of Psychiatry)》6월 24일 온라인 선게재됐다. CRM은 웨어러블 기기와 스마트폰으로 생체리듬을 측정해 기분 삽화 재발을 예측하고, 개인 맞춤형 생활 가이드를 제공하는 디지털 치료 앱이다.

재발의 방아쇠는 따로 있었다

사람 몸에는 약 24시간 주기로 돌아가는 생체시계가 있다. 이 일주기 리듬이 흐트러지면 우울이나 조증 삽화(일정 기간 증상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발병)가 찾아온다.

연구팀은 이 원리에 착안해 앱을 개발했다. 수면 패턴이 불규칙해지거나 낮 동안 빛을 충분히 쬐지 못하는 것처럼, 일상 속 작은 변화가 생체시계를 건드리고 증상 재발의 불씨가 된다.

CRM 앱은 이 흐트러짐을 미리 잡아 교정한다. 손목 밴드와 스마트폰은 활동량·심박수·수면·빛 노출 같은 생체리듬 정보를 자동으로 모은다. 여기에 앱에 기록된 기분 상태 등을 함께 분석해 앞으로 3일간의 기분 상태를 낮음·보통·높음으로 예측하고, 각 개인의 일주기 리듬 지표를 바탕으로 최적 기상 시각, 빛 노출 시각, 활동 리듬 안정화 전략 등 맞춤형 가이드와 알림을 보내준다.

기능만 보면 그럴듯하다. 실제로 효과가 있을까. 연구팀은 이를 따지기 위해 엄격한 임상시험을 설계했다

재발 발생률 3분의 1로…비교 앱군과 3.4배 차이

고려대 안암·구로·안산병원, 인제대 일산백병원, 부산대병원 등 전국 5개 대학병원에서 우울증 또는 양극성장애를 진단받고 안정 상태를 유지 중인 성인 환자 93명을 모집했다. CRM 앱 사용군 47명과 겉모습은 같지만 치료 기능이 없는 샴(sham·가짜) 앱 사용군 46명을 무작위 배정, 환자도 연구진도 어느 앱인지 모르는 이중맹검 방식으로 1년간 지켜봤다.

결과는 뚜렷했다. CRM군의 재발 발생률은 비교 앱군의 3분의 1 수준에 그쳤다. 비교 앱군이 CRM군보다 3.4배 높은 셈이다.

100명을 1년 관찰할 때 발생하는 재발 건수로 따지면 CRM군은 41.1건, 비교 앱군은 139.3건이었다. 증상이 이어진 기간도 비교 앱군이 더 길었고, 첫 재발까지 걸린 시간은 CRM군이 유의하게 더 길었다. 재발 횟수만 준 것이 아니라, 재발해도 더 빨리 회복하고 안정 상태를 더 오래 유지했다는 뜻이다.

우울 증상과 경조증 증상을 나눠 봐도 전반적으로 CRM군이 더 좋은 결과를 보였다. 조증 증상은 발생 사례가 4건에 불과해 해석에 신중함이 필요하다고 연구팀은 덧붙였다. 1년간 앱 사용과 관련한 중대한 이상반응은 보고되지 않았다.

고려대 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헌정 교수 사진=고려대병원

"생체시계 맞추는 것, 그 자체가 치료"

기분장애와 시간생물학, 디지털치료제를 전문으로 연구해 온 교신저자 이헌정 교수는 "기분장애의 재발은 단순한 증상 재현이 아니라, 빛 노출과 활동이 얽힌 생체리듬의 불일치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며 "CRM은 개인의 생활 패턴을 실시간으로 반영해 생체시계를 맞추는 방식으로, 약물치료를 보완할 디지털 치료기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제1저자인 염지원·정재권 교수는 "자동 수집 센서 데이터만으로 개인별 생체리듬 특성을 뽑아내고 맞춤형 피드백을 제공한 디지털 치료 앱을 이중맹검·샴 대조 방식으로 검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앞으로 개선된 UI/UX를 적용한 대규모 연구와 생체지표 기반의 작용 기전 규명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CRM 앱은 고려대학교의료원 의료기술지주회사 자회사인 ㈜휴서카디안이 개발했다. 이헌정 교수는 회사 공동창업자다. 연구진은 회사가 앱 플랫폼을 제공했지만 연구 설계와 데이터 수집·분석·해석에는 관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한국연구재단 및 중소벤처기업부 기술개발사업 지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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