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기초과학연구원(IBS) 연구진이 만성 스트레스가 뇌의 당(糖) 사슬에 영향을 미쳐 우울증을 일으키는 분자경로를 밝혔다.”
미국과학진흥협회(AAAS)의 과학논문 소개 사이트 ‘유러칼레트’는 이 내용을 3일 주요 기사로 올렸다. 유러칼레트는 ‘뇌의 작은 당들, 감정회로 교란, 우울증 유발(Tiny sugars in the brain disrupt emotional circuits, fueling depression)’ 제목의 기사에서 스트레스가 쌓이면 뇌 전전두엽에서 단백질에 붙은 당사슬에 영향을 미쳐 우울증의 도화선이 된다는 것이 발견돼 약이 듣지 않는 우울증의 표적 치료에 새 가능성이 열렸다고 소개했다.
우울증은 무기력, 수면장애, 사회적 위축 등을 부르고 심하면 목숨까지 뺏는 무서운 병으로 세계적으로 2억8000만 명을 괴롭히고 있다. 국내에서도 지난해 110만명이 이 병으로 치료받았으며 환자가 계속 늘고 있다.
우울증은 심리, 환경, 유전요소와 수많은 병리학적 메커니즘이 서로 작용해 생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현재 대부분의 치료제는 세로토닌과 같은 신경전달물질을 조절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이들 치료제는 환자 절반 정도에게만 들으며 소화기장애 유발, 불안감 악화 등의 부작용이 있다. 이런 한계 탓에 새 연구가 필요했다.

IBS 이창준, 이보영, 서영숙 박사 팀은 작은 당사슬들이 단백질에 붙어서 단백질의 구조와 기능을 조절하는 과정인 ‘당사슬화(Glycosylation)’에 주목했다. 당사슬화는 암, 바이러스 감염, 뇌퇴행성 질환 등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가운데 ‘O-당사슬화(O-glycosylation)’는 세포간 신호 전달과 신경 회로 균형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연구진은 먼저 고성능질량분석법으로 건강한 생쥐의 뇌 9개 영역에서 O-당사슬화 유형을 정밀 분석해 뇌 부위마다 독특한 당사슬화 특성이 있음을 확인했다. 다음으로 계속 스트레스를 준 생쥐의 뇌를 분석했더니 전전두엽에서 O-당사슬화가 뚜렷하게 변화된 것을 발견했다.
특히 단백질의 안정성을 높이는 시알산(Sialic acid)과 당전이효소 ‘St3gal1’이 줄어든 것을 발견했다. 연구진은 이 효소의 발현을 억제하자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지만 의욕 상실, 긴장 증가 등의 우울증 증상이 나타나는 것을 확인했다. 반대로 생쥐의 뇌에서 효소가 더 발현되도록 하자 우울증 증상이 누그러졌다. 이 효소가 우울증 발병과 관계 있다는 점이 밝혀진 셈이다.
연구진이 실시한 단백질 분석과 전기생리학적 신호 측정 실험에선 St3gal1 효소가 줄면 신경세포 연결 단백질인 뉴렉신2(NRXN2)의 당사슬 구조가 불안정해지고, 뇌 회로의 균형을 유지하는 신경세포의 기능이 약화됐다.
이보영 박사는 “이번 연구는 뇌의 당사슬화 이상이 우울증 발병과 직접적으로 관계있다는 점을 밝혔다”며 “신경전달물질 중심의 기존 접근법을 넘어, 우울증 진단과 치료의 새 표적을 발굴하는 중요한 실마리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창준 연구단장은 “우울증은 사회적 부담이 큰 병이지만 기존 치료제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며 “이번 성과는 우울증 치료뿐 아니라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조현병 등으로 시작해 보다 광범위한 병을 연구하고 치료제를 개발하는 토대를 제공할 것”이라고 의의를 부여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AAAS가 발행하는 과학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의 자매지 격인 온라인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 10월 4일자로 게재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