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세포 재생시키는 열매가 있다?...'이 성분' 치료제 가능성 확인
꽃치자 열매 추출물 제니핀, 신경퇴행질환 환자의 신경세포 재생시켜
치자나무는 자스민 향을 닮은 진한 흙 향기, 밀랍 같은 꽃잎, 짙은 녹색 잎과 대비되는 선명한 흰색 꽃으로 유명하다. 치자나무 관목은 일반적으로 아시아의 열대 및 아열대 지역이 원산지만 꽃의 아름다움과 중독성 강한 향기로 인해 전 세계로 퍼져 나가는 와중에 남아공 케이프타운이 원산지로 잘못 알려져 서양에선 ‘케이프 재스민(Cape jasmine)’으로 불리게 됐다. 현재는 흰 장미를 닮은 겹꽃이 피는 치자나무를 케이프 재스민이라 부르는데 우리말로는 꽃치자라고 한다.
미국 조지아대 연구진이 주도하고 테네시대, 아이칸의대, 웨일코넬의대, 슬로언케터링연구소(SKI) 줄기세포생물학센터가 참여한 연구진은 꽃치자 열매에서 추출한 제니핀(genipin)이라는 화합물이 신경 재생을 촉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질병으로 손상되고 기능이 저하된 신경세포가 실험실에서 제니핀에 노출됐을 때 생명력을 회복했다.
제니핀은 유전자 돌연변이로 인해 발생하는 희귀 퇴행성 신경계 질환의 잠재적 치료제로 연구되고 있다. 가족성 자율신경실조증(familial dysautonomia)이란 이 신경질환은 자율신경과 감각 신경을 포함한 신경계가 제대로 발달하지 못하게 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퇴화돼 심각한 말초신경 및 심장 증상을 유발한다.
처음에는 호흡, 체온 조절, 혈압, 눈물 생성 능력에 영향을 미치다 점차 비정상적인 심장박동, 척추 만곡, 통증 불감, 시력 상실, 특히 수면 중 호흡 조절 능력 저하, 폐 감염 등을 겪을 수 있다. 논문 주저자인 조지아대 분자의학센터의 케니 사이토-디아즈 박사후 연구원은 가족성 자율신경실조증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이용 가능한 치료법이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하며 제니핀이 잠재적 치료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미국 클리블랜드 클리닉의 유전학자들은 이 질환이 아슈케나지 유대인(러시아 및 동유럽 유대인) 혈통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비교적 많이 발병한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경우 아슈케나지 유대인 1만 명 중 1명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추정된다. 아슈케나지 유대인이 많은 이스라엘의 경우엔 3700명 중 1명이 태어날 때 이 질환 진단을 받는다.
한편 치자나무에서 추출한 화합물은 민간 및 전통 의학에서 오랫동안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수세기 동안 중국의 전통 치료사들은 우울증, 염증 및 불면증을 치료할 수 있는 약용 화합물의 원천으로 치자나무 식물을 사용해 왔다. 치자나무는 씨앗에서 나오는 노란색 염료로 인해 중국인들 사이에서도 오랫동안 소중히 여겨져 왔다.
1980년대에 일본 과학자들은 치자나무 열매에서 추출한 파란색 염료를 발견했다. 파란색 염료의 분리는 화학적으로 ‘이리도이드 배당체(iridoid glycoside)’인 제니핀의 발견으로 이어졌다. 제니핀은 특정 식품의 질감과 유통기한을 개선하는 데 사용된다. 또한 정교한 프로그래밍의 결과로 인한 세포사멸(apoptosis)을 촉진하는 능력으로 인해 항암제로도 연구되고 있다.
연구진은 감각 신경세포의 퇴화를 방지할 수 있는 후보 물질을 찾기 위해 640개의 화합물 라이브러리를 검색하던 중 치자나무 열매에서 생성되는 제니핀을 찾아냈다. 연구진은 실험실에서 신경세포를 제니핀에 노출시키자 세포사멸과 전혀 다른 일이 발생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실험실 접시에서 이 화합물은 가족성 자율신경실조증 환자의 감각 신경세포의 적절한 발달을 회복시켰을 뿐 아니라 세포의 조기 퇴화도 예방했다. 제니핀은 또한 가족성 자율신경실조증의 두 가지 생쥐 모델에서 말초 신경 형성을 개선했다. 연구진은 제니핀의 치료 효과가 세포외기질(extracellular matrix.)의 가교를 촉진하는 화합물의 능력과 연관돼 있을 것으로 추측했다.
연구진은 제니핀의 강력한 활동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신경 세포 배양에 첨가했을 때 절단된 축삭이 건강한 감각 및 피질 신경세포로 재생되는 것을 촉진한다는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사이토-디아즈는 이러한 결과를 통해 “지니핀은 향후 말초신경계의 신경 재생과 말초 신경병증 예방에 응용할 수 있는 흥미로운 화합물”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해당 논문은 다음 링크(https://www.science.org/doi/10.1126/scitranslmed.adq2418)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