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일 일요일 울주병원 응급실을 찾은 환자는 26명이었다. 24시간 응급실을 연 지 열하루째 되는 날이었고, 개원 이후 가장 많은 환자가 찾아왔다.
일주일 전에도 비슷했다. 개천절인 3일에 24명, 이튿날 일요일에 22명이 왔다. 붐빈 날은 평일이 아니었다. 동네 의원들이 모두 문을 닫는 날들이었다.
울산 울주군 남부권은 약 7년 동안 급성기병원 없이 지냈다. 원자력발전소와 온산국가산업단지가 들어서 있고 주민 8만여 명이 살지만, 응급실 하나 제대로 없던 곳. 주말 밤에 아이가 열이 나거나 어르신이 넘어지면 시내까지 먼 길을 가야 했다.
9월 4일 울주군이 세우고 부산 온그룹의료재단이 위탁 운영하는 군립(郡立) 울주병원이 문을 열었다. 개원 40여 일 지나고 초대 병원장인 정종훈 원장(가정의학과)은 “병원 설립 목적과 현장의 데이터가 조금씩 맞아 들어간다”고 했다.
병원장이 꼽은 ‘가장 급한 것’, 응급실이 먼저 답했다
주민들에게 가장 절실했던 의료가 무엇이었는지 묻자, 정 병원장 답은 짧았다. “아플 때 가까운 곳에서 제때 진료받을 수 있는 의료서비스”라고 했다. “특히 야간이나 휴일에 갑자기 몸이 아플 때, 지역 안에 의지할 병원이 있다는 것은 주민들의 일상에 큰 차이를 만든다”고도 했다.
숫자도 같은 쪽을 가리켰다. 응급실을 본격 가동한 10월 1일부터 14일까지 166명이 응급실을 찾았다. 하루 평균 11.9명이다. 내원이 가장 많았던 사흘은 모두 토요일, 일요일, 공휴일이었다.

현재 응급실은 전문의 등 의사 4명만이 지키고 있다. 병원은 곧 야간 전담의를 포함해 5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정 병원장은 앞으로 1, 2년 동안 가장 먼저 다질 기능으로도 응급진료를 꼽았다. “응급환자를 신속하게 평가하고 초기 처치를 한 뒤, 상태에 따라 입원이나 수술, 상급병원 전원(轉院)으로 이어지는 체계를 정착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울주병원이 모든 환자를 끝까지 맡겠다는 뜻이 아니다. “지역에서 치료할 수 있는 질환은 충분히 책임지고, 더 높은 수준의 치료가 필요한 환자는 적절한 의료기관으로 신속하게 연결해야 한다”고 했다. 그가 그리는 모습은 지역 의료의 첫 관문이다. “몸이 아프면 우선 울주병원에 가면 된다”는 말이 주민들 사이에서 나오는 것.
병원 문을 두드린 사람들은 누구였나?
정 병원장은 남부권의 의료 수요를 두 갈래로 봤다. 산업현장의 근로자, 그리고 이 땅에서 오래 살아온 노인들이다. 그는 “근로자에게는 사고나 외상에 대한 신속한 진료와 건강관리가 중요하고, 어르신들에게는 여러 만성질환을 함께 관리하면서 일상을 유지하도록 돕는 진료가 필요하다”고 했다.
입원 환자 명단을 보면 어르신 쪽 그림이 먼저 보인다. 입원 환자는 정형외과가 31명(37.8%)으로 가장 많았고, 소화기내과가 24명(29.3%)으로 뒤를 이었다. 두 과를 합치면 전체 입원의 67.1%다. 관절과 허리, 그리고 소화기 질환에 수요가 몰린 셈이다.
정 병원장도 이 부분을 짚었다. “고령 환자분들은 관절이나 허리 통증과 함께 고혈압, 당뇨병 등 여러 질환까지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며“여러 진료과들 협력으로 건강 상태를 두루 살피고, 검사와 치료, 물리치료를 연결하겠다”고 했다.

외래도 빠르게 늘었다. 9월 한 달간 외래는 960건이었다. 10월에는 14일까지 보름이 채 안 되는 기간에 992건이 쌓였다. 하루 평균으로 보면 35건 남짓에서 70건 남짓으로, 10월이 9월 두 배가 됐다. 병원을 2번 이상 찾아온 재진 숫자도 올라가는 추세를 보인다.
근로자 쪽 수요는 건강검진에서 드러났다. 10월 1일부터 15일까지 검진은 79건으로, 9월 한 달 전체(55건)를 이미 넘었다. 원전 지원기금으로 서생면 주민 종합검진을 맡는 협약도 맺어놓은 상태.
정 병원장은 검진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다. “검진으로 질환을 조기에 발견하고, 필요한 추가 검사와 치료로 연계해 지속적인 관리가 이뤄지도록 돕겠다”며 “산업현장의 유해물질 노출처럼 근로자 건강을 위협하는 요인을 조기에 파악하고, 작업환경 개선으로까지 이어지도록 노력하겠다”고도 했다.
가을 예방접종 시즌, 어르신들 발걸음도 이어진다. 독감 예방접종 91건 가운데 74건이 어르신과 지자체 대상 무료접종이었다.
울주군이 짓고 민간이 운영한다⋯주민에 필요한 의료 충족이 관건
울주병원은 흔치 않은 구조로 운영된다. 병원은 군립이고, 운영은 민간 의료재단이 맡는다. 정 병원장은 이 구조의 장점을 “공공이 지역에 필요한 의료 기반을 마련하고, 민간 의료재단의 운영 경험과 전문성을 접목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했다.
그는 공공성과 효율성 어느 한쪽만으로는 버틸 수 없다고 봤다. “지역에 꼭 필요한 의료 서비스를 지속하려면 안정적인 운영이 뒷받침돼야 한다”며 “운영의 성과도 주민들이 얼마나 필요한 치료를 받았는지로 평가받아야 한다”고 했다.
이 말이 가볍지 않은 이유가 있다. 지방의 작은 병원 응급실은 적자 위험이 크다. 올여름 경북 칠곡의 한 병원은 의료진 확보난과 누적 적자를 이유로 응급실 운영을 접었다. 그 응급실의 올해 하루 평균 환자는 11명이었다. 지금 울주병원 응급실과 거의 같은 규모다.
같은 숫자를 두고 한 곳은 응급실을 닫았고, 다른 한 곳은 열었다. 차이는 버팀목의 유무다. 울주병원은 개원 후 3년간 운영 적자 전체를 군에서 보전받고, 이후 2년은 24시간 응급실 등 공공 응급의료 부문의 적자만 보전받는다.
그래도 정 병원장이 내건 성공의 기준은 매출이 아니었다. “필요한 진료를 제때 받았는지, 치료를 위해 먼 곳으로 이동해야 하는 부담이 줄었는지, 충분한 설명과 안전한 치료를 받았는지가 중요하다”고 했다. 3년 뒤에는 주민들의 생활 속에, 5년 뒤에는 보건소~지역 의료기관~상급병원 사이에서 환자를 잇는 중심에 서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임기 안에 꼭 만들고 싶은 것으로는 병원 문화를 꼽았다. “직원 누구나 환자 안전에 관한 의견을 편하게 말할 수 있고, 진료과와 부서가 환자에게 필요한 일을 함께 해결하는 병원”이다. 그래서 그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은 따로 있다. “우리 지역에 이 병원이 생겨서 다행이다.”
3년 뒤면 군비 보전의 폭이 줄어드는 시점에 갈림길이 온다. 그때까지 응급실과 외래, 입원이 서로 환자를 이어주는 병원이 되어 있다면, 주민들은 그 말을 숫자로 증명해줄 것이다.
반대로 공공의 지원이 줄어드는 자리를 운영 성과가 메우지 못한다면, 남부권은 다시 시내까지 먼 길을 가야 하는 7년 전으로 돌아간다. 울주병원의 첫 40일은 그래서 3년 후 갈림길까지 남은 시간의 출발점. 현재 그 갈림길 신호등엔 희미하나마 녹색불이 깜빡깜빡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