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8월 18일 (화)

“좋은 진료만으로 좋은 병원 되지는 않는다”⋯‘환자경험 전국 2위’ 만든 조현진 해운대백병원 센터장

해백톡톡·경영진 라운딩·VOC로 3개 영역 전국 1위…전반적 평가는 10위 ‘아픈 손가락’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조현진 해운대백병원 서비스혁신센터장. 사진=해운대백병원

진료가 좋았다. 간호도 좋았다. 그런데 퇴원하는 날 주차장에서 요금을 놓고 실랑이가 벌어진다면, 그 병원에 대한 기억은 어떻게 남을까?

부산 해운대백병원 조현진 서비스혁신센터장(산부인과 전문의)은 "그 순간 병원에 대한 기억은 빵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병원에서 가장 중요한 건 좋은 진료다. 하지만 좋은 진료만으로 좋은 병원이 되지는 않는다"고도 강조했다.

마케팅에서는 이런 결정적 접점을 '진실의 순간(MOT, Moment of Truth)'이라 부른다. 고객이 서비스를 접하는 짧은 순간이 브랜드 전체 인상을 좌우한다는 개념이다.

그가 지난 몇 년간 손댄 지점들은 대부분 진료실 밖에 있었다. 회진 전 알림 하나, 수술 중 문자 한 통 같은 사소한 접점들. 이런 '진실의 순간'들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초점을 맞춘 셈이다.

그 결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 '2025년 제5차 환자경험평가'에서 해운대백병원은 종합점수 96.32점을 받았다. 100점 만점에서 딱 3.68점만 모자랐다. 서울 빅5를 포함한 47곳 상급종합병원과 329곳 종합병원까지 합쳐 전국 2위. 빼어난 성과다.

물론 이 평가에 한계가 없는 건 아니다. 심평원은 퇴원 환자에게 모바일웹 조사를 보내 응답을 받았는데, 이번 조사의 응답률은 20% 조금 넘었다. 나머지 80%에게는 또 어떤 진실이 숨어 있는지 알 수 없다.

게다가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얼마나 친절했는가"를 묻는 조사도 아니다. 그래도 이 점수가 갖는 의미는 작지 않다.

다 더해서 100점 되는 건 아냐

이 성적표를 제대로 읽으려면, 먼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조 센터장은 "환자경험은 환자가 인지하는 기억"이라 전했다.

일반 시험처럼 20점짜리 5과목을 하나하나 더해서 100점을 만들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하나라도 과락이 나면 전체가 낙제할 수 있는 성격이란 얘기다. 주차, 식사, 보안처럼 평가 문항에 없는 요소도 실제 점수엔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어서다.

"좋은 진료만으로 좋은 병원이 되지 않는다"는 그의 말은, 이 지점에서 다시 읽힌다. 진료가 아무리 완벽해도, 그 앞뒤의 어느 한 순간이 무너지면 전체 인상도 함께 무너진다.

환자 평가 둘러싼 경쟁 왜 갈수록 치열해지나?

심평원 환자경험평가는 2017년 시작해 이번까지 5차례 진행됐다. 이번 대상은 전국 376곳. 앞으로는 전문병원, 100병상 이상 병원까지 880곳 이상으로 평가 대상을 늘린다. 경쟁이 더 세진다는 뜻이다.

병원들이 이 지표를 보는 눈도 달라지고 있다. 2021년 제3차 평가 때만 해도 종합점수 90점을 넘긴 병원은 전국에 2곳뿐이었다. 2025년 제5차 평가에서는 57곳으로 늘었다. 그 만큼 환자, 보호자 마음까지 신경 쓰는 병원이 늘었다.

이런 흐름은 한국만의 일이 아니다.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Newsweek)'가 매년 발표하는 '세계 최고 병원(World's Best Hospitals)' 평가에서도 환자경험 항목 비중이 2023년 14.5%에서 2026년 18.5%로 높아졌다. 이제 어디서든, 진료 실력만으로는 더 이상 최고를 증명할 수 없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해백톡톡, '정서적 지지' 영역에서 전국 1위 만든 주역

심평원 조사는 간호사, 의사, 투약 및 치료 과정, 정서적 지지, 병원 환경, 환자권리보장, 전반적 평가 등 7개 영역으로 나뉜다. 해운대백병원은 이 가운데 의사(96.45점), 정서적 지지(94.80점), 환자권리보장(96.69점) 등 3개 영역에서 전국 1위에 올랐다.

이 중 '정서적 지지'는 ‘질환에 대한 위로와 공감’을 묻는다. "내가 아픈 것에 대해, 누군가 나를 위로하고 공감해줬는가?" 의료진의 태도를 묻는 문항이다. 예상대로 전국 평균 점수가 7개 영역 중 가장 낮았다.

그런데 해운대백병원은 여기서 전국 평균보다 월등히 높은 점수를 받았다.

조 센터장은 이처럼 추상적이고 대비하기 어려운 영역을 '해백톡톡'이라는 메신저 기반 알림 서비스로 풀었다. 입원 안내부터 시작해 수술 진행 상황을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수술톡, 담당 의료진의 회진 일정을 미리 안내하는 회진톡, 정산부터 수납까지 퇴원 진행 상황을 단계별로 알려주는 퇴원톡으로 이어진다.

환자와 보호자에 대한 정보를 더 충실하게 전달하기 위해 해운백병원은 '해백톡톡'이란 메신저 알림 서비스를 가동한다. 입원부터 수술, 퇴원까지 병원 생활 흐름에 맞춰 병원과 환자가 쌍방향 소통을 하는 것이다. 사진=해운대백병원

환자와 보호자들은 현장에서 '정보 비대칭'에 가장 민감하다. 이를 매뉴얼과 시스템으로 표준화해 그 공백을 메웠다. 불안의 핵심 원인이 '모름'에 있다면, 피상적인 감성적 표현보다 정확한 정보 제공이 오히려 정서적 지지가 된다는 뜻이다.

이 문화를 만든 또 다른 갈래는 병원장부터 솔선수범한 '경영진 환자경험 라운딩'이다. 10명이 한 팀을 이뤄 매달 입원 병동을 돈다. 김성수 병원장은 4년째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그러면서 병원 구석구석을,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을 계속 살폈다.

조 센터장은 "병동 간호사들이 환자를 진심으로 대하게 된 데는, 병원장이 매달 직접 병상을 도는 모습을 보여준 것도 크게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위에서 먼저 움직이니, 아래도 따라 움직였다. 의사들도, 행정 직원들도 차츰 달라졌다.

그렇게 쌓인 관계는 뜻밖의 순간에 드러났다. 조 센터장은 "돌아가신 환자의 보호자들이 '너무 감사했다'고 적어주는 사연이 제법 많았다"고 전했다. 부모나 배우자를 떠나보낸 자리, 어쩌면 억울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도 병원에 감사를 남기는 보호자들이 많았다는 얘기다. 그들의 정성을 보았기 때문이다.

사실 '정서적 지지'라는 항목은 건조한 평가지 문항 하나에 불과하다. 하지만 현장에선 이런 순간들이 쌓여 만들어진 점수다.

의사 영역 1위, 비결은 친절 교육 아니었다

의사 영역은 존중과 경청, 환자와 이야기할 기회, 회진 시간 정보 제공 등 4개 문항으로 구성된다.

조 센터장은 "교수들에게 친절하라고 교육한 적이 없다"고 언급했다. 실제로 환자경험평가 전체 문항 26개 어디에도 '친절'이라는 단어가 없긴 하다.

그는 대신 전문과목 의국들을 돌며 환자경험평가가 무엇인지 설명하는 자리부터 만들었다. 그러면서 항상 "병원에서 제일 중요한 건 좋은 진료"라는 말로 시작했다. 이어 "왜 이런 평가가 필요한지"도 짚었다.

“회진 전 미리 알림을 보내는 회진톡은 환자가 자리를 지키게 해 의료진 회진 동선을 줄입니다. 의사가 떠난 뒤에야 궁금한 게 떠오르는 환자들 위해선 회진 카드도 만들었죠. 다음 날 찾아온 교수가 그 자리에서 바로 답해주면, 오히려 회진 시간이 짧아지는 효과도 있지 않겠어요?”

의사도 좋고 환자도 좋은 구조다. 그제서야 이를 납득하는 의사들이 더 늘어났다.

매주 고객의 소리 몽땅 읽는 고집이 만든 환자권리보장 1위

환자권리보장 영역은 “불만을 제기하기 쉬웠는지”, “공평한 대우를 받았는지”를 묻는다. 서비스혁신센터는 매주 월요일 오전, 지난주 접수된 VOC(Voice of Customer, 고객의 소리)를 부서원들이 전부 읽는다.

조 센터장은 "민원인이 아니라 민원의 내용에 집중한다"고 설명했다. 민원인에 집중하면 그 사람의 화(火)를 누그러뜨리는 데서 끝난다. 하지만 민원 내용에 집중하면 시스템을 고치게 된다.

병원은 환자와 보호자가 보내온 칭찬 사연을 바탕으로 '해백히어로(hero)'를 매달 선정한다. 대상은 의사와 간호사에 그치지 않는다. 임상병리사, 방사선사, 보안요원, 미화 담당까지 환자를 만나는 모든 접점의 구성원이 포함된다. 누구라도 '이달의 영웅'이 될 수 있다.

매달 해백히어로를 선정해 병원 전 직원들과 그 사례를 공유한다. 개인적으론 작은 칭찬에 불과하지만, 병원 전체로는 좋은 씨앗들을 키워가는 정원이 된다. 사진=해운대백병원

최근 선정 사례는 병원 밖에서 나왔다. 한 직원이 다른 장례식장에 조문객으로 갔다가, 근처에서 심정지로 쓰러진 낯선 조문객을 발견했다. 심폐소생술을 했고, 구급대원이 올 때까지 곁을 지켰다. 이를 지켜본 또 다른 목격자가 병원 홈페이지에 사연을 올렸다. 그렇게 '해백히어로'가 됐다.

전국 2위에게 남은 '아픈 손가락'

해운대백병원이 스스로 인정하는 약점도 있다. 7개 영역 중 3개는 전국 1위, 다른 3개는 전국 2위를 했다. 그런데 '전반적 평가' 영역만 전국 10위에 그쳤다. "(입원 기간 내내) 전반적인 경험은 몇 점이었습니까", "이 병원을 다른 사람에게도 추천하시겠습니까"를 묻는다.

조 센터장은 "전국 10등도 잘한 거지만, 저희 입장에서는 아픈 손가락"이라 자평했다.

이 점수의 정체를 묻자 그는 한참을 고민하다 "환자들이 사랑을 표현하는 점수인 것 같다. 아직은 병원 역사가 짧아서⋯. 세월이 쌓여 만들어지는 묵은 애정까지는 아직 이르지 못한 것 같다”고 답변했다.

해법도 제시했다. "병원에 대한 깊은 신뢰, 정말로 이 병원을 좋아하는 마음, 이유 없는 진심 같은 게 근본적으로 더 좋아져야 하지 않을까요?"

그의 말대로, 세부 영역 1위가 여러 개 쌓인다고 곧바로 '사랑받는 병원'이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는 비단 해운대백병원만의 숙제는 아니다.

전국의 병원들도 지금, 비슷한 질문 앞에 서 있다. 진료 실력의 격차는 점점 줄어든다. 그 대신 환자의 선택을 가르는 것은 환자가 병원에서 마주치는 셀 수 없이 많은 '진실의 순간'들이다. 주차장에서, 회진 자리에서, 퇴원 수속 창구에서⋯. 병원의 다음 경쟁력은 그 사소한 순간들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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