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급성 심근경색(심장마비)의 전형적인 증상은 극심한 가슴 통증과 호흡 곤란이다. 다만 드물게는 설사·구토 등 소화기 증상만 나타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평소 별다른 병을 앓지 않고 건강하게 지내던 30대 후반의 남성이 갑자기 극심한 물설사 증상을 겪은 뒤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이 환자는 한 시간 전까지 설사를 12회나 쏟아냈지만 가슴 통증, 호흡 곤란, 복통 등 증상은 겪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진료 결과 급성 심근경색 진단을 받았다.
그리스 알렉산드루폴리스대 병원 연구팀은 급성 설사로 병원을 찾았다가 급성 심근경색을 발견하게 된 38세 그리스 남성의 사례를 최근 학계에 보고했다.
연구팀은 당초 환자의 증상만 보고 급성 위장염을 의심했다. 하지만 응급실 기본 검사에 해당하는 심전도 검사에서, 뜻밖의 결과가 나왔다. 심장 아랫부분 벽의 급성 마비를 뜻하는 특이 신호(하부 유도 ST분절 상승)가 확인된 것이다. 연구팀은 급성 심근경색(하벽 ST분절 상승 심근경색, STEMI)이라는 잠정 진단을 내렸다.
환자는 중환자실에 입원한 뒤 아스피린 250mg, 클로피도그렐 300mg, 정맥 주사용 위산분비억제제(란소프라졸)와 함께 알테플라제로 혈전(피떡)을 녹이는 치료를 받았다. 혈액 검사에서도 고감도 심장 트로포닌T 수치가 1753pg/mL(정상 기준치 14pg/mL 미만)로 대폭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이 환자에게 최종적으로 급성 심근경색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치료 직후 환자에게서 일시적인 심장정지(무수축)가 관찰됐다. 미주신경의 긴장도가 높아져 발생하는 재관류 부정맥 때문이었다. 하지만 환자는 이내 안정을 되찾았고, 설사 증상은 중환자실 입원 직후 감쪽같이 사라졌다.
다음 날 시행한 관상동맥 조영술에서는 오른관상동맥(우관상동맥)의 중증 협착(심한 막힘)이 확인돼, 혈관을 넓히는 시술(스텐트 삽입술)을 받았다. 환자는 입원 6일 만에 건강하게 퇴원했다.
이 사례 연구 결과(Acute Coronary Syndrome Presenting as Acute Diarrhea in a Previously Healthy 38-Year-Old Man: A Rare Diagnostic Challenge)는 최근 국제 학술지 《큐레우스(Cureus)》에 실렸다.
급성 심근경색을 포함한 급성 관상동맥증후군은 가슴을 쥐어짜는 듯한 통증이나 왼쪽 팔, 어깨, 목으로 퍼지는 방사통을 일으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전체 심근경색 환자의 약 20~30%는 이런 전형적인 증상을 보이지 않는다.
특히 설사·구토·메스꺼움 같은 위장관 증상이 심장병의 신호로 나타나는 경우에는 대개 오른관상동맥의 영향을 많이 받는 심장 하벽에 허혈(혈류 부족)이 발생했을 때다. 심장의 아랫부분이 손상되면 부교감신경의 구심성 섬유가 심하게 자극을 받는다. 이로 인해 미주신경의 긴장도가 급격히 높아지면, 장의 과잉 운동성과 점막 분비가 촉진되면서 잦은 설사나 구토 증상이 나타난다.
지금까지 보고된 설사 유발 심근경색 사례의 대부분은 복합적인 위험 요인을 가진 고령 환자에 국한돼 있었다. 이번 사례는 이렇다 할 지병(기저질환)이 없고 30대의 젊은층이라도 가슴 통증 대신 설사만 나타나도 심근경색을 의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체한 것 같거나 원인 모를 잦은 설사가 발생했을 때는, 단순 장염으로 여겨 소화제나 지사제만 먹으면서 방치해서는 안 된다. 특별한 복통이나 발열이 없는데도 각종 위장관 증상이 나타난다면, 이는 심장이 보내는 적신호일 수 있다. 서둘러 큰 병원 응급실을 찾아 심전도 검사를 받아야 한다.
[자주 묻는 질문]
Q1. 가슴은 하나도 안 아픈데도 심근경색일 수 있나요?
A1. 네, 그렇습니다. 전체 심근경색 환자의 20~30%는 흉통을 느끼지 못합니다. 대신 극심한 피로감, 실신, 어지러움, 소화불량이나 체함, 갑작스러운 설사와 구토 등 각종 비전형적인 증상으로 찾아오는 경우도 꽤 많습니다.
Q2. 오른관상동맥과 설사는 정확히 어떤 연관이 있나요?
A2. 오른관상동맥은 심장의 아랫부분(하벽)에 혈액을 공급합니다. 이 혈관이 막혀 하벽 심근경색이 오면 심장 아래를 지나가는 미주신경(부교감신경)이 심하게 자극됩니다. 이 자극은 장 유동 운동을 급격히 증가시켜 복통 없는 물설사를 일으킵니다.
Q3. 장염으로 인한 설사와 심근경색으로 인한 설사를 어떻게 구분하나요?
A3. 일반적인 감염성 장염(위장염)은 설사와 함께 배를 누를 때 통증(복부 압통), 발열, 혈액 검사상 백혈구 수치 상승 등이 함께 나타납니다. 반면 심근경색에 의한 설사의 경우엔 배가 아프지 않고 열도 나지 않습니다. 일반인이 이를 구별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원인 불명의 급성 설사가 지속되면 즉시 병원을 찾아 심전도(ECG) 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