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도 촉구한 뇌전증 특별법, 언제까지 미룰건가?”
[수요라운지] 50돌 맞은 한국뇌전증협회 김흥동 회장
“율리우스 카이사르, 알렉산더 대왕, 나폴레옹, 소크라테스, 도스토예프스키, 알프레드 노벨, 토머스 에디슨, 빈센트 반 고흐는 뇌전증 환자였습니다. 육상 100m와 200m에서 36년째 깨지지 않는 세계기록을 작성한, ‘서울올림픽 3관왕’ 그리피스 조이너도 뇌전증이었고요. 그런데 아직도 우리나라에선 뇌전증 환자가 병 때문에 파혼당하고 직장에서 해고되며 차별받고 있습니다. 잘 치료되지 않는 환자는 1년 평균 5, 6번 2~5분 발작하는데 합쳐서 1년에 30분도 안되는 증세로 평생 차별받는다는 것에 사회가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은 한국뇌전증협회 김흥동 회장(65)은 “뇌의 전기시스템에 이상이 생긴 병인 뇌전증은 가족유전병도, 위험한 병도 아니다”면서 “심장에서 전기시스템이 고장난 부정맥과 메커니즘은 같지만 사람들이 뇌전증에 대해 비이성적으로 대응하고 있고, 정부에서도 방치하다시피 하고 있다”고 탄식했다.
"뇌전증은 치매·뇌졸중과 함께 3대 뇌신경계질환"
김 회장은 “국내 뇌전증 환자는 37만 명으로 치매 100만명, 뇌졸중 50만명과 함께 3대 뇌신경계질환”이라면서 “세계보건기구에서 ‘뇌전증에 대한 범국가적 지원체계 추진 결의안’이 만장일치로 통과했지만 우리나라에선 여야 의원들이 함께 발의한 ‘뇌전증 특별법’이 몇년 째 본의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김 회장은 한국뇌전증협회를 중심으로 의료진, 시민, 환자와 가족의 노력이 더해져 뇌전증에 대한 인식이 시나브로 개선되고 있으며 환자의 치료 성과도 크게 좋아졌지만 아직 환자와 가족의 아픔을 달래기엔 역부족이라고 진단한다.
김 회장이 설명한, 협회의 50년사에는 대한민국 의료의 역사, 환자의 아픔, 의료진과 시민의 사랑과 열정이 켜켜이 쌓여있었다.
뇌전증협회의 싹은 1963년 59세의 여의사 레나 로빈슨 박사가 풍족한 삶 대신 한국으로 의료선교의 길을 택하며 움텄다. 로빈슨은 간호대와 의대를 졸업하고 미국 연합감리교회 세계선교부 소속으로 인천에서 봉사활동을 하다가 운명처럼 유재춘 목사를 만났다. 로빈슨을 안내하고 통역하던 유 목사는 뇌전증 환자였다. 숙명여고 1학년 등교 중 정문에서 발작하고 중퇴한 뒤 자학과 방황을 거듭했다. 이후 대전신학원을 졸업하고 인천 간석교회에 자리잡았지만 어느날 잠잠하던 증세가 밀려왔다. 설교 중 발작을 일으켜 놀란 신도들이 모두 떠났지만, 어느 날 발작 뒤 정신을 차리니 한 명이 남아있었다. “학생은 왜 안 떠났나요?” “저도 간질 환자예요….”
로빈슨은 유 목사를 중심으로 뇌전증 환자들과 ‘장미회’를 결성했고 세브란스병원 신경정신과 박종철 교수에게 도움의 손을 요청했다. 인천의 강우식 박사, 연세대 예방의학과 김명호 교수 등의 의료진이 합류해서 환자들을 돌봤다. 1974년 사단법인으로 허가받았고 초대 회장은 김명호 교수가 맡았다. 로빈슨은 70세 때 은퇴해 90세까지 인천에서 머물며 봉사활동을 하다가 미국으로 떠나 노스캐롤라이나주 에슈빌의 은퇴 선교사 숙소에서 106세로 영면했다. 그의 유언에 따라 유해는 경기 파주시 기독교인 공원묘지에 안치됐다. 로빈슨이 90세 때 한국에서 떠날 때 공항에 배웅나온 강우식 박사를 보며 말했다고 한다. “단 한 가지 강 박사를 기독교에 귀의시키지 못한 것만 빼곤 하나님의 선택받은 삶을 살았다.” 강 박사의 아들인 강희철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아버지는 뇌전증 환자에게 문을 열어 주지 않는 일부 교회와 환자를 함부로 대하는 교인 의사들에게 실망해 영세를 받진 않았다”면서 “그렇지만 교회의 장점에 대해 늘 얘기했다”고 전했다. 김흥동 회장은 “내 절친인 강 교수는 교회에 나가면서 의료선교와 봉사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
-왜 장미회인가? 뇌전증 환자가 발작할 때 얼굴이 발개져서 그런가?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가시 있는 장미가 아름다운 것처럼, 뇌전증 환자도 훌륭하고 아름답게 살 수 있다는 뜻에서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설립 당시엔 국내에서 뇌전증을 치료하는 의사도, 치료제도 부족했고 약값이 비싸 환자는 치료받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로빈슨이 사재를 털어 약을 수입했고, 미국이나 독일 등에서 지원을 받기도 했다. 인천기독병원에서 서울과 인천에서 온 의사들로부터 한 달 한 번 치료받은 환자들의 발작이 멈췄다는 소문이 퍼져 전국에서 환자가 몰려왔고 전국에 지회가 설립됐다.”
대한민국의 경제가 윤택해지면서 장미회도 역할이 조금씩 바뀌었다. 네팔과 중국, 몽골, 우즈베키스탄 등에 약품을 보내고 의료서비스도 보탰다. 네팔에서 이화여대로 유학온 학생이 되돌아간 뒤 도움의 목소리를 보내오자 네팔에 뇌전증클리닉을 열고 네팔뇌전증협회를 설립했다. 2대 회장 박종철 박사는 네팔의 천민 집단거주지역에 진료소를 개설, 뇌전증을 비롯한 의료서비스를 베풀었고 네팔 학생을 초청해 자기 집에서 거주하며 대학교육을 받도록 도왔다. 1994년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네팔 국왕으로부터 외국인 최고 훈장을 받았다. 그의 아들 박성수 영화감독은 “어릴적에 아버지가 뭔가 생기면 네팔로 자꾸 보내 네팔로 이사가는 줄 알았다”고 말할 정도.
부정적 이미지의 '간질'을 '뇌전증'으로 바꿔
-이름도 장미회에서 한국뇌전증협회로 바뀌었는데…
“장미회의 무게중심이 진료보다는 환자의 진료 환경과 권익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옮겨지면서 이름을 바꿀 필요가 생겼다. 처음에는 한국간질협회로 바뀌었다가 ‘간질’이 부정적 의미를 떨치지 못해서 병 이름을 뇌전증으로 바꾸는 운동을 펼쳤고, 2010년 공식 의학용어를 ‘뇌전증’으로 바꿨다. 2014년 사단법인 ‘한국뇌전증협회’가 정식 출범했다.”
-그 사이 국내 뇌전증 치료 환경도 많이 바뀌었을 텐데….
“세계적으로 좋은 신약들이 계속 나왔고, 국내에선 대형병원 중심으로 좋은 약을 처방하며 치료환경이 많이 좋아졌다. 한편으로는 뇌전증을 제대로 보는 의사들이 늘어나면서 대한뇌전증학회가 생겼다. 연구와 치료의 선순환이 시작된 셈인데도 오랫동안 인술의 혜택을 받아온 환자들 상당수가 다른 병원으로 가는 것을 주저한다. 대형병원에 간 환자들도 되돌아오곤 했다. 서울 종로구 부암동 뇌전증협회 사무실 옆에 로빈슨의원이 있는 이유다. 일부 환자는 효과가 좋다는 신약보다 어릴 적부터 먹던 약을 계속 처방해달라고 고집하기도 한다.”
신상철, 허균 박사 등을 거쳐 협회의 제5대 회장을 맡은 김흥동 회장은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서 뇌전증 환자의 구세주로 불린 의사로, 퇴임 후 성균관대 강북삼성병원에서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그 역시 한국 의학사가 농축된 인물이기도 하다. 김 회장의 증조부는 ‘대한제국의 풍운아’였던 개혁가 고균 김옥균. 고종에게 의료선교사의 입국을 허가케 해 현대의학의 문을 연 주인공이다. 고균이 중국 상하이에서 암살당하고 시신은 부관참시당하면서 집안은 그야말로 풍비박산, 멸문지화의 화를 입었다. 고균이 복권되고 양아들이 조선총독부 참의를 지냈지만, 손자 김계한 박사는 부귀와 먼 길을 걸었다. 김흥동 회장은 “아버지는 세브란스의대를 졸업하고 평생 한센병을 위한 삶을 살았는데 할아버지의 친일에 대해 속죄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김계한 박사는 6.25 전쟁 중에 전남 고흥군의 한센병 환자 거주 섬인 소록도로 가서 나환자들을 돌봤고 3남 1녀 모두 그곳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제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서울로 올라와서 보건사회부 공무원으로 만성병과 한센병을 담당했는데 그때 하월곡동의 방 2,3개짜리 집에서 할머니 모시고 여덟 식구가 살았지요. 아버지는 늘 ‘의사는 돈 버는 직업이 아니다’고 강조했습니다. 큰형(김의동)도 국내외에서 의료봉사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협회 홈페이지를 보니 뇌전증특별법 제정이 가장 중요한 과제인 듯하다. 협회 5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한 민주당의 남인순, 국민의 힘 인요한 의원도 적극 지지를 약속했지만 이미 몇 차례 입법 발의와 폐기를 거쳐 낙관할 수만은 없을 듯하다. 겉으로는 필요성을 인정하던 사람들도 “기존 의료법 테두리에서도 충분히 지원 가능하다”며 뒤에선 손사래를 치던데…
"유전적 뇌전증은 10% 미만...누구든 걸릴 수 있어"
“뇌전증은 뇌신경계 3대 질환의 하나다. 치매는 ‘치매관리법,’ 뇌졸중은 ‘심뇌혈관질환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 있는데 다른 병과 본질적으로 다른 병인 뇌전증은 더욱 더 법이 필요하지 않은가. 기존의 ‘장애인특별법’은 전체 37만 환자 가운데 2만명, ‘희귀질환특별법’은 1만명만 해당한다. 정관계에선 세계보건기구(WHO)가 각국 정부에 특별법 제정을 촉구한 이유를 고민해야 한다.”
김 회장에 따르면 WHO는 회원국의 80%가 뇌전증 환자의 인권을 증진하고 보호하기 위한 법률을 제정하거나 보강토록 목표를 세웠다. 미국에선 버락 오바마 대통령 때 대통령 선거캠프 고문이었던 데이비드 엑셀로드 부부가 딸의 뇌전증을 알리고 뇌전증 환자 연구 기금을 모으는 운동을 펼쳤다. 오바마 대통령도 “뇌전증 연구가 왜 환자가 더 적은 파킨슨병보다 덜 지원받고 있냐?”며 뇌전증 연구지원을 추진했다.
-아직 일반인은 뇌전증을 유전병으로 알고 있어 부모가 환자와의 결혼을 반대하기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치료도 잘 안된다고 알고 있고….
“뇌전증이 가계로 내려오는 것은 10% 미만이다. 출생 때 뇌손상이 20~30%, 뇌기형이 20%, 비유전성 유전자돌연변이가 5% 정도이고 나머지 40% 정도는 뇌가 여러 이유로 손상돼 생긴다. 누구든 뇌전증에 걸릴 수 있다는 이야기다. 뇌전증은 뇌 전기 흐름의 병이라는 점에서 부정맥과 원리는 같지만 부정맥보다 덜 위험하다. 환자의 70%는 약물치료나 케톤식 식이요법으로 치료할 수 있다. 30%는 치료가 잘 안되는데, 이 가운데 병소가 확인되는 10%는 수술로 치료할 수 있다. 알면 예방할 수 있지만, 목욕탕이나 수영장에서 발작해서 숨지는 사고가 간혹 발생한다. 1만 명 가운데 1, 2명이 그리피스 조이너처럼 돌연사한다.”
-그렇지만 발전한 뇌전증 치료제의 혜택을 보지 못하는 환자가 많다던데….
“대한민국 정부는 뇌전증 연구 지원에도 소극적이지만 환자 진료 혜택에도 인색하다. 대마오일의 주성분인 카나비디올은 뇌전증에서 효과가 입증됐지만 건강보험 기준이 까다로워 처방받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SK바이오팜이 개발한 세노바메이트는 국제적으로 효과가 입증됐고 뇌전증 전문가들은 수술을 검토하기 전에 반드시 사용해야 할 약으로 치지만 국내에선 시판이 하세월이다. 뇌졸중이나 심장병 등과 달리, 뇌전증은 환자가 숨고 가족이 숨기기 때문에 치료의 중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들리기 힘들지만, 그렇다고 절실함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정치와 행정이 국민이 입을 열 수 없다고 그 목소리를 외면해선 안되지 않은가. 이런 점 때문에 뇌전증 특별법이 더욱 더 필요한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