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불안증후군은 의외로 흔한 질환이지만 근육통이나 다리 저림, 하지정맥류 등으로 오인되기 쉽다. 적절한 치료 시점을 놓치고, 만성피로 등으로 고생하는 이들도 많다. 한국 뇌전증·수면질환 분야 권위자인 허경 박사(동래봉생병원 신경과 전문의)가 이 문제를 직접 짚었다. 〈편집자 주〉

외래로 진료실을 찾은 58세 여성이 이런 증상을 호소했다. 5년 전부터 한 달에 4~5일 정도, 자려고 누우면 무릎 아래로 불편함을 느끼다가 잠이 들곤 했다.
그런데 1년여 전부터는 다리의 불편하고 불쾌한 감각이 심해지면서 거의 매일 밤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다리를 움직이거나 일어나서 걸으면 증상이 사라지긴 했지만, 잠드는 데 너무 힘이 들어 결국 병원을 찾았다는 것이다.
왜 유독 밤에, 다리가 불편할까?
듣고 보니 전형적인 하지불안증후군에 가까웠다. 이 병은 흔한 수면질환이다. 전체 인구의 5%가 넘게 이 질환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경증(輕症)인 경우 증상이 간헐적으로 나타났다가 상당 기간 사라지기도 해서, 치료받지 않고 지내는 사람도 적지 않다. 반면 중등도(中等度) 이상으로 심한 경우에는 증상이 만성적으로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 병원을 찾게 된다.
어린 시절부터 성인 후기까지 모든 연령대에서 시작할 수 있지만, 65세까지는 나이가 들수록 발생 빈도가 늘어난다. 환자의 약 40~60%는 가족력이 있고, 가족력이 있는 경우엔 더 이른 나이에도 생기는 경향이 있다. 여성이 남성보다 두 배 정도 더 많다.
문제는 증상이 주로 다리에 나타나기 때문에 근육통, 다리 쥐, 다리 부종, 정맥류, 허리디스크, 관절염, 말초신경병 등으로 오인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그만큼 수면질환을 전문으로 보는 의사에게 오는 환자는 더 적어진다.
하지불안증후군과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질환을 감별하기 위한 검사는 시행할 수 있지만, 하지불안증후군 자체를 확진할 수 있는 검사법은 없다. 그래서 진단은 전적으로 문진을 통한 임상 증상에 의존한다.
이런 증상이면 하지불안증후군도 의심
특징적인 증상은 다리를 움직이고 싶은 충동이다. 이 충동은 대개 다리에서 느껴지는 불편하고 불쾌한 감각을 동반하거나, 그 감각 때문에 유발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런 증상은 누워 있거나 앉아 있는 등 휴식하거나 활동하지 않을 때 시작되거나 악화된다. 반대로 걷기나 스트레칭 같은 움직임을 하면, 적어도 그 활동이 지속되는 동안만큼은 증상이 부분적으로나 완전히 완화된다.
낮보다는 저녁이나 밤에 주로, 또는 오로지 나타난다. 수면 중 다리가 주기적으로 움찔거리는 증상이 함께 나타나는 경우도 흔하다.
병 초기에는 밤에만 증상이 생기지만, 병이 진행되면 낮에도 휴식할 때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특히 버스나 기차처럼 교통수단을 오래 이용할 때 증상이 일어나기 쉽다.
실제로 들은 일이다. 버스에 앉아 가다가 증상이 심해져 일어섰다가, 힘들어 다시 앉기를 반복하던 한 여성 노인이 있었다. 그랬더니 버스 기사가 버럭 화를 내며 "나이 드신 분이 왜 위험하게 그러시냐"고 야단을 치더라는 것이다.
혈액검사는 정상인데, 왜 철분 부족을 염려하나?
신장 기능 저하나 임신처럼 철분 부족을 유발하는 상태는 하지불안증후군을 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환자는 혈액검사상 철분 수치가 정상 범위에 있다.
그래서 이 질환은 혈액 속 철분보다는 중추신경계의 철분 결핍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된다. 철분은 도파민 신경계의 기능에도 관여한다. 뇌 철분 부족과 도파민계 이상은 서로 연결돼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불안증후군 환자에게 도파민성 약물을 쓰면 증상이 크게 좋아지는 경우가 많아, 도파민 결핍 가능성이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그러나 도파민 D2 수용체의 발현이 줄어드는 소견이 관찰됐다. 도파민 D2 수용체가 줄어드는 정도는 낮 동안에는 균형을 이룬다. 그런데 일주기 리듬에 따라 저녁에 도파민 생성이 줄어들면, 상대적인 도파민 결핍이 일어나면서 하지불안증후군 증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밖에 피질 흥분성이나 척수로 내려가는 도파민성 경로 이상 등 다른 기전도 제기되고 있지만,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
방치하면 무엇이 문제가 될까?
경증이거나 간헐적으로 나타나는 하지불안증후군은 상대적으로 강한 수면 욕구 덕분에 사회적, 의학적 영향이 크지 않은 편이다.
반면 중등도 이상으로 심한 경우에는 건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만성적인 수면 부족, 낮 동안의 피로와 졸림, 집중력·사고력·활력의 저하, 불안감과 우울감, 업무 생산성 저하까지 이어져 삶의 질 전체가 떨어질 수 있다.
하지불안증후군 자체가 심근경색이나 뇌졸중을 직접 늘린다는 증거는 아직 일관되지 않는다. 다만 중등도 이상의 하지불안증후군에 흔히 동반되는 반복적인 사지운동이 혈압과 심박수를 반복적으로 올리고, 야간 혈압 조절을 흐트러뜨려 장기적인 심혈관 위험에 영향을 줄 가능성은 제기되고 있다.
치료는 어떻게 하나?
치료는 먼저 철분 상태를 확인하는 데서 시작한다. 빈혈이 없어도 하지불안증후군이 악화될 수 있어서, 철분이 부족하면 이를 보충하는 것이 중요한 치료가 된다. 하지불안증후군에서는 철분 수치가 일반적인 정상 범위 안에 있더라도, 일정 수치 이하이면 부족한 것으로 보고 철분 치료를 진행한다. 다만 검사 없이 임의로 철분을 과다 복용하면 오히려 문제가 될 수 있어 주의해야 하며, 치료 중에도 주기적으로 철분 상태를 확인해야 한다.
생활습관 조절도 필요하다. 규칙적인 수면 시간을 유지하고, 적당한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며, 카페인을 줄이는 것이 도움이 된다. 취침 전 따뜻한 목욕이나 다리 마사지, 증상이 심할 때 가볍게 걷거나 스트레칭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다만 과도한 운동이나 늦은 시간의 격한 운동은 피하는 것이 좋다.
항우울제, 항정신병약, 항히스타민제 등은 하지불안증후군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다. 그래서 증상이 나빠진 시점과 약물 복용 시기가 겹치는지 복용 기록을 살펴봐야 한다.
증상이 자주 나타나거나 수면을 방해할 정도라면 약물 치료를 고려한다. 파킨슨병 치료에도 사용되지만 훨씬 적은 용량의 도파민 작용제(프라미펙솔, 로피니롤), 신경병증성 통증이나 뇌전증 치료에 쓰이는 알파2델타 리간드 계열인 프레가발린(또는 가바펜틴)을 환자 특성에 따라 선택해 처방한다.
다른 치료에 반응하지 않는 중증 하지불안증후군에서는 저용량 오피오이드를 고려하기도 하는데, 의존성과 부작용을 고려해야 하므로 전문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밤만 되면 다리가 불편하고 움직이고 싶은 증상, 그냥 피곤해서 생기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하지불안증후군이라는 질환일 수 있으며, 치료하지 않고 방치하면 숙면을 방해해 건강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
허경 동래봉생병원 수면의학센터장 연세대 의대에서 학사, 석사를 한 후 경희대 대학원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초기에 봉생기념병원에서도 근무했다. 미국 예일대병원에서 뇌전증학을 연수한 뒤 세브란스병원 신경과 교수에 재직하며 연세대 의대 부설 뇌전증연구소장과 수면건강센터 소장을 지냈다. 대한뇌전증학회 이사장, 대한수면연구학회 회장을 역임한 국내 뇌전증·수면질환 분야 권위자. EBS '명의', KBS '생로병사의 비밀', MBC '닥터스' 등에도 출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