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이어트를 결심하고 콜라를 끊었다. 대신 무가당 주스로 바꿨다. 당을 줄였다고 생각했는데, 한 달이 지나도 체중계 숫자는 꿈쩍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답은 단순한 칼로리 계산 바깥에 있을 수 있다.
과당과 포도당은 뇌에 '배불렀다'는 신호를 전달하는 경로와 강도가 상이하다는 연구가 나왔다.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 모넬 화학감각 연구소 연구팀이 확인한 결과로, 6월 10일 국제학술지 《뉴런(Neuron)》에 실렸다.
포도당과 과당, 뭐가 다른가
포도당은 탄수화물이 소화되면서 몸에 흡수되는 대표적인 에너지원이다. 과당은 과일에 자연적으로 든 당으로, 포도당보다 단맛이 강하다. 설탕, 즉 자당은 포도당과 과당이 하나씩 결합한 것이다. 가공식품에 널리 쓰이는 액상과당은 과당과 포도당이 결합하지 않은 채 섞여 있는 감미료다.
포도당과 과당의 칼로리는 1g당 4kcal로 같다. 그런데 뇌가 이 둘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달랐다.
배고픔 스위치가 꺼지는 강도가 달랐다
연구팀은 생쥐에게 과당과 포도당을 각각 먹인 뒤, 뇌의 배고픔 세포 'AgRP 뉴런'이 얼마나 꺼지는지 실시간으로 관찰했다. AgRP 뉴런은 배가 고플 때 활발히 켜져 먹고 싶다는 충동을 만든다. 음식을 먹으면 꺼지면서 포만감이 온다. 뇌 속 배고픔 스위치라고 할 수 있다.
결과는 뚜렷했다. 포도당을 먹으면 이 스위치가 강하게 꺼졌다. 이에 비해 과당은 끄는 힘이 훨씬 약했다. 같은 칼로리가 들어와도 과당을 먹은 경우 뇌의 배고픔 신호는 충분히 가라앉지 않았다.
이런 차이는 신호 경로에 있었다. 과당이 소장에 들어오면 장 호르몬 PYY가 분비된다. PYY는 미주신경을 거쳐 뇌에 신호를 보내 AgRP 뉴런을 어느 정도 억제한다. 그런데 이 경로 자체가 포도당이 쓰는 방식보다 훨씬 덜 효율적이었다.
포도당은 이 통로와 별개로, 다른 경로를 통해 AgRP 뉴런을 훨씬 강하게 억제했다. 같은 칼로리를 먹어도 뇌에 닿는 포만감 신호의 세기가 달랐던 것이다.
물론 이번 연구는 동물실험으로 같은 경로가 사람에게도 동일하게 작동하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사람을 대상으로 한 앞선 연구들은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2013년 《미국의사협회지(JAMA)》에 실린 예일대 연구에서 과당 음료를 마시면 포도당 음료와 달리 식욕을 담당하는 뇌 영역이 충분히 가라앉지 않았다. 참가자들도 포만감을 덜 느꼈다고 답변했다. 2015년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서도 과당 음료를 마신 뒤 고칼로리 음식에 대한 욕구가 더 오래 남는다는 결과가 나왔다.
액상과당은 왜 더 당길까
연구팀은 과당과 포도당이 섞인 액상과당도 실험했다. 생쥐들은 세 당 가운데 액상과당을 가장 선호했고, 이 혼합당은 순수 과당보다 AgRP 뉴런 활동도 더 크게 낮췄다. 따라서 액상과당이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를 ‘배고픔 신호가 덜 꺼져서’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이번 연구의 핵심은 뇌가 당을 모두 같은 방식으로 처리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과당과 포도당은 같은 열량을 내지만, 장에서 뇌로 전달되는 신호 경로와 세기는 달랐다. 둘이 함께 들어온 액상과당은 또 다른 반응을 나타냈다. 연구자들은 이 결과가 액상과당 함유 식품과 음료가 왜 유난히 끌릴 수 있는지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봤다.
다만 생쥐들이 액상과당을 더 찾은 이유를 하나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단맛 자체, 포도당·과당 혼합 신호, 보상 학습 등이 함께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결국 액상과당 문제는 단순히 ‘덜 배부르게 해서 더 먹게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뇌가 당의 종류와 조합을 다르게 받아들이고, 그 차이가 음식 선호에도 영향을 줄 수 있음을 알려준다.
가공식품·음료 업체가 액상과당을 쓰는 이유로 가격, 단맛 조절, 액상 원료의 가공 편의성 등이 손꼽힌다. 원재료명에는 '액상과당', '기타과당', '고과당콘시럽', '옥수수시럽' 등으로 표시될 수 있다. 탄산음료, 과자, 빵, 케첩, 드레싱, 요거트 등 가공식품 전반에 두루 쓰인다.
특정 음료에 어떤 감미료가 들어 있는지는 제품마다 다를 수 있으므로, 원재료명을 직접 확인하는 습관이 중요하다.
'무가당'의 함정, 성분표 읽는 눈 중요
무가당 주스는 당류를 줄인 일반적인 제로 음료가 아니다. 오렌지·사과 같은 과일을 짜서 만든, 설탕을 따로 넣지 않은 주스다.
'무가당'은 제조 과정에서 설탕을 별도로 첨가하지 않았다는 뜻일 뿐이다. 당류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 과일 자체에 이미 당류가 들어 있다.
과일 음료라고 해서 당류가 낮은 것도 아니다. 한국소비자원이 어린이음료를 조사한 결과, 일부 과일맛 음료의 100mL당 당류는 11.0~13.1g으로 콜라 10.8g보다 높았다.
제품마다 차이는 있지만, 앞면의 ‘무가당’ 문구만 보고 안심하기는 어렵다. 액상과당을 따로 넣지 않아도 과일 자체의 당류가 이미 들어 있기 때문이다. 대형마트에서 파는 농축환원 페트 제품은 그보다 낮은 경우도 있지만, 당류의 원천은 마찬가지로 과일 유래 당류다.
이번 연구가 경계하는 것은 설탕이나 액상과당만이 아니다. 과당을 음료 형태로 빠르게 마실 때, 뇌의 포만 신호는 충분히 따라오지 못할 수 있다. 오렌지를 통째로 먹을 때 식이섬유가 함께 들어와 당 흡수를 늦추고, 씹는 행위 자체가 포만감 신호를 보낸다. 주스로 만들어 마시는 순간 그런 완충 장치는 약해진다.
이번 연구가 주는 메시지는 세 가지로 요약된다.
칼로리가 같아도 뇌 반응은 다르다. 과당은 포도당과 칼로리가 같지만 AgRP 뉴런을 훨씬 약하게 억제한다. '같은 칼로리니까 괜찮다'는 생각이 틀릴 수 있다.
'무가당'은 '당류 없음'이 아니다. 설탕을 넣지 않았다는 뜻이지, 과당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과일을 통째로 먹는 것과 짜서 마시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더 먹고 싶다는 느낌은 의지력 부족이 아닐 수 있다. 과당 중심 감미료가 포만 신호를 충분히 올리지 못한 탓일 수 있다. 이번 연구는 그 가능성을 뇌 수준에서 확인했다.
성분표에서 '액상과당', '옥수수시럽', '기타과당', '결정과당'이 보이면 이 세 가지를 떠올려볼 만하다.
더 먹고 싶었던 건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뇌가 받은 포만 신호가 충분히 강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