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공의 수련은 오랫동안 대학병원 중심으로 이뤄졌다. 중증질환, 희귀질환, 고난도 수술을 배우기엔 좋은 구조다. 다만 지역 주민이 실제로 자주 만나는 만성병 관리, 건강검진 후 상담, 외래 기반 수술, 투석 혈관 관리, 난임, 수면장애 같은 진료 경험은 상대적으로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부터 진행 중인 '전공의 다기관 협력수련 시범사업'은 이 공백을 줄이려는 실험이다. 상급종합병원(수련책임기관, 3차병원)이 지역의 포괄2차종합병원~전문병원~공공병원~동네 병·의원들과 네트워크를 구성, 전공의가 여러 의료현장을 두루 경험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올해 2차년도 사업에는 전국 15개 협력수련 네트워크가 선정됐다. 부울경에선 고신대복음병원, 동아대병원, 울산대병원 등 3개 대학병원이 참여한다. 이 가운데 고신대복음병원은 지난해 1차년도 사업에 이어 올해도 연속 참여한다. 15곳 수련책임기관 가운데 협력기관이 가장 많은 8개 병·의원 협력 네트워크를 가동 중이다.

지역·필수의료 배우려면 수련 현장도 넓어져야
다기관 협력수련의 정책적 의미는 단순히 전공의를 다른 병원에 보내는 데 있지 않다. 핵심은 수련의 시야를 넓히는 것이다.
대학병원은 중증·응급·희귀질환 진료의 중심이다. 하지만 지역의료는 대학병원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1차 의료기관, 전문병원, 2차 병원, 공공병원이 서로 연결돼야 지역 주민의 일상 진료와 필수의료가 작동한다.
전공의 수련도 마찬가지다. 특정 전공과와 대학병원 입원·수술 중심 수련만으로는 지역에서 실제로 마주할 환자 흐름을 충분히 익히기 어렵다. 외과계 수련에서도 비슷한 지적이 있었다. 수술실에 들어가도 보조 역할에 머무는 시간이 많고, 전문의가 된 뒤 지역 병원에서 자주 다루게 될 기본 술기와 외래 기반 판단 경험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다기관 협력수련은 이런 한계를 보완할 수 있다. 전공의가 지역 병·의원과 전문병원에서 흔한 환자군, 반복되는 술기, 진료 의뢰와 회송 과정을 직접 경험하면 지역의료를 책이나 정책 구호가 아니라 실제 현장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고신대복음병원, 8개 병의원과 다양한 협력 네트워크 결성

고신대복음병원(병원장 최종순)은 2025년 하반기 1차년도 시범사업을 시행했고, 사업 기간 종료에 따라 2026년 2월 당시 전공의 파견수련을 마쳤다. 지난해엔 레지던트 1인당 2개 협력병원 참여가 필수였다. 다양한 현장을 경험한다는 장점은 있었지만, 이동과 일정 조율, 수련 연속성 측면에선 부담도 있었다.
올해는 요건이 완화됐다. 2026년 사업부터는 인턴과 레지던트 모두 1인당 1개 협력기관만 참여하면 된다. 고신대복음병원은 이 제도 변화 속에서도 전공의들의 다양한 수련 요구를 반영하기 위해 기존에 구축한 8개 협력기관 네트워크를 활용할 계획이다.
고신대복음병원의 협력수련은 진료과별 필요에 맞춰 설계됐다. 내과 전공의는 소화기내과와 건강검진 현장에서 위·대장내시경, 소화기병 진단, 만성병 추적관찰을 경험한다. 건강검진 결과를 해석하고 환자에게 생활습관 개선과 추가 검사 필요성을 설명하는 과정도 수련의 일부다.
외과 분야에선 항문질환 전문 진료를 경험한다. 고해상도 항문초음파, 복잡치루 수술, 만성 치핵 고주파 치료 등은 대학병원에서도 접할 수 있지만, 전문기관에서는 환자의 첫 증상 평가부터 수술 결정, 수술 후 경과관찰까지 더 연속적으로 볼 수 있다.
신장내과와 혈관외과 분야에선 만성콩팥병 환자의 말기콩팥병 생애계획, 투석 환자의 혈관 접근로 관리, 동정맥로 수술 등을 경험한다. 신경과 분야에선 흔한 신경과 질환 검사, 수면장애와 뇌전증 진료를 접한다. 산부인과 분야에선 난임·인공수정 등 생식내분비 전문 클리닉 수련도 포함됐다.
기대와 함께 우려도
물론 이 사업에 기대만 있는 것은 아니다. 도입 초기 의료계 일각에서는 수련의 질 관리, 협력기관의 행정 부담, 지도전문의 역할, 의원급 의료기관 수련의 적절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전공의 부족 상황에서 협력수련이 인력 공백을 채우는 파견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다.
그런 지적들은 제도 정착 과정에서 반드시 살펴야 할 대목들이다. 그래서 협력기관 수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전공의가 어떤 환자를 보고, 어떤 술기를 익히며, 누가 지도하고, 어떻게 평가와 피드백을 받을지까지 구체화돼야 한다.
고신대복음병원 케이스에서도 그런 양면이 함께 확인된다. 전공의들은 상급종합병원에서 주로 접하는 중증·희귀질환뿐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흔한 만성병 환자군과 실제 술기를 폭넓게 경험해 만족도가 높았다. 사후 간담회에선 "향후 롤모델을 가까이서 경험했다"는 반응도 있었다. 반면 적지 않은 국가 재정 지원이 있음에도 행정 업무 부담 때문에 병원은 당혹스러워했다. 동네 병의원 협력기관들에선 이를 전담할 행정인력이 부족해 또 다른 어려움이 있었다.
지역의사제 성공 열쇠는 '지역을 아는 의사'
다기관 협력수련은 앞으로 지역의사제와도 연계될 전망이다. 지역의사제가 지역에서 일할 의사를 선발하고 정착시키는 제도다. 정부는 서울을 제외한 32개 의대에서 지역의사 선발전형을 운영하고, 의무복무지역과 수련 인정 기준 등을 제도화하고 있다.
하지만 지역의료는 의사를 지역에 배치한다고 저절로 살아나지 않는다. 지역 환자가 어디서 진료를 시작하고, 어떤 경우 상급종합병원으로 보내며, 치료 후 어떻게 다시 지역으로 돌아오는지 알아야 한다.
전공의 시절부터 이런 흐름을 직접 밟아보는 것이 지역완결형 의료체계의 실질적 출발점이다. 다기관 협력수련은 그 교육 기반이 될 수 있다.
고신대복음병원 관계자도 "다기관 협력수련은 전공의들이 대학병원 안에서 경험하기 어려운 다양한 의료현장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며 "지역 의료기관과 협력해 균형 잡힌 임상 역량을 갖춘 전문의를 양성하겠다"고 했다.
지역의료의 위기는 병상이나 장비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역을 아는 의사, 지역 병원을 이해하는 의사, 지역 환자의 흐름을 경험한 의사가 필요하다. 고신대복음병원의 8개 병원 협력수련 네트워크는 그럴 가능성을 부울경에서 먼저 시험해보는 값진 모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