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츠하이머를 일으키는 독성 단백질 덩어리, 이른바 병리(病理)가 뇌에 가득 쌓였는데도 치매는 오지 않을 수 있다. 뇌 검사에선 알츠하이머 병리 소견이 나왔는데도 멀쩡한 사람이나 부검 결과 알츠하이머 병리가 뚜렷했는데도 생전엔 기억력이 또렷했던 사람이다. 의사들이 설명하기 어려운 사례들이다.
학계는 이 현상에 '인지 회복탄력성(cognitive resilience)'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왜 그런지는 오래도록 몰랐다. 쥐 실험 결과가 대부분이었고, 사람 뇌에서 그 차이를 직접 확인한 연구는 드물었다.
뇌과학 전문 연구기관인 네덜란드 뇌연구소 에브게니아 살타 박사팀이 최근 인간 뇌 조직을 직접 분석해 그 답을 찾아냈다. 뇌의 기억 중추인 해마 깊숙이 있는 '미성숙 뉴런'이었다.
병리는 있었는데, 치매는 오지 않았다
인간의 뇌는 성인이 된 뒤에도 새 뉴런을 만들어내지만 극히 드물다. 다 자라려면 중간 단계를 거친다. 아직 덜 자란 채로 있는 이 세포들이 바로 미성숙 뉴런이다. 쥐 실험에서는 손상된 신경망을 메우는 데 관여한다는 결과가 나왔지만, 인간 뇌에서는 존재 자체가 논란이었다.
연구팀은 네덜란드 뇌은행에 기증된 세 그룹의 뇌 조직을 가져왔다. 사후 급속 냉동 보관된 조직들로서 알츠하이머 독성 단백질이 없는 정상군, 생전 치매 진단을 받은 알츠하이머 환자군, 독성 단백질은 가득했지만 끝내 치매가 오지 않은 '인지 회복탄력군'이었다. 세 그룹은 기증자 모두 평균 80세를 넘겼다.
연구팀은 이 조직에서 세포핵을 꺼내 유전자 활동 흔적을 읽어내기로 했다. 그 사람이 살아있을 때 뇌에서 일어난 일의 흔적을 들여다보기로 한 것이다.
다만 세포가 너무 드물어 기존 방법으로는 잡아낼 수가 없었다. 연구팀은 개별 세포의 유전자 활동을 한 번에 읽어내는 분석법을 적용, 미성숙 뉴런이 모여 있는 해마의 치아이랑(dentate gyrus, 해마 안쪽 기억 형성에 관여하는 부위)만 파고들었다.
숫자는 같았지만 행동이 달랐다
분석 결과 80세가 넘은 뇌에서도 세 그룹 모두 미성숙 뉴런의 흔적이 나왔다.
연구팀은 회복탄력군에는 이 세포가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예상했는데 세 그룹의 세포 수 차이는 크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가가 아니었다.
왜 이리 되었을까. 알츠하이머 환자군의 미성숙 뉴런에서는 염증 반응이 과도하게 켜져 있었다. 염증은 원래 몸속 세균이나 손상된 조직을 제거하는 방어 작용이지만, 오래 지속되면 오히려 정상 세포까지 해친다. 이 세포들에서는 바로 그 상태가 진행 중이었다. 세포 자체가 스트레스 신호를 보내며 버티지 못하고 있었다.
회복탄력군은 달랐다. 죽어가는 것이 아니라 버티고 있었다. 염증 신호가 낮게 가라앉아 있었고, 스스로 버티면서 주변 조직을 안정시키는 신호들이 유지되고 있었다.
같은 뇌, 다른 결말
이 세포들이 하는 일은 빈자리 채우기가 아니었다.
살타 박사는 "죽은 세포 자리에 새 세포가 들어서는 방식은 아닌 것 같다"며 "주변 조직이 기능을 유지하도록 돕는 역할인 것 같다"고 추정했다.
같은 병리가 있어도 뇌가 어떻게 버티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살타 박사는 "어떤 뇌는 버티고 어떤 뇌는 무너진다. 그 갈림길이 어디인지 알게 되면 새 치료의 실마리가 나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연구는 학술지《Cell Stem Cell》에 지난달 'Transcriptional profiles of immature neurons in aged human hippocampus track Alzheimer's pathology and cognitive resilience'라는 제목으로 게재됐다.
연구팀은 이번 결과가 치매를 막는 원인을 직접 입증한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미성숙 뉴런의 변화가 회복탄력성의 원인인지, 결과인지는 아직 모른다. 사후 냉동 조직 분석인 만큼 인과관계 증명에 한계가 있고, 이 세포들이 다른 뇌세포들과 어떻게 얽혀 있는지도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다.
왜 어떤 뇌는 끝까지 버티는지, 그 이유는 아직 모른다. 다만 보다 분명해진 사실은 있다. 알츠하이머 독성 단백질이 뇌에 쌓인다고 치매가 오는 것은 아니다.
80세가 넘은 뇌에서도 아직 미성숙 상태의 뉴런 흔적이 남아 있었고, 어떤 뇌는 이 세포들과 함께 끝까지 기능을 유지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