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직 간호사로 평소 별다른 지병 없이 지내던 60대 일본인 여성은 우울증이 다섯 번째로 재발돼 힘겨운 나날을 보냈다. 게다가 몸이 돌처럼 굳고, 손이 떨리고, 혼자서는 일어설 수도 없어 휠체어를 타야 했다. 의료진은 일단 이 환자가 우울증과 파킨슨병에 함께 걸린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약 3년에 걸친 추적 관찰 끝에 ‘노인성 우울증에 의한 가성(가짜) 파킨슨증’라는 진단을 최종적으로 내렸다.
일본 구마모토 유게 신경정신과 병원 연구팀은 심각한 정신운동(Psychomotor) 지연으로 파킨슨병과 구별하기 힘든 가성 파킨슨증을 보인 60대 여성 환자가 극적으로 회복된 사례를 학계에 보고했다. 이 환자는 당시 수개월간 강력한 항우울제(보르티옥세틴)와 보조제(아리피프라졸)를 복용 중이었으나, 신체 마비 증세는 오히려 더 나빠지고 있었다.
연구팀은 그녀의 증상이 약물 부작용인지 확인하기 위해 기존 약물을 끊게 하고 2주간 지켜보았다. 하지만 증상이 호전되지 않자, 진단 목적으로 파킨슨병 치료제인 레보도파를 투여하기 시작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약을 먹자마자 환자는 스스로 침대에서 일어났고, 8주 차에는 탁구를 칠 정도로 회복됐다. 우울한 기분과 다른 환자를 돌보던 자신이 가족에게 큰 짐이 되고 있다는 죄책감에서 말끔히 벗어났다.
퇴원 후 극적인 반전이 일어났다. 치료 78주 차(약 1년 6개월)에 시행한 정밀 검사 ‘도파민 수송체 스캔(DaTscan)’ 결과, 환자의 뇌 속 도파민 세포는 아무런 손상 없이 정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정 신경(흑질 선조체의 신경)이 파괴되는 진짜 파킨슨병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후 레보도파를 끊자 환자는 다시 우울증에 빠졌고, 재투여하자 다시 회복됐다.
치료를 시작한 지 약 3년이 지났을 때의 일이다. 연구팀은 뇌 세포가 살아있는데도 도파민 기능이 일시적으로 멈춘 ‘노인 우울증에 의한 가성 파킨슨증’이라는 진단을 이 환자에게 최종적으로 내렸다.
이 사례 연구 결과는 최근 국제 학술지 《임상 사례 보고(Clinical Case Reports)》에 실렸다.
마음이 병들면 몸도 아플 수 있다...우울증, 육체를 멈춰 세우다
마음의 병은 신체 통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스트레스, 우울증, 불안장애는 뇌를 피로하게 해서 두통, 소화불량, 심혈관병 등을 일으킬 수 있다. 과도한 스트레스는 교감신경을 자극해 혈압을 높이고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을 분비해 신체 균형을 무너뜨린다. 우울증이나 분노가 지속되면 면역력이 뚝 떨어져 여러 가지 병에 걸리기 쉽다. 대표적인 적신호로는 소화불량이나 식욕 변화 같은 소화기 증상, 두통과 집중력 저하 같은 신경계 증상을 꼽을 수 있다. 가슴 답답함이나 두근거림 등 심혈관계 증상과 함께 온몸의 기능저하로 인한 만성 피로, 기력 상실, 수면 장애 등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파킨슨병은 뇌 세포가 사멸하는 난치병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노인 우울증 환자는 뇌 세포가 멀쩡해도 기능만 뚝 떨어지는 ‘도파민 결핍 상태’에 빠질 수 있다. 특히 무표정한 얼굴, 구부정한 자세, 느릿한 동작이 나타나면 이를 단순 노화나 파킨슨병으로 단정 짓기 전에 정신과적 문제를 잘 살펴야 한다. 이번 사례는 항우울제를 먹어도 증상이 나아지지 않는 노인 우울증 환자에게 파킨슨병 약인 레보도파가 뜻밖의 돌파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정밀 검사인 ‘도파민 수송체 스캔(DaTscan)’에도 분명한 한계가 있다. 초기 단계에서는 파킨슨병인데도 스캔 결과 정상으로 나올 확률이 높아 오진의 위험을 안고 있다. 한국에선 이 검사가 건강보험 50%를 적용받는 선별급여 항목이다. 비용은 병원 규모에 따라 40만~50만원 선이다. 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비급여 진료 때에는 100만 원 안팎이다.
왜 3년이나 걸렸나?...최종 확진을 위한 기다림과 추적 관찰의 시간
연구팀이 최종 진단을 내리기까지 3년이 걸린 데에는 치밀한 검증 전략이 나름대로 숨어 있다. 첫째, 영상 검사의 불완전성 보완과 타이밍이다. 치료 78주 차(1년 6개월) 시점의 검사에서 정상이 나왔더라도 초기 파킨슨병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었다. 연구팀은 이후 1년 6개월을 더 지켜보며 환자의 증상이 더 이상 악화되지 않는 것을 확인했고, 시간이 흐를수록 나빠지는 파킨슨병의 진행성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을 비퇴행성 질환의 결정적 근거로 삼았다.
둘째, 약물 반응을 통한 원인의 역추적이다. 치료 91주 차에 파킨슨병 약(레보도파)을 끊자 신체 마비와 우울증이 동시에 재발했다. 레보도파는 뇌에 도파민을 보충하는 약이며, 도파민은 신체 운동과 정신적 활력을 모두 담당하는 핵심 물질이다. 연구팀은 약 하나에 몸과 마음이 동시에 반응하는 것을 확인했고, 이 환자가 앓는 병의 실체가 뇌 세포의 사멸이 아닌 우울증에 의한 ‘도파민 기능의 일시적 중단’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3년의 세월은 환자에게 난치병인 파킨슨병이 아니라 치료할 수 있는 병인 우울증이라는 희망을 안겨주기 위해 필요했던 검증의 시간이었다고 볼 수 있다.
[자주 묻는 질문]
Q1. 우울증인데 왜 파킨슨병 약을 먹나요?
A1. 노인 우울증 중에는 뇌 내 도파민 활성도가 극도로 낮아져 신체가 굳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 도파민 전구체인 레보도파를 투여하면 멈춰있던 신체 회로가 다시 작동하면서 기분 조절 기능까지 함께 회복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Q2. '도파민 수송체 스캔(DaTscan)' 검사 결과가 정상이라면 파킨슨병은 무조건 아닌가요?
A2. 대개는 그렇지만 100%는 아닙니다. 아주 초기이거나 이 사례처럼 우울증에 의한 가성 파킨슨증일 때 정상으로 나옵니다. 전체의 약 20%는 스캔 결과와 증상이 일치하지 않으므로 장기적인 추적 관찰이 필수적입니다.
Q3. 이런 '가짜 파킨슨병'을 일반인이 구별해낼 방법은 없나요?
A3. 매우 어렵습니다. 다만 파킨슨병은 서서히 진행되는 반면, 우울증에 의한 가성 파킨슨증은 극심한 우울감과 함께 상대적으로 더 빨리 신체 증상을 악화시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항우울제 치료에도 차도가 없다면 즉시 신경과와 정신건강의학과의 협진을 받아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