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 정부 들어 산업 재해와 플랫폼 노동자 사망 사고를 낮추려 애쓰고 있는 가운데, 막상 정부 산하 기관이 최근 내놓은 공식 사망 통계는 오히려 거꾸로 올라가고 있다. 범정부적 차원에서 추진해오던 'HP(Health Plan)2030' 목표 수준에 근접하며 조금씩 내려가던 손상 사망률이 최근 4년 간 다시 반등하고 있는 것.
HP2030은 금연, 절주, 영양, 신체활동 등 6개 부문, 28개 중점과제에 걸쳐 2030년까지 달성하겠다는 범정부 차원 건강정책 과제다. 그중 핵심 과제들은 매년 팩트시트(fact sheet)로 그때가지 달성한 주요 실적과 이후의 추계 정보 등을 공개 발표한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원장 김헌주)이 최근(11월 27일) 내놓은 'HP2030 팩트시트 59호’(2021~2024년, 손상 편)에 따르면, 인구 10만 명당 손상사망률은 2018년 54.7명에서 2019년 50.9명으로 줄었다. 하지만 2020년 이후 다시 올라 2021년 53.1명, 2023년 54.4명으로 '원위치'됐다.
'손상 사망'은 질환 등 다른 이유가 아니라 교통사고, 산업재해, 낙상, 익사, 화재 등 외부 요인에 의한 사망을 말한다. 자살과 타살 사망도 들어간다.

2023년 기준 전체 인구수(약 5150만 명)로 환산하면 한 해 동안 약 2만 8천 명이 손상 때문에 사망했던 것. 그중 '비의도적 손상사망자'만 약 1만 3700명이나 된다. 자살과 타살을 제외한, 의도하지 않은 사고 사망자만 그 만큼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부터 중대재해처벌법, 안전속도 5030, 산업안전 강화대책 등을 쏟아냈지만, 윤석열 정부를 거치면서 사망률 지표는 기대와 다르게 흘러갔다는 얘기다. 결국 이재명 정부는 원위치로 상승한 그래프를 다시 꺾어야 하는 출발선에 서 있는 셈이다.

만성질환은 개선됐는데…산재·사고 사망자 수는 '제자리'
HP2030 목표와의 격차도 크다. 손상사망률을 2018년 인구 10만 명당 54.7명에서 2030년 38.0명(약 2만 명)까지 낮추겠다는 게 당초 계획. 그러자면 2023년(약 2만 8천 명)과 비교해도 실제 사망자를 연간 8천 명 이상은 줄여야 한다.
그러나 현 추세대로라면 2030년에도 10만 명당 51.4명(연간 약 2만 6500명) 수준에 머물 것으로 추계된다. 목표 달성도는 19.8%에 불과하다.
비의도적 손상사망률(자살·타살 제외)도 마찬가지다. 2030년 목표인 10만 명당 18.0명(연간 약 9300명)과 2023년 현재 26.5명(약 1만 3700명) 간 격차가 좁혀지지 않고 있다. 목표 달성을 위해선 2030년까지 연간 평균 4400명씩 사망자를 줄여야 한다.
이는 손상 분야가 HP2030 전체 과제 중 성적이 특히 나쁜 축에 속한다는 뜻이다. 만성질환 관리, 암 조기검진, 금연과 절주 지표는 대체로 개선세를 보이는 것과 대조를 보인다.
70대 낙상부터 플랫폼 노동까지… "손상 사망의 구조가 바뀌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법·제도·데이터 인프라는 그동안 상당히 정비됐다. 중대재해처벌법, 손상예방관리법, 손상예방관리계획(2022~2026년)이 갖춰졌고, 국가손상정보포털과 '손상팩트북(Injury Factbook)' 발간 등 통계·감시체계도 강화됐다.
그럼에도 사망률이 다시 오른 것은 법과 데이터만으로 현장의 행동 변화를 보장할 수 없다는 방증이다. 부처별로 쪼개진 책임 구조, 고령 노동과 플랫폼 노동 확대로 인한 위험 분산, 지자체 예산과 인력 한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한 예방의학 전문가는 "요즘 손상사망을 보면 산재만 볼 게 아니라 70~80대 노인의 낙상과 골절을 같이 봐야 한다"며 "한 번 넘어져 고관절이 부러지면 치매 악화, 요양병원 입원, 사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통계에 찍히는 '손상사망 1건' 뒤에는 초고령사회의 구조적 취약성이 겹쳐 있다"고 지적했다.

산업보건 분야 전문가들도 고령 노동자와 특수 고용, 플랫폼 노동자의 안전 관리 사각지대를 중요 문제로 꼽는다. "과거 젊은 남성 노동자를 기준으로 짜인 안전 기준이 60~70대 노동자, 배달 및 퀵서비스 기사, 프리랜서 기술직에 그대로 적용되기 어렵다. 이 구조를 건드리지 않으면 손상 사망 그래프를 다시 낮추기 힘들다"는 것이다.
AI·스마트 기술과 노쇠 예방, '두 번째 반전 카드' 될 수 있을까?
그런 대반전을 이루기 위한 핵심 전략으로 일각에서는 AI와 스마트 안전기술, 노쇠(frailty) 예방 전략을 주시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산업 현장에서는 AI CCTV, 착용형 센서, 스마트 건설·공장 시스템이 위험 행동을 실시간 감지해 작업을 멈추거나 경고하는 기술이 상용화 단계에 들어섰다.
초고령사회 진입 이후, 프레일티 예방 관리의 중요성도 더 커지고 있다. 프레일티(frailty)란 나이가 들면서 신체 기능과 인지 능력이 떨어져 낙상, 골절 같은 손상에 취약해지는 상태. 우리보다 초고령사회에 일찍 진입한 일본은 2015년부터 ‘프레일’(フレイル) 예방을 국가 차원의 핵심 과제로 설정해 추진해왔다.
한 노인의학 전문가는 "70대 이상 노인의 낙상사망을 줄이려면 근력 운동, 균형 훈련, 영양 관리를 통한 노쇠 예방이 핵심"이라며 "노쇠 상태를 조기에 발견하고 관리하면 낙상과 사망 위험을 크게 낮출 수 있다"고 했다. 이에 질병관리청은 2023년 노인 낙상 예방 운동 프로그램을 개발해 보급했고, 국제안전도시 전략도 지역사회 차원의 손상 예방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지금 필요한 것은 '기술을 도입했느냐', '프로그램을 만들었느냐'가 아니다. 그 결과로 손상사망률이 실제로 몇 퍼센트 줄었는지를 실용적으로 따져야 하는 단계이기 때문.
결국 이재명 정부의 노동·안전·도시 정책, 그리고 초고령사회 대비 노쇠 예방 전략이 HP2030 손상 지표와 어떻게 연결되는 지에 따라, 최근 4년 간 제자리 걸음을 하던 손상 사망 그래프가 다시 아래로 꺾일 수 있을지 여부가 갈릴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