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빗장 열린 ‘원격의료’…한국은 여전히 규제중

[원격의료 세계인의 삶을 바꾼다] (1) 한국 원격의료 현황과 장애물은?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사람들의 이동이 크게 제한되면서 30여 년간 논의에 그쳐온 ‘원격의료’의 빗장이 풀렸다. 비상 상황에서 한시적으로 허용된 원격의료플랫폼은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사라질 운명 앞에 놓였다.

국민 4명 중 3명이 비대면 진료는 원하고 있다, 이는 미국 중국 일본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각국이 이르면 1990년대, 늦으면 2010년대에 원격의료를 도입한 세계적 흐름과도 동떨어져 있다. 전 세계 원격의료 시장 규모는 2020년 559억 달러(80조4400억 원)에서 매년 22.4%씩 성장해 2028년에는 2989억달러(430조1170억 원)가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국의 ICT 기업들이 원격의료 플랫폼 기술을 개발해 해외로 활발히 진출하고 있는 것은 국내 법규의 미비와 의료계의 찬반 논란 때문이다. 한국은 ‘편리한 국민 건강 증진과 시장’이란 두 마리 토끼를 놓치고 있는 셈이다.

코메디닷컴은 세계 각국의 생생한 원격의료 실태를 살펴보고 한국의 원격의료 도입 가능성과 방안을 제시하기 위해 ‘원격의료, 세계인의 삶 바꾼다’ 기획 시리즈를 시작한다. 이 시리즈가 K-원격의료의 방향을 제시하고 전 세계로 확산될 가능성을 점검한다.

■ 코로나19로 빗장 풀린 원격의료

서울에 사는 40대 초반 워킹맘 A씨는 “코로나 상황에서 비대면 진료 서비스를 이용했는데 AI를 통해 의료기관을 추천받고 편한 시간에 진료를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예약된 시간에 의사와 전화로 상담하고 약을 처방받았다. 약은 퀵서비스를 집에 배달됐다. 그는 “워킹맘이나 바쁜 직장인들은 병원을 가지 않고 비대면 진료를 통해 약을 지을 수도 있으니 굉장히 유용했다”고 후기를 남겼다.

한국에선 평상시 원격의료는 불법 행위다. A씨가 비대면 진료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정부가 2020년 2월 감염병에 대한 위기 경보 수준이 ‘심각’ 단계인 상황에서 한시적으로 비대면 진료를 허용했기 때문이다. 코로나 19 상황이 지나면 비대면 진료는 다시 불법이 된다.

지금까지 원격의료는 시범 사업 형태로만 허용됐다. 2000년 강원도 16개 시군에서 의사-환자간 원격의료 시범사업이 있었다. 다양한 형태의 원격의료 시범사업은 ‘실험실용’이었지 ‘실생활용’은 아니었다.

지난 18대부터 20대 국회에 걸쳐 의사-환자간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을 추진했으나 매번 무산됐다. 찬성 측은 의료 접근성이 강화되고, 의료서비스 다양성이 확대된다는 걸 내세웠다. 반대 측은 대형병원으로의 환자 쏠림, 의료의 질 저하 등 부작용을 강조했다. 찬반이 엇갈리고 의료 공급자인 의료계의 강한 반대로 인해 진척이 없었다.

원격의료는 코로나19로 인해 한시적으로 빗장이 풀렸다. 원격의료는 빠르게 확산됐다. 의사와 통화나 화상으로 진료를 받으면 환자가 있는 동네 약국으로 처방전이 가고 택배 업체를 통해 약이 문 앞에 배달되는 시스템이었다.

의료 소비자의 반응은 좋았다. 의료 공급자의 참여도도 높아졌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비대면 진료를 하는 의원급 병원은 2020년말 9464 곳에서 2022년 5월 말 1만8970 곳으로 2배 정도 증가했으며, 비대면 진료건수는 2020년 말 96만 건에서 2022년 5월 말 1083만 건으로 11배 이상 증가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비대면 진료로 약까지 받은 사람들에겐 건강 관리의 ‘신세계’가 열린 셈이다. 비대면 진료가 계속 이뤄져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의료계의 원격의료를 대한 인식에도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가 올해 3월 실시한 원격의료 관련 회원 인식조사 결과, 응답자 955명 중 623명(65.2%)은 원격의료에 반대했지만 332명(34.8%)은 찬성했다. 비록 반대 의견이 많았지만 그 비율은 2014년 조사 때보다 크게 줄었다. 2014년에는 원격의료 찬성 응답이 3.48%에 불과했다.

원격의료는 세계적 추세이지만 우리나라는 의료계의 반대로 원격의료가 진척을 보이지 않고 있다. [사진은 2019년 7월 25일 대한의사협회 원격의료사업 추진 규탄 기자회견]
대한의사협회의 원격진료 도입 반대 입장은 단호하다. 의사협회는 지난해 12월 “합리적 검토 없는 원격의료 및 비대면 플랫폼 논의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는 성명서를 냈다. 의협은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의료사고에 대한 책임소재, 원격이라는 특성으로 발생할 수 있는 환자 개인정보의 유출 등 부작용에 대한 대비책이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 법적·제도적 보완뿐만 아니라 기술적 인프라가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원격의료는 시기상조다”는 입장이다.

대한의사협회 박수현 홍보이사는 “비대면 진료에 대한 국민의 요구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 비대면 진료가 보조적 수단으로서 환자의 편의를 위해 제대로 제공될 수 있도록 제도화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이후 국회의원들의 비대면 진료 합법화를 위한 의료법 개정안 발의가 이어지자 보건의료 단체들은 우려와 반대 목소리를 내놓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대한치과의사협회, 대한약사회 등 보건의약 3단체는 지난해 10월 “영리기업이 앞 다투어 플랫폼 선점을 위해 과도한 의료 이용을 조장하고 불법적인 의약품 배송을 일삼고 있다”는 성명서를 냈다.

보건복지부는 현행법상 허용되는 ‘의사-의료인 간 원격 협진의 활성화’를 추진해 의료 접근성과 효율성을 모색하겠다는 원론만 밝히고 있다. 의료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대면 진료가 불가능하거나 곤란한 경우에 원격의료 도입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게 공식 입장이다.

■ 원격의료 업체들은 기대감 속에 우려

현행 법대로라면 원격 진료와 약 배달을 제공하는 원격 진료 플랫폼은 불법이다. 의료법 17조, 33조, 34조와 약사법 50조에 어긋난다. 하지만 원격 의료 관련 업계는 규제 완화에 대한 기대감을 갖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자 시절 “비대면 진료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며 “의료계와 새로운 혁신을 추구하는 사업자 간 이해관계가 서로 상충되지 않는 방향으로 이끌어 첨단기술의 혜택을 국민 모두가 누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윤석열정부 110대 국정 과제’에는 비대면 진료 제도화 추진 계획이 포함됐다. 의료취약지 등 의료 사각지대 해소 및 상시적 관리가 필요한 환자를 대상으로 일차의료 중심 비대면 진료 제도화를 추진하겠다고 명시했다.

현재 원격진료는 철옹성 같은 규제의 벽 앞에 놓여 있다. 삼정KPMG가 2020년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 상위 100대 기업 중 63개사가 한국에 들어오면 사업이 아예 불가능하거나 제약을 받는다. 원격 진료, 원격 환자 모니터링, 의약품 배송 등이 모두 불법이기 때문이다.

KT는 하노이 의대와  ‘만성질환 관리 서비스 개발, 의료 AI 공동연구 및 현지 의료진 교육을 위한 업무협약’을 4월 체결하고, 원격의료 플랫폼을 중심으로 한 베트남 헬스케어 시장에 진출했다 .

KT는 2022년 4월 하노이 의대와 만성질환 환자들에 대한 공동연구 및 원격의료 시범 서비스의 출시를 위한 협약을 체결했다. 또 5G 헬스케어 플랫폼 서비스를 통해 화상 및 음성통화, 문자채팅, AR드로잉 기능 등을 기반으로 실시간 비대면 진료를 볼 수 있는 의료 특화 영상통화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KT가 외국으로 나간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은 원격의료가 불법이기 때문이다. 규제가 적은 해외에서 법인 신설과 헬스케어 기관 및 기업과의 제휴 등을 통해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 한국 디지털헬스케어 산업의 현 주소다.

한국벤처기업협회는 “현재 의료법은 원격진료를 허용하고 있지 않아 국내 투자를 위축시키고, 산업 발전을 막고 있어 ‘K-의료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키울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이다”고 말했다.

민간 기관인 파이터치연구원은 ‘원격의료 서비스 규제 완화의 경제적 파급효과’란 보고서에서 규제를 풀면 국내총생산(GDP)이 약 2조4000억원(0.15%) 증가할 것으로 추산했다. 규제를 완화하면 전체 진료비는 1.42% 줄고, ​의료 서비스 공급은 1.88% 느는 효과가 있다고 전망했다. ​

한국은 우수한 의료 및 IT 인프라가 합쳐지면 세계적인 원격 의료 강자가 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다.

의료 IT 관계자들은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원격진료 규제를 과감히 개선하고 향후 신종 전염병 출현 및 시장 확장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한국의 우수한 의료기술 및 스마트 의료기기가 세계 시장에 진출할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고 정부에 요청하고 있다.

■ 원격의료란 무엇인가?
원격의료(Telemedicine)는 의사가 ICT 기술을 활용해 환자에게 제공하는 진료, 수술, 모니터링 등을 말한다.

[그랙픽 = 최소연 디자이너]
세계보건기구는 ‘원거리에서 정보통신기술을 통해 보건의료 종사자가 환자의 질병·부상 등에 대한 진단, 치료 및 예방을 통해 개인과 지역 사회의 건강을 증진시키는 건광관리 서비스’라고 정의하고 있다.

원격의료는 의료 접근성 개선, 고령화에 따른 의료비 부담 감소 등의 장점이 있다. 기술발전으로 앱, 온라인 병원, 스마트 헬스케어 기기 등 다양한 방식으로 원격 의료 시장이 커지고 있다.

원격의료는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첫째는 ‘저장 전달형(store and forward)’ 원격 의료다. 보통 환자로부터 수집된 생체 신호나 의료 이미지 등의 의료 정보를 전문의 진단 등을 위해 전송하는 형태이다. 주로 병리학, 영상의학 등을 해당 전문의에게 보내 판독하는 유형이다.

둘째는 ‘원격 모니터링(remote monitoring)’ 원격 의료다. 의료진이 멀리 떨져 있는 환자를 모니터링하는 방법이다. 환자가 병원에 오지 않더라도 원격지에서 전화, 이메일, 앱 등을 통해서도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유형이다.

셋째는 ‘실시간 대화형(real-time interactive)’ 원격 의료다. 실시간으로 환자와 의사 혹은 의사와 의사 간에 오디오와 비디오를 통해 의료를 제공하는 것으로 대면 진료를 대체할 수 있는 유형이다. 기존 대면 진료를 대체할 목적이 아니라 의료 접근성을 향상시킬 목적으로 활용된다.

#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 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김용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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