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발견한 유전자 변이, 알려야 할까?

[김명신의 유전자이야기] ⑩개인 유전체 분석 시대에 들어서며

우연히 발견한 유전자 변이, 알려야 할까?

올해는 ‘인간게놈프로젝트(Human Genome Project)’의 완성이 발표된 지 21년이 되는 해이다. 사람 유전체 DNA의 30억 염기쌍을 읽어서 유전체 지도를 그리는 것은 이제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차세대염기서열분석(NGS) 기술의 발전을 통해 비용도 1000달러 정도면 가능하다. 유전체 분석을 통해 유전질환을 보다 빠르게 진단하고, 암 환자에서 치료 타깃이 되는 유전자 변이를 찾아 그에 맞춰 치료하는 것은 이미 임상에서 사용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차세대염기서열분석 기술을 사용해 유전체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목표로 한 질병 관련 유전자 변이뿐만 아니라 그 외의 유전자 정보를 같이 얻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이다. 발견되는 변이의 대부분은 임상적 의미가 없지만, 간혹 질병과 관련된 중요한 변이가 발견될 때도 있다.

한 예로 유전체 연구를 수행하는 동안 암 관련 유전자 변이를 알게 된 4살 어린이 루비가 있다. 루비는 자신이 갖고 있는 희귀질환의 유전적 원인을 찾기 위해 유전체 연구에 자원했다.

연구진은 루비와 부모에서 혈액을 채취해 염기서열을 분석하고 루비의 증상과 연관이 있는 변이를 확인하기 위해 다각도로 분석했지만 결국 질병의 원인이 되는 유전자 변이를 찾지는 못했다. 그러나 연구 과정에서 대장암 발병의 위험 증가와 연관이 있는 MLH1 유전자가 변이됐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처럼 유전체 분석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되는 변이를 ‘이차적 발견(Secondary findings)’이라고 한다. 연구 과정에서 드러나는 이차적 발견을 환자에게 알려야 할지, 알려야 한다면 선택적으로 알려야 할지 전부 알려야 할지, 누가 어떤 방식으로 알려야 할지가 논란이 되었다.

이후 여러 논의를 거쳐 ‘미국 대통령직속 생명윤리이슈 연구위원회(Presidential Commission for the Study of Bioethical Issues)’는 유전체 연구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의무를 부여했다. 1)유전체 분석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수적 또는 이차적 발견을 미리 고려할 것, 2)이차적 발견을 했을 때 환자에게 전달하는 방법에 대한 계획을 수립할 것, 3)연구 참여자에게 부수적, 이차적 발견의 가능성과 그 결과를 알려줄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할 것.

미국의학유전학회(The American College of Medical Genetics, ACMG)도 염기서열분석 과정에서 “조치 가능한(Actionable)” 유전자 목록에 포함된 변이가 발견되면 임상의에게 이를 보고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이차적 발견에 대한 지침을 모든 상황에 일관적으로 적용하기란 생각만큼 쉽지 않다. 필자가 그간 만났던 환자 중에는 유전자 검사 결과를 듣고 자녀에게 알려줘야 하는지 고민이 돼 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사람도 있고, 자신이 BRCA1 유전자 변이가 있다는 것을 알고 그 사실을 자매들 모두에게 전해 함께 검사를 받으러 온 유방암 환자도 있었다. 각자가 처한 상황이나 질병 종류에 따라 선택은 다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명확한 지침이 마련돼 있지 않지만 대부분의 의료기관에서는 유전체 검사를 하는 환자들에게 검사 중 부수적으로 유전자 변이를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을 미리 알리고, 사전에 동의하는 경우에만 이를 분석해 보고하고 있다. 그러나 ‘조치 가능한’ 유전자 목록은 가변적이고 실제로 점차 늘어나고 있으며, 국가별 의료 환경이나 사회적 인식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이를 모두 고려하여 결정할 필요가 있다. 유전체 분석의 발전 속도가 워낙 빠르기 때문에 앞으로 이런 고민은 더욱 늘어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개인 유전체 분석 시대’에 본격적으로 접어들기 전에 미리 이런 고민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유전체 분석 정보의 교류는 일차적으로는 의료진과 환자, 이차적으로는 그 가족 구성원들 간에, 더 나아가서 우리 모두가 함께 공부하고 고민할 숙제이다.

특히 질병예측유전자검사나 소비자직접의뢰 유전자검사서비스(Direct-To-Consumer, DTC)가 늘어나고 있는 지금 시기에 ‘만약 내가 검사를 받는다면, 혹은 내 부모나 자식이 검사를 받는다면’ 하는 가정 하에 생길 수 있는 다양한 상황을 깊이 논의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의료계, 법조계, 윤리학계, 과학계 전문가뿐만 아니라 환자와 여러 이해 당사자들이 모여 현재와 앞으로 생길 수 있는 문제점들을 지속적으로 논의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우리 사회의 여러 구성원들이 함께 고민하고 소통함으로써 마련할 제도가 개인의 선택과 건강을 모두 보장하는 ‘개인 유전체 분석 시대’의 문을 힘껏 열어젖힐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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