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입술 아이 9000명 살린 ‘심장수술 메카’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선천 심장병으로 입술이 파란 아이들. 예닐곱 살 전에 수술 받으면 평생 건강히 살 수 있지만, 1980년 초만 해도 숱한 아이가 치료시기를 놓치고 시름시름 앓다가 부모 가슴에 통한(痛恨)의 응어리를 남기고 먼저 떠나야만 했다. 세종병원은 집값과 맞먹는 수술비 때문에 아이들이 속절없이 숨지는 것을 격감시킨, 세계 의학사에서 기념비적 성과를 이룬 병원이다. 설립자 우촌 박영관 회장은 심장병 어린이 가족과 함께 눈물 흘리다 “심장병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며 의료 불모지 부천에 심장 전문병원을 세웠다. 주위에서 한결같이 뜯어말렸지만 한편으로 독지가를 찾아다니고, 한편으로는 수술실에서 영혼을 녹이며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꿨다. 세종병원은 국내에서 선천 심장병 환자의 1/3이 넘는 7000여 명을 수술해서 새 삶을 찾아줬으며, 해외 어린이 환자 1600여 명에게도 새 생명을 안겨줬다. 우촌은 정작 자신의 건강을 못챙겨 뇌졸중, 심근경색 등으로 쓰러졌다 회복하면 곧바로 병원을 찾는 삶을 살았다. 지금은 아들 박진식 이사장이 인천과 부천의 세종병원을 세계적 병원으로 도약시키는 프로젝트를 펼치고 있다. 박 이사장은 “세종병원은 대한민국 흉부외과 발전과 함께 했다”면서 “부천세종병원은 2030년 세계 10대 심장 전문병원에 진입할 것이고, 2017년 문을 연 인천세종병원은 세계 100대 병원에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픽=윤상선 기자 우촌은 한양대 의대 교수 때인 1981년 한 친척으로부터 눈이 번쩍 뜨이는 소식을 들었다. 정부가 일본 해외경제협력기금(OECF) 차관을 받아 병원 설립비를 장기 저리 융자해준다는 것. 딸의 수술비가 당시 집값에 맞먹는 1000만 원이라는 말에 낙담해 진료실을 나가던, 40대 아버지의 어깨 처진 뒷모습이 떠올랐다. 내 병원이 있으면 많은 환자를 살릴 수 있을 텐데…. 이 무렵 경남 남해 섬마을 교장 선생님이 “심장병 때문에 체육시간에 친구들을 부럽게 쳐다보기만 하는 형도를 살려달라”는 편지를 소개한 기사가 한국일보에 실렸다. 우촌은 언론사로 전화해 수술을 자청했고, 이것이 기사화되자 하루만에 1000만 원의 성금이 모였다. 우촌은 형도를 수술로 완치시키고 부모를 찾아가 “남은 성금으로 다른 아이들도 치료하자”고 제안했다. 부모가 흔쾌히 승락해 2명을 더 살렸다. ‘내 병원이 있으면 전국의 수많은 환자를 살릴 수 있다’는 확신이 굳어졌다. 주위에선 대부분 말렸다. 스승 이영균 교수가 소장으로 부임한 서울대병원 병원연구소의 직원에게 컨설팅 받으러 갔더니 첫 마디가 “심장전문병원은 무리이니 백화점식 병원을 설립하는 게 어떻겠냐?”였다. 그럴수록 가슴이 더 타올랐다. 병원 부지를 찾고, 자기 분담금을 구하고, 실행 계획을 짰다. OECF 지원 조건에 맞춰, 당시 의료 사각지대였던 부천에서 1982년 8월 23일 지하 1층, 지상 3층, 100병상의 세종병원을 개원하고 심신을 쏟아부었다. 이발소 갈 시간을 아끼려고 삭발하고 경영과 진료에 매진했다. 자연스레 각종 기록이 쏟아졌고 개원 이듬해 서울대병원, 연세의료원과 함께 심장수술 ‘빅3’에 올랐다. 우촌의 뒤를 이어 세종병원을 이끌고 있는 박진식 이사장에게 물었다. -세종병원이 단기간에 도약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