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7월 19일 (일)

“40년 만에 들어간 응급실 당직, 재밌던데요” 노교수의 열정은 꺼지지 않는다

[현장인터뷰] 이태원 속초 온재병원 내과 교수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세는 나이로 올해 73세가 된 이태원 속초 온재병원 교수는 최근 고령의 나이에 응급실 당직을 자처했다. 사진=장자원 기자

대한민국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시(市) 속초. 이곳의 한 병원에선 매일 독특한 광경이 펼쳐진다. 진료를 보러 오는 환자들의 평균 연령은 70세가 넘는다. 환자의 자녀(보호자)가 60대를 넘긴 경우도 흔하다. 백발의 아들이 80대 중반의 노모를 업고 진료를 보러 오는 광경을 두 시간에 한 번 꼴로 볼 수 있다.

속초시에서 가장 큰 병원인 온재병원(옛 보광병원)은 지역의료와 필수의료의 ‘최전방 전선’이다. 의료진의 이력도 병원을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다. 서울의 대학병원에서 정년퇴임한 의대 교수들이 멀리 떨어진 속초로 넘어와 지역 주민들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다. 최근에는 73세의 고령 교수가 밤새 응급실 당직근무를 서며 동료 의료진의 경탄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전공의 시절 이후 40년 만에 응급실 근무에 들어갔다는 이태원 온재병원 내과 교수를 코메디닷컴이 만났다. 경희대병원 출신 콩팥병 명의인 이 교수는, 2019년 정년퇴임 이후 병원을 운영하다 작년 9월부터 속초에서 근무 중이다.

“40년 만의 응급실 당직…가슴 두근거리던걸요”

“제가 올해로 73세예요. 전공의를 하던 1980년대 이후 처음 응급실 당직을 들어갔어요. 주변 동료들은 건강을 염려해서 그런지 말리더군요. 정작 저는 설레서 잠도 안 오던데 말이죠.”

지난달의 응급실 당직 근무를 회상하는 이태원 교수의 두 눈은 마치 젊은 의대생처럼 반짝거렸다.

대학병원이나 상급종합병원이 없는 속초 지역의 응급의료는 공공의료기관인 속초의료원과 최대 의료기관인 온재병원이 전담하는 구조로 이뤄진다. 올해 초 온재병원 응급의료센터장이 사임한 뒤 응급실을 책임질 사람이 없어지면서 당장 운영에 비상이 걸렸다.

진료과장들이 돌아가면서 당직을 서지 않으면 응급실 문을 닫아야 할 판이었다. 속초의료원이 만성적인 인력난을 겪는 상황에서 온재병원 응급실마저 운영을 중단하면 자칫 지역 응급의료 체계 전체가 흔들릴 수 있었다. 결국 내·외과 과장들이 순번을 정해 ‘일일 응급의료센터장’을 맡기로 했다.

고령을 이유로 순번에서 제외됐던 이태원 교수는 자발적으로 응급 근무에 동참하기로 했다. 기자에게는 설레고 재밌는 경험이었다고 했지만 병원이나 동료 의사들 입장에서는 사실 은퇴 교수가 어마어마한 부담과 위험을 감수한 결정이었다. 심지어 이 교수는 근무일 직전 화장실에서 크게 넘어지면서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경희의료원 재직 시절 이태원 교수는 인공신장센터장과 의과학연구원장을 맡았다. 대한민국 콩팥병 홍보대사로 활동했을 정도로 전문성을 인정받은 명의다. 사진=장자원 기자

그는 “당직 들어가기 며칠 전부터 동료들이 ‘괜찮으시겠냐’고 귀찮게 했다”며 “몸 약해보이는 할아버지 의사가 당직을 서겠다고 하니 애정 어린 걱정을 해준 것”이라며 웃었다. 그러면서도 “응급실 근무는 할 수 있는 진료과가 정해져 있는데, 같은 내과 의사로서 나만 못 하겠다고 할 수는 없었다”고 덧붙였다.

40년 만의 응급실 당직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큰 어려움 없이 근무를 마무리했고, 특이 사항도 없었다. 다만 세월이 새겨 놓은 노교수의 눈가 주름이 조금 더 깊어졌을 뿐이다.

“막상 당직이 끝나고 나니 동료 외과 교수들이나 간호사들이 나를 좀 대견하게 보더라고요. 덕분에 요즘 병원에서 귀여움을 받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은 좋았죠.”

’동네 사랑방’ 된 진료실, 사람들에게 필요한 의사는…

이태원 교수 진료실의 가장 큰 특징은 예약하지 않은 환자들도 자연스럽게 드나든다는 점이다. “선생님, 이거 하나만 여쭤보러 왔어요”하고 문을 열고 들어오는 환자가 많다. 예약 환자와 상담도 한 번 시작되면 수십 분씩 이어진다. 여러모로 수도권 병원에서 흔히 보기 힘든 장면이다.

그는 입원 환자나 인공투석실에 있는 환자들의 모든 회진도 직접 맡아 한다. 전공의 등 대체 인력이 없기 때문에 자연스레 환자와 보호자들이 담당 의사의 얼굴을 매번 마주하며 상태나 예후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다. 지역 주민들로선 진료 문턱이 크게 낮아지는 셈.

이태원 교수는 대한민국 콩팥병 홍보대사로 활동했으며, 경희대의료원 시절에는 인공신장센터장과 의과학연구원장을 맡았을 정도로 콩팥병과 투석 분야에서 명성을 인정받는 ‘명의’다. 그러나 온재병원에서는 그도 ‘만능 내과의사’가 되어야 한다.

“대학병원 교수들은 전문 분야에서 최고의 역량을 자랑하는 ‘스페셜리스트’죠. 그런데 지역 2차병원에서는 내 전문분야가 아니더라도 환자가 왔다면 대응해야 해요. 이들 입장에서는 우리 병원이 다른 지역으로 멀리 이동하기 전 마지막 선택지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이태원 교수 진료실 앞. 입원 환자들도 수시로 내려와서 궁금한 점을 묻고, 예약하지 않은 환자들도 이따금씩 근처를 지나다 이 교수에게 질문을 하러 온다. 사진=장자원 기자

이 교수 역시 작년 9월 속초에서 근무를 시작한 이후로 내과 전반을 다시 공부하고 있다. 진료실 책상 위와 모니터 옆 책장을 빼곡하게 채운 의료 관련 서적들에 대해 묻자, 그는 “끊임없는 수련과 발전을 이어갈 수 있는데, 의사로서 얼마나 행복한 환경인가”라고 말했다.

“속초에서 만난 환자들은 사실 제 이력이나 과거 활동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단지 ‘우리 선생님 설명 너무 잘해주시니 감사하다’고 인사할 뿐이죠. 처음에는 무뚝뚝하던 환자분들이 이제는 따로 공부도 해 오고 저도 깜짝 놀랄 만큼 예리한 질문을 하기도 해요. 어쩌면 이들은 대학 교수라는 간판보다는 상냥한 설명 그 자체를 원했던 게 아닌가 싶죠. 이게 지역 병원의 역할이고, 존재 이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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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ik*** 2026-05-13 09:18:37

    참된 의사 이십니다.고맙고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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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mc*** 2026-05-12 08:35:44

    경희대병원 교수가 속초까지 가셔서 근무하시는군요. 그것도 모두가 기피하는 응급실 당직까지 솔선수범하시는군요. 이 시대 노블리스 오블리제 실천하는 참 의사가 속초 시민의 건강을 지키고 있어 다행입니다. 참으로 젊은 의사들의 모범이 아닐수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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