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남부경찰청의 아주대병원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 압수수색을 둘러싼 논란이 수그러들기는커녕 확산하고 있다.
보건당국이 응급의료 현장의 특수성을 고려한 '수사 가이드라인' 마련을 약속한데 이어 국회도 오는 27일 보건복지위원회 종합국정감사에 경기남부경찰청 광역수사단장을 증인으로 채택하는 등 대응에 나섰지만, 현장 의료진의 우려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가뜩이나 인력난으로 주요 병원들의 소아응급실 운영이 어려운 상황에서 정부와 경찰이 의료현장의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한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최근 코메디닷컴에 "현장에서는 이번 사태로 의료진이 이탈할 수 있다는 우려뿐 아니라, 곧 있을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 재지정 평가를 받는 것조차 부담스럽다는 목소리가 나온다"고 말했다.
"적법한 절차였다"는 경찰 vs "심각한 진료 방해였다"는 의료계
7월 15일, 아주대병원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에선 치료를 받던 영아(생후 4~6개월로 추정)가 심정지와 청색증 등으로 심폐소생술 등 응급 처치를 받다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사망 직후 유가족은 의료진의 과실을 주장하며 경찰에 신고를 접수했고 얼마 뒤 형사 2명과 과학수사대 경찰관 3명이 응급실에 출동해 현장을 조사했다.
이지숙 아주대병원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장에 따르면 당시 의료진은 사망 환아에 대한 처치를 미처 마무리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리고 두달이 지난 9월 30일 경기남부경찰청 소속 수사관들이 해당 병원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했다. 이날 압수수색을 두고 경찰과 의료진은 상반된 입장을 내놓고 있다.
12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김종철 경찰청장 직무대행은 “증거 위·변조 우려가 있어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진료를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신속히 끝냈다”고 발언했다.
압수수색이 법원으로부터 적법하게 영장을 발부받아 진행한 정상적인 수사라는 입장이다. 여기에 수색 자체도 환자가 없는 진료실을 골라 진행했고 집행은 17분 만에 끝나 실질적 진료 방해가 없었다는 주장도 더했다.
의료계에선 경찰 주장을 반박하는 입장이 잇따라 나왔다.
대한소아응급의학회는 환자가 비어 있는 시간이 거의 없는 소아응급센터 특성상 이는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압수수색 당시 현장 중증구역에서는 1시간 넘게 경련을 일으키는 생후 6개월 환아를 살리기 위해 초응급 진료가 진행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지숙 센터장은 15일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소아응급의학회가 국회에서 공동으로 진행한 기자회견에 나와 “경찰은 7월 아이의 사망 당시 모든 상황 처치가 끝나지도 않은 소생실을 카메라로 촬영하며 40분간 진료에 차질을 빚었다”며 “압수수색 날에도 경찰은 1시간 30분 동안 의료진 컴퓨터를 확인했다. 간호파트장 역시 별도의 공간에서 1시간이 넘는 자료 요청에 대응했다”고 밝혔다. ‘17분 만에’ 수사가 끝났다는 김 직무대행의 발언을 정면으로 반박한 셈이다.

“수사 자체 반대한 적 없어⋯최소한 진료는 계속 받을 수 있어야 하지 않나”
의료 현장 분위기는 더 심각하다. 소아응급 진료를 담당하는 전문의들이 잇따라 사직 의사를 밝히고, 일부 병원에선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 지정 반납까지 거론되고 있다.
수도권의 한 대학병원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에 근무하는 전문의 A씨는 “이번 사건으로 응급의학과 전문의의 대(代)가 끊겼다는 말이 돌고 있다”고 전했다. 소아 응급을 전문으로 하는 의사들은 사명감을 가지고 근무하는 데다 평소에도 사망에 대한 극심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일하는데, 압수수색까지 집행될 정도의 수사가 이뤄진 것에 절망해 현장을 이탈하고 있다는 것이다.
A씨에 따르면 이 사건 이후 아주대병원 응급실에선 소아응급 전문의가 사직서를 제출한 것을 시작으로 인근 병원 전문의들의 잇따라 사직 의사를 밝히고 있다.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가 설치된 다른 병원에서도 소송에 휘말린 전문의 두 명이 사직했다. 해당 병원은 현재 센터 운영 자체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아응급의학회는 12일 성명을 통해 “각 병원에서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 지정 반납을 논의하기 시작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학회 관계자는 해당 내용에 대해 “지정 반납 논의는 ‘이럴 거면 때려 치우자’는 식의 협박성 발표가 아니다. 실제로 운영이 어려운 상황에서 다가오는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 재지정 평가를 정상적으로 받을 수 있냐는 진지한 걱정이 나오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와 경찰이 이번 사건의 맹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제기했다.
이 관계자는 “자꾸 ‘응급실이 성역도 아니고, 수사는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식의 논점 흐리기가 나온다"면서 "(국감장에서 나온) 경찰청장 직무대행의 발언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수사의 정당성을 강조하면서 나온 발언으로 파악된다"고 비판했다.
이어 "아주대병원이나 소아응급의학회는 수사 자체에 반대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유가족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기에 협조할 의사도 있다"며 "문제는 실시간으로 생명이 오가고 급한 진료가 일어나는 공간에 형사들이 들이닥쳐 전 과정을 감시하는 게 과연 누구에게 이득이 되냐는 것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숙 센터장의 입장도 비슷하다.
15일 기자회견에서 “보호자와의 이해관계나 사실 파악을 위한 수사에는 언제든 협조할 수 있다. 다만 환자에 대한 치료가 중단돼서는 안 된다”며 “앞으로도 아주대병원 센터는 진료를 이어나갈 것”이라고 선언했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달 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응급의료 현장 특수성을 반영한 수사 가이드라인을 신속히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장 의료진은 이 같은 약속에 회의적인 반응이다.
A씨는 “경찰청과 실무 회의를 거쳐 가이드라인을 만들겠다고 밝혔는데 정작 의료계의 입장을 어떤 방식으로 청취하고 얼마만큼 반영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은 설정되지 않았다”며 “장관의 약속 직후에 경찰청의 실언이 나온 마당에 가이드라인 설정 과정을 어디까지 신뢰해야 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을 인식한 국회 복지위는 종합감사에서 경기남부경찰청 광역수사단장을 불러 정확한 압수수색 경위를 확인할 예정이다. 주요 쟁점은 △진료 중인 응급실에 영장을 집행해야 했던 이유 △환아·보호자·의료진 보호를 위해 수사단이 취한 조치 등이 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