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모가 지켜본 가운데 전동 킥보드를 차던 7세 남자 어린이가 넘어져 킥보드의 오른쪽 핸들바에 부딪치는 사고를 당했다. 아이는 헬멧을 착용하지 않았지만 전동 킥보드를 천천히 운전했고 겉으로 드러난 외상이나 뚜렷한 증상이 없었다. 부모는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그냥 넘겼다. 특히 아이가 사고 직후 스스로 일어나 걸었기에, 별도의 응급 처치나 진료를 전혀 받지 않았다.
하지만 사고 후 2일째부터 이 아이는 오른쪽 배가 아프다고 호소했고 이후 4~5일 동안 증상이 더 나빠졌다. 메스꺼움, 구토, 발열, 혈뇨 등은 없었으나 아이가 점차 창백해지고 음식 섭취량이 줄어들자 사고 발생 7일째에 병원 소아 응급실을 찾았다.
사우디아라비아 ‘킹 파하드 메디컬시티’ 병원 연구팀에 의하면 응급실을 찾을 당시 이 어린이 환자는 혈역학적으로는 안정적이었으나, 안색이 창백하고 오른쪽 배에 누르면 아픈 증상(복부 압통)과 오른쪽 옆구리로 이어지는 팽만감이 있었다. 하지만 피부에 멍이 드는 등 외상 징후가 전혀 없었다. 응급실 초기 검사 결과, 헤모글로빈 수치는 7.4g/dL로 뚜렷한 빈혈 증상이 나타났다. 환자는 제1형당뇨병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초음파 검사에서는 복강 내 액체가 관찰되지 않았다.
그러나 뚜렷한 빈혈과 핸들바 충돌 사고인 점을 감안해 복부 및 골반 조영제 강화 컴퓨터단층촬영(CT) 검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간 밑에서 오른쪽 반골반까지의 부위에 피멍(혈종)이 생긴 것으로 나타났다. 이 대규모의 오른쪽 후복막 혈종 외에 오른쪽 콩팥(신장) 주위에도 피멍이 확인됐다. 추가로 시행한 콩팥 표적 도플러 초음파 검사에서는 CT로는 구별되지 않았던 콩팥 손상(신장 하극 피질부의 작은 선형 열상)까지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미국 외상외과학회 장기손상 척도 기준(2018년) 상 2등급에 해당한다.
의료진은 소아외과, 비뇨기과, 소아영상의학과 및 당뇨병 팀의 협진을 진행했다. 의료진은 환자의 상태가 혈역학적으로 안정적이도 조영제의 활성 누출이 없다는 점을 근거로 수술을 하지 않고 보존 관리를 하기로 결정했다. 체중에 맞춘 농축 적혈구 수혈로 환자의 헤모글로빈 수치는 10g/dL로 회복됐다. 환자는 이후 소아 중환자실에 입원해 엄격한 침상 안정, 연속적인 복부 검사, 6시간 간격의 헤모글로빈 추적 관찰을 받았다. 환자는 인슐린 요법과 혈당 조절을 병행했고 입원 5일째에 안정된 상태로 퇴원했다.
이 사례 연구 결과(Delayed Presentation of a Traumatic Retroperitoneal Hematoma With Low-Grade Renal Injury After a Low-Speed Electric Scooter Handlebar Impact in a Child: A Case Report)는 최근 국제 학술지 《큐레우스(Cureus)》에 실렸다.
국내에서 흔히 '전동 킥보드'로 통하는 개인형 이동장치는 미국· 영국 등에서는 '전기 스쿠터(Electric Scooter, e-scooter)'라고 불린다. 최근 레저용과 근거리 교통수단으로 많이 이용되고 있으며, 아파트 주변이나 길거리에 마구 세워져 눈쌀을 찌푸리게 만들기도 한다.
전동 킥보드는 소아청소년 응급 외상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떠올랐다. 한국도로교통공단과 질병관리청 통계를 보면 국내 전동 킥보드 등 개인형 이동장치 사고는 최근 연간 2000건 이상 발생하며, 사상자는 수천 명 규모로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전동 킥보드는 차체가 없어 단독 사고나 충돌 때 치사율이 일반 교통사고보다 4배 이상 높다. 중증 외상 환자가 가파르게 늘고 있으니 부모의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성인용이거나 이와 비슷한 전동 킥보드의 핸들바는 5~10세 아동의 상복부 높이에 있어 급제동이나 충돌 때 아이가 앞으로 쏠리면서 핸들바 끝단에 상복부를 직접 가격당할 위험이 높다. 환자는 전동 킥보드 사고로 콩팥(신장) 피질의 미세한 파열에 따른 콩팥이 손상되고, 배뒤 공간(후복막 공간)에 피가 많이 고이는 외상성 후복막 혈종(피멍)을 일으켰다. 이 때문에 겉으로는 출혈이 보이지 않았지만 몸 안에서는 피 손실이 지속적으로 발생해 심한 빈혈을 일으켰다. 배뒤 공간은 상당량의 혈액을 수용할 수 있다. 저압 출혈은 일종의 자가 지혈 효과를 낼 수 있어, 초기에는 증상이 미미하다가 혈종이 커지면서 며칠 후 뒤늦게 나타난다.
응급 현장의 의료진은 이런 증상을 놓치기 쉽다. 환자가 실제 받은 충격은 매우 크지만 겉보기로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아이가 헬멧 파손이나 외형적 변형 없이 걸어 나오면 대개 단순 타박상으로 오인하게 된다.
따라서 이런 사고 후 뚜렷한 만성 빈혈의 원인이 없는데도 중등도 이상의 빈혈이 관찰되면, 생체 징후가 정상이고 현장 초음파 검사 결과가 음성이더라도 즉시 단면 영상 검사를 시행해야 한다. 이번 사례는 어린이가 겉보기에 가벼워 보이는 사고를 당한 뒤 지속적인 통증이나 창백함을 보이면 '지연성 출혈' 가능성을 의심해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자주 묻는 질문]
Q1. 겉보기에는 멀쩡하고 멍도 없는데 며칠 뒤에 배가 아프다고 할 수 있나요?
A1. 네, 그렇습니다. 전동 킥보드 핸들바 같은 둥글고 단단한 물체에 상복부를 강하게 부딪히면 피부 표면에는 멍이나 상처가 남지 않더라도, 몸 속 깊은 배뒤 공간(후복막 공간)의 혈관이나 콩팥이 망가져 출혈이 서서히 진행될 수 있습니다. 혈액이 서서히 고이면서 주변 조직을 압박하기 때문에 사고 후 며칠이 지나서야 비로소 복통과 창백함 같은 증상이 나타납니다.
Q2. 응급실 초음파 검사에서 피가 안 보였다는데, 왜 나중에 CT에서 큰 혈종이 발견됐나요?
A2. 초음파 검사는 복강 내 자유로운 액체를 찾는 데는 유용하지만, 배뒤 공간에 고인 출혈을 발견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초음파 결과가 정상으로 나오더라도 아이의 안색이 창백하고 빈혈이 있다면 후복막 출혈 가능성이 있습니다. 정밀한 컴퓨터단층촬영 검사가 필수적입니다.
Q3. 수술하지 않고 지켜봐도 아이에게 안전한가요?
A3. 활력 징후가 안정돼 있고 조영제가 계속 새어 나오는 활동성 출혈이 없다면, 불필요한 수술보다는 비수술적 보존 관리를 우선 권장하는 것이 현대 소아 외상의 치료 지침입니다. 소아 중환자실에서 전문 의료진의 밀착 감시 하에 정기적인 혈액 검사와 신체 진찰을 받으면 안전하게 회복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