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8월 22일 (토)

8개월 코피·코막힘 54세…뜻밖에 ‘이 암’?

코피 나고 코가 막히는 증상 지속…희귀 혈액암 ‘골수외 다발골수종’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남성이 코피를 흘리고 있다. 코피가 잦다면 고혈압과 혈우병·간경변증·만성신부전·모세혈관확장증 등을 의심해 볼 수 있다. 특히 코피와 관련 있는 암으로는 백혈병·다발골수종 등 혈액암과 두경부암을 꼽을 수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54세 남성의 건강에 이상이 생긴 것은 병원을 찾기 약 8개월 전이었다. 오른쪽 콧구멍이 답답하게 막히기 시작하더니 코피가 자주 묻어 나왔다. 환절기 비염이 도졌거나 몸이 피곤해 혈관이 터졌겠거니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피가 흐를 때마다 동네 병원에서 코 안쪽에 지혈 솜을 깊숙이 밀어 넣는 비강 패킹(전비강 탐폰 처치)을 받아 출혈을 막았다.

병원 입원을 열흘 앞두고 코피가 걷잡을 수 없이 잦아졌다. 지혈 솜을 아무리 틀어막아도 핏물이 틈새로 흘러내렸고, 오른쪽 코는 아예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꽉 막혔다. 밤에는 코를 심하게 골았고, 체중은 눈에 띄게 줄었다.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고 기운이 쭉 빠졌다. 환자는 대학병원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의료진은 비강 내시경으로 콧속을 들여다봤다. 오른쪽 비강 통로가 붉은 덩어리(종괴)로 완전히 막혀 있었다. 자기공명영상(MRI) 검사에서도 큰 혹(종괴)은 오른쪽 비강을 넘어 광대뼈 안쪽 빈 공간(상악동)까지 뻗어 있었다. 의료진은 내시경을 통해 혹의 일부를 떼어내 조직검사를 했다. 혹은 단순한 코의 용종이나 비염의 흔적이 아니었다. 세균과 바이러스를 막아내는 항체를 만드는 면역세포인 ‘형질세포’가 비정상적으로 변해 빼곡하게 뭉쳐 있었다.

정밀 검사에서는 더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다. 혈액 검사상 혈색소 수치가 7.6g/dL(정상범위는 남성 13.0~17.0 g/dL, 여성 12.0~16.0 g/dL)까지 뚝 떨어진 중증 빈혈 상태였다. 혈액 속에서는 암세포가 만든 비정상 단백질(IgG 람다 단일클론 단백질)이 많이 검출됐다.

또한 엑스레이 검사 결과, 두개골과 위팔뼈 곳곳에는 벌레가 파먹은 듯 뼈가 녹아내린 ‘다발성 골 용해’ 병변이 확인됐다. 골반 뼈에서 뽑은 골수를 검사한 결과, 암성 형질세포가 전체 골수의 32%를 장악하고 있었고, 암세포 유전자 분석에서는 예후가 불량한 고위험 변이(CKS1B 1q 증식, 17p 결실, 13q 결실 등)가 잇따라 나타났다.

의료진은 뼛속 골수 전체에 퍼진 암세포가 골수를 뚫고 나와 코와 부비동 연조직까지 침범한 전신성 혈액암, 즉 ‘골수외 다발골수종(골수외 다발성 골수종)’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의료진은 즉시 출혈을 막아 안정시킨 뒤 환자에게 표적치료제인 보르테조미브 기반 유도 항암요법을 시작하고 자가 조혈모세포 이식을 준비했다.

인도 전인도의학연구소(AIIMS) 등 공동 연구팀의 이 연구 결과(Recurrent Epistaxis as a Rare Presentation of Extramedullary Multiple Myeloma)는 최근 국제 학술지 《큐레우스(Cureus)》에 실렸다.

다발골수종은 백혈병, 악성 림프종과 함께 3대 혈액암에 속한다. 다발골수종은 뼛속 골수에서 B림프구가 최종 분화한 형질세포가 악성 종양으로 변해 걷잡을 수 없이 증식한다. 본래 정상적인 형질세포는 침입한 병원체를 공격하는 면역글로불린(항체)을 만들어낸다. 반면 암으로 변이된 형질세포는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비정상 단백질을 끝없이 뿜어내며 뼈를 녹이고 정상 혈액 세포의 생성을 가로막는다.

다발골수종은 척추, 골반, 늑골 등 뼛속 골수에만 발생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하지만 암세포가 골수벽을 뚫고 나와 주변 연조직으로 자라나거나 혈류를 타고 다른 장기로 옮겨 덩어리를 형성할 수 있다. 이를 ‘골수외 병변’이라고 한다. 골수외 침범은 신규 진단 환자의 약 1~4%, 재발 환자의 최대 10% 안팎에서 관찰된다. 대개 세포 부착 물질의 이상이나 공격적인 유전자 변이를 동반해 예후가 나쁜 편이다. 특히 이 환자처럼 콧속이나 부비동 같은 두경부 연조직을 침범해 코막힘이나 코피로 나타나는 사례는 매우 드물다. 임상 현장에서 단순 비염, 비중격 만곡증, 혈관종 등으로 오인돼 진단이 늦어지기 쉽다.

인구 고령화와 진단 기술의 발달로 국내에서도 다발골수종 환자가 꾸준히 늘고 있다. 보건복지부 중앙암등록본부 통계에 따르면 국내 다발골수종 신규 발생 건수는 연간 2010건(2023년 기준)이다. 남녀 성비는 1.2 대 1이다. 60대와 70대가 각각 약 32%, 80대 이상이 약 18.1%다. 다발골수종은 60대 이상 환자가 전체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대표적인 노인성 혈액암이다.

한쪽 코가 지속적으로 막히면서 지혈 솜으로도 잘 멎지 않는 코피가 반복되고 까닭 모를 체중 감소나 심한 피로, 빈혈, 뼈 통증이 동반된다면 단순 이비인후과 질환으로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된다. 신속한 비강 내시경 생검과 함께 전신 골수 검사, 혈액 단백질 분석을 거쳐 혈액병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자주 묻는 질문]

Q1. 코피가 자주 나면 혈액암을 의심해야 하나요?

A1. 코피의 90% 이상은 코 앞쪽 모세혈관이 모여 있는 부위가 건조하거나 긁혀서 발생하는 단순 출혈입니다. 그러나 한쪽 코에서만 피가 반복적으로 나고 지혈 처치로도 쉽게 멎지 않거나, 코막힘·원인 모를 피로감·체중 감소·뼈 통증 등이 함께 나타난다면 혈액암이나 비강 내 종양의 신호일 수 있으니 정밀 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Q2. 다발골수종의 전형적인 주요 증상은 무엇인가요?

A2. 뼈가 약해져 생기는 골통증과 골절, 어지럼증과 숨참을 일으키는 빈혈, 단백질 축적으로 인한 콩팥 기능 저하(신부전), 뼈가 녹아 혈액 내 칼슘이 높아지면서 생기는 메스꺼움과 의식 저하, 잦은 감염 등이 주요 증상입니다. 암세포가 코나 림프절 등 골수 밖으로 퍼진 경우에는 국소 부위 혹이나 출혈 등 비전형적 증상이 먼저 나타나기도 합니다.

Q3. 콧속에 생긴 골수외 다발골수종은 수술로 떼어내면 완치되나요?

A3. 코 안의 혹을 수술로 없애는 것만으로는 완치할 수 없습니다. 콧속 병변은 뼛속 골수와 온몸에 암세포가 퍼져 있음을 나타내는 증상 중 하나에 그치기 때문입니다. 프로테아좀 억제제(보르테조미브 등)를 포함한 다약제 병용 전신 항암 화학요법과 자가 조혈모세포 이식 등 전신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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