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신질환 병력이 없는 45세 남성이 갑자기 신의 목소리가 들리고, 자신의 몸 일부에서도 목소리가 들리는 환청과 망상 증세를 호소한 사례가 보고됐다. 이 남성은 앞서 1년간 테스토스테론 주사 치료를 받아온 것으로 확인됐다. 의료진은 뒤늦게 발견된 클라인펠터 증후군(Klinefelter syndrome)과 테스토스테론 치료가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에 주목했다.
인도 슈리구루람라이 의과보건과학연구소 정신건강의학과 아비지트 아난드 박사와 쇼빗 가르그 박사는 이 증례를 최근 국제학술지 《중추신경계 질환 일차진료 참고저널(The Primary Care Companion for CNS Disorders)》에 보고했다.
환자는 기혼으로, 이전까지 정신질환을 진단받은 적이 없었고 가족 중에도 정신질환 병력이 없었다. 하지만 병원을 찾기 약 9일 전부터 평소와 다른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평소와 달리 종교적인 내용에 몰두하면서 자신이 신의 축복을 받아 특별한 능력을 갖게 됐다는 과대망상을 보였고, 이웃을 심하게 의심했다. 기분이 비정상적으로 들뜨거나 쉽게 짜증을 냈으며 잠을 거의 자지 않아도 피곤해하지 않았다. 신의 목소리가 들리고 자신의 몸 일부에서도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환청도 호소했다.
당시 혼자 농장을 관리하던 그의 행동이 크게 달라진 것을 발견한 이웃이 가족에게 알리면서 병원 치료를 받게 됐다.
15년간 난임 겪어...뒤늦게 ‘클라인펠터 증후군’ 확인
의료진이 과거 병력을 살펴보자 여러 단서가 발견됐다. 환자는 약 15년 동안 난임을 겪고 있었으며, 12년 전 난임 검사에서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낮다는 사실을 확인했지만 당시에는 치료를 받지 않았다.
약 1년 전에는 온몸에 심한 통증이 생겨 검사를 받았고 골다공증 진단을 받았다. 이후 의료진은 앞서 확인된 테스토스테론 결핍을 치료하기 위해 매달 테스토스테론 250mg을 근육주사로 투여하고 비타민D를 함께 처방했다. 이 치료는 약 1년 동안 이어졌으며 마지막 테스토스테론 주사는 정신증으로 병원을 찾기 약 한 달 전에 맞았다.
입원 후 시행한 염색체 검사에서는 환자가 47,XXY형 클라인펠터 증후군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키가 크고, 어깨가 좁으며, 얼굴과 겨드랑이 체모가 적고, 양쪽 고환이 작은 신체적 특징도 관찰됐다.
클라인펠터 증후군은 남성이 일반적인 XY 염색체 외에 X 염색체를 하나 더 가지고 태어나는 성염색체 이상이다. 가장 흔한 형태는 47,XXY로 구성된 경우다. 고환 기능이 떨어져 테스토스테론이 부족해질 수 있으며, 고환 크기가 작거나 체모가 적고 근육량과 골밀도가 감소하는 등의 특징이 나타날 수 있다. 난임 검사를 받는 과정에서 성인이 된 뒤 뒤늦게 발견되는 경우도 있다.
테스토스테론이 부족한 클라인펠터 증후군 환자에게는 증상과 검사 결과 등을 고려해 테스토스테론 보충치료를 시행할 수 있다. 치료는 남성의 2차 성징을 발달·유지하고 근육량과 골밀도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된다.
테스토스테론 치료 후 정신증 발생...의료진이 주목한 이유는?
의료진은 처음에는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급성 및 일과성 정신병장애 가능성을 고려했다. 하지만 환자가 이전에 정신질환을 앓은 적이 없고 테스토스테론 주사 치료 이후 정신증이 나타난 점 등을 종합해, 최종적으로 테스토스테론과 관련해 발생한 정신증으로 판단했다.
테스토스테론은 안드로겐 수용체에 작용하는 호르몬으로, 뇌 기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연구진은 테스토스테론을 비롯한 남성호르몬 계열 스테로이드가 감정과 행동에 관여하는 뇌 회로와 도파민 등 신경전달물질의 작용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주사 형태의 테스토스테론은 투여 후 혈중 농도가 크게 올라갔다가 다음 투여 전까지 다시 낮아지는 등 변동 폭이 커질 수 있는데, 연구진은 이러한 호르몬 농도의 급격한 변화가 정신증에 취약한 일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또 다른 변수는 환자가 가지고 있던 클라인펠터 증후군이다. 기존 연구에서는 클라인펠터 증후군이 있는 사람에게 정신증을 비롯한 일부 정신질환이 더 흔하게 관찰된다는 보고가 있다. 다만 그 이유는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테스토스테론 중단 후 정신증 치료...증상 호전 뒤 재투여에도 재발 없어
의료진은 테스토스테론 주사를 중단하고 환각과 망상 등 급성 정신증 증상 완화를 위해 항정신병약과 진정제 등을 투여했다. 치료를 시작한 지 며칠 만에 짜증과 과대망상, 환각 등의 증상이 뚜렷하게 호전됐다. 이후 약물치료를 이어가며 상태를 관찰했고, 골다공증 치료를 위해서는 졸레드론산(zoledronate)을 별도로 투여했다.
퇴원 후 10일, 1개월, 2개월째 추적관찰에서도 상태는 안정적으로 유지됐다. 수면이 정상으로 돌아왔으며 환각과 망상도 사라졌다.
흥미로운 점은 이후 의료진이 내분비내과와 협의해 테스토스테론 치료를 다시 시작했다는 것이다. 환자에게 여전히 호르몬 보충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의료진은 테스토스테론 에난테이트 250mg을 3주 간격으로 투여하면서 정신과적 증상이 다시 나타나는지 면밀히 관찰했다. 보고된 추적 기간 동안 정신증은 재발하지 않았다.
“테스토스테론 주사가 정신증 유발한다”는 의미 아냐
이번 사례는 테스토스테론 치료를 받은 뒤 정신증이 발생했음을 보고했지만, 이를 근거로 두 사건 사이의 인과관계를 단정할 수는 없다. 한 명의 환자를 관찰한 증례보고이기 때문에 테스토스테론 치료가 정신증을 직접 유발했는지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
특히 이번 환자는 이전까지 진단되지 않았던 클라인펠터 증후군이 있었다. 기존 연구에서 클라인펠터 증후군이 있는 사람에게 정신증을 비롯한 일부 정신질환이 더 흔하게 관찰된 바 있어, 연구진은 환자가 가진 기저 질환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또한 환자는 테스토스테론 치료를 중단한 뒤 증상이 사라졌지만 이후 치료를 재개한 뒤에는 정신증이 재발하지 않았다. 이 역시 테스토스테론과 정신증 사이의 관계가 단순한 인과관계로 설명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
연구진은 이번 사례를 통해 치료 목적으로 테스토스테론을 사용하더라도 일부 취약한 환자에게는 심각한 정신과적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을 의료진이 염두에 둬야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치료를 시작하기 전 정신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치료 과정에서 갑작스러운 불면이나 과도한 흥분, 공격성, 망상·환각 등 이전에 없던 행동 변화가 나타나는지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자주 묻는 질문]
Q1. 테스토스테론 주사를 맞으면 정신증이 생길 수 있나요?
A. 테스토스테론 치료를 받는다고 해서 일반적으로 정신증이 발생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번 사례는 한 명의 환자를 다룬 증례보고로, 테스토스테론이 환각이나 망상을 직접 유발했다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다만 연구진은 클라인펠터 증후군 등 취약 요인이 있는 일부 환자에서는 호르몬 변화가 정신과적 증상과 관련될 가능성을 제시했습니다.
Q2. 클라인펠터 증후군은 어떤 질환인가요?
A. 남성이 일반적인 XY 염색체 외에 X염색체를 하나 더 가지고 태어나는 성염색체 이상으로, 대표적인 형태는 47,XXY입니다. 테스토스테론 부족, 작은 고환, 체모 감소, 근육량·골밀도 감소 등이 나타날 수 있으며 난임 검사를 받다가 성인이 된 뒤 발견되기도 합니다.
Q3. 클라인펠터 증후군이 있으면 반드시 테스토스테론 치료를 받아야 하나요?
A. 모든 환자가 똑같은 치료를 받는 것은 아닙니다. 테스토스테론 결핍 여부와 증상, 연령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보충치료 여부를 결정합니다. 치료는 2차 성징을 발달·유지하고 근육량과 골밀도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