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담배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들이 ‘불붙이지 않는 담배’에 관심을 쏟고 있다.
‘던힐’ 등의 담배 브랜드로 유명한 영국계 담배회사 BAT(British American Tobacco)는 9월 30일(현지시간) 투자자 행사를 열고 “니코틴 파우치 등 신제품군을 앞으로의 성장 동력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일명 ‘연초’로 알려진 궐련에 직접 불을 붙여 연기를 흡입하는 전통적인 방식의 담배 매출이 감소세를 보인 것이 BAT의 이번 발표에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 BAT가 자사 제품군 매출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니코틴 껌, 니코틴 파우치 등 입에 제품을 넣어 니코틴을 보충하는 방식의 ‘경구용 니코틴’ 산업 매출은 연평균 23% 성장할 것으로 전망됐다.
BAT의 예측대로라면 경구용 니코틴 시장 규모는 오는 2030년 110억 파운드(약 19조8200억원)에 이른다. 실제 올해 상반기 BAT의 자체 경구용 니코틴 제품군 사업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65.9% 증가하는 등 예측과 웃도는 성장 곡선을 보이고 있다.
다만 BAT가 당장 궐련 사업을 접는 것은 아니다. 투자자 행사에 참석한 타데우 마로코 BAT그룹 최고경영자(CEO)는 “궐련과 전자담배 등 핵심 사업은 유지하면서, 니코틴 소비의 여러 형태를 확보하는 전략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전했다.
BAT의 대표적인 경쟁 기업인 필립모리스 인터네셔널(PMI) 역시 지난 5월 투자자 간담회에서 비슷한 진단을 내놨다. 필립모리스가 자사 제품군별 매출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2025년 기준 궐련은 전체 제품군 판매량의 약 81%를 차지했다. 여전히 압도적인 비중이지만, 2022~2025년 필립모리스의 연초 제품 매출은 연평균 2% 감소했다.
2025년 전체 판매량의 1%를 겨우 넘긴 니코틴 파우치는 같은 기간 연평균 54%의 증가율을 보였다. 필립모리스 역시 “니코틴 파우치는 산업의 아주 작은 부분을 차지하지만, 성장 속도가 가장 빠른 분야”라고 언급한 바 있다.
FDA가 인정한 연초 대체품? 니코틴 파우치 유행 두고 갑론을박
BAT와 필립모리스가 주목하는 니코틴 파우치는 잇몸 담배와 유사한 형태의 대체 담배다. 티백처럼 생긴 면 파우치 속에 니코틴을 껌처럼 고체로 뭉쳐 집어 넣고 잇몸 사이에 끼워 쓰는 방식이다. 궐련처럼 태우거나 연기를 흡입하지 않기 때문에 담배 연기가 아예 생기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어, 유럽과 미국 등에서는 사용이 늘어나는 추세다.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2024년 전체 담배 시장에서 니코틴 파우치는 2.6%의 점유율을 차지했다. 같은 해 미국 서던 캘리포니아대 연구팀은 미국 내 흡연자의 5.4%가 니코틴 파우치를 사용한다고 추정하기도 했다.
전체 흡연자 100명 중 2~5명이 사용하는 제품인 것을 감안하면 여전히 니코틴 파우치는 ‘특이한 대체품’ 이상의 평가를 받기 어렵다. 다만 지난 6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필립모리스의 파우치형 제품 ‘ZYN(진)’에 광고 문구 기재를 허용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6월 30일(현지시간) FDA는 ZYN의 제품 겉면에 “궐련 대신 쓰면 구강암·심장병·폐암·뇌졸중·폐기종·만성 기관지염 위험이 낮아진다”는 취지의 문구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 미국암협회 산하 암행동네트워크 등 현지 보건단체는 “당국이 나서서 대기업 담배 제품을 광고하는 꼴”이라며 즉각 반발했지만, 일각에선 타르나 일산화탄소가 들어있는 궐련에 비해 니코틴 파우치가 훨씬 안전한 것은 사실이라는 반응도 나왔다.
다만 니코틴 파우치 역시 심혈관질환을 유발한다는 것은 동일하다. FDA 역시 “(파우치형 제품은) 니코틴 고체를 입 안에 넣고 필터 없이 직접 흡입하는 방식이라 1회분의 니코틴 흡수량을 조절할 수 없어 담배 의존성을 더 키울 수 있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또 잇몸 점막에 파우치가 직접 닿기 때문에 구내염이나 치주염 등의 발생 위험을 높일 가능성도 있다.
세금 적용 규정 때문에 한국 출시 당장은 어려워
한국 시장의 주요 담배회사들은 니코틴 파우치 제품군의 한국 시장 출시를 서두르지 않는 분위기다.
필립모리스의 진, BAT의 벨로 등은 해외 시장에서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는 글로벌 주요 브랜드는 한국 출시 계획이 구체화되지 않은 상황이다. KT&G 역시 지난해 북유럽 니코틴 파우치 제조기업 ASF의 최대 주주가 됐지만, 한국 내 제품 출시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업계는 니코틴 파우치의 한국 시장 진입이 늦어지는 이유로 ‘세금’을 꼽는다. 현행 법률에 따라 궐련은 ‘개비 수’를 기준으로, 액상형 전자담배는 ‘용액의 부피(ml)’를 기준으로 세금이 책정된다. 니코틴 파우치는 씹는 담배로 분류가 돼, ‘중량(g)’을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하게끔 되어 있다.
구체적으로 보면 씹는 담배 1g당 담배소비세 364원, 개별소비세 325원, 국민건강증진부담금 534.5원이 부과된다. 여기에 지방교육세와 부가가치세 등을 더하면 1g당 가격은 1200원을 훌쩍 넘는다. 10g짜리 제품을 판매한다고 가정하면 원가나 유통마진을 제외해도 1만원 이상의 세금 부담이 발생하는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연합(EU)이 궐련 대비 낮은 유해성에 주목해 일반 궐련보다 낮은 세액을 적용하는 것과는 다른 계산법으로, 현실적인 가격 설정이 어려운 구조다.
“사실상 금연 껌과 동일한 원리⋯규제 가능하겠나”
다만 본격적으로 니코틴 파우치가 한국 시장에 진입하면 규제가 어려울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한국은 올해 4월 24일 담배사업법을 개정해 담배의 정의를 확장했다. 기존에는 ‘연초의 잎’을 사용한 제품만 담배로 보던 것과 달리, 현재는 ‘합성니코틴을 원료로 하는 제품’도 법적 담배로 편입하고 궐련과 동일한 규제 대상으로 적용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합성니코틴을 사용하는 액상형 전자담배, 니코틴 고체 원료를 사용하는 니코틴 파우치 등도 궐련과 동일하게 ‘담배’로 취급된다.
문제는 니코틴 파우치의 규제에 있어 정부가 가격 설정 이외에 개입할 여지가 크게 없다는 점이다.
통상 담배 규제 정책은 가격제도와 비가격제도로 나뉜다. 가격제도는 담배에 세금을 책정해 소비를 억제하는 정책이며, 비가격제도는 공공장소나 시설을 금연 장소로 지정하거나 광고를 금지하는 방식이다.
니코틴 파우치의 경우 사용할 때 냄새나 주변에 영향이 가지 않아 금연장소에서 사용하더라도 이를 금지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 실제로 미국과 영국에선 중·고등학생들이 수업 시간 중 사용하다 적발된 사례도 나왔다.
이에 더해, 씹는 담배의 인지도가 낮은 한국에서 니코틴 파우치가 ‘금연 보조제의 일종’으로 마케팅될 우려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한 담배업계 관계자는 2일 코메디닷컴과의 통화에서 “니코틴 파우치는 구조만 놓고 보면 금연 껌이나 금연패치와 비슷하다. 니코틴을 몸 안에 직접 주입해, 궐련을 태웠을 때의 유해물질이라도 막자는 것”이라며 “과거 액상형 전자담배가 비슷한 방식을 내세워 금연 아이템으로 홍보했던 것과 비슷한 사례가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합성니코틴 액상형 전자담배가 법적 담배에 포함되자, 업계는 담배사업법 개정안이 적용되지 않는 무니코틴이나 니코틴 유사 물질 제품을 내놓는 식으로 대응했다. 이렇게 성격을 바꾼 신제품 대다수는 별도의 성인인증 없이 청소년도 주요 포털 사이트 등을 통해 판매 정보와 제품 후기에 접근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니코틴 파우치와 관련해 이런 규제 사각지대 악용이 다시 나타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며 “담배 대체품 전체를 포괄하는 규제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