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폭발하는 듯이 쏟아져 나오는 설사병이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미국 NBC방송은 올여름 미국에서 대규모 유행하는 물 설사 관련 질환을 최근 이렇게 보도했다. ‘사이클로스포라증(cyclosporiasis)’으로 불리는 이 질환은 잎채소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위장관 질환이다. 보도에 따르면 이 질환은 샐러드나 허브, 연한 과일과 같은 신선식품에 오염된 사이클로스포라라는 기생충류에 의해 발생한다.
잎채소 관련 사이클로스포라증 미국 이어 영국으로 번져
미국 ABC방송은 7월 30일(현지 시간) 현재까지 미국 내 45개 주에서 1만 80000명 이상이 이 질환에 감염됐다고 보도했다. 미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영국 BBC 방송에 따르면 이 집단 발병 사태는 북미라는 테두리 안에 머물지 않고 물이 넘치듯 다른 나라로도 번져가고 있다.
가장 먼저 움직인 나라가 영국이다. 영국 보건안전청(UKHSA)은 7월 30일 자국 해외 여행객들에게인 사이클로스포라증에 대한 경고를 발령했다고 BBC가 이날 보도했다. UKHSA는 영국에서 지난 4월 이후 ‘폭발성 설사를 유발할 수 있는 고약한 전염병’인 이 질환 확진 사례가 67건 보고됐다고 설명했다. 이 가운데 다수가 멕시코에서 귀국한 여행객이었다. 사망자는 보고되지 않았으며, 환자들이 어디에서 감염됐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BBC는 전문가를 인용해 이 질병이 영국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지 않으며 사람 간 전염 위험은 없다고 전했다. 영국은 물론 미국 방문자가 많은 나라라면 조심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다. 미국 관광청에 따르면 한국인 미국 방문객은 2024년 기준 170만 명으로 영국(403만)-인도(219만)-독일(199만)-브라질(191만)-일본-184만-프랑스(170만 명)에 이어 세계 7위 규모다.
섭취 며칠 후에야 증세 나타나 대응 어려워

미국 오하이오주에 있는 유명 대형병원인 클리블랜드 클리닉에 따르면 이 질환은 폭탄이 폭발하거나 폭포수가 쏟아지듯이 격렬하게 터져 나오는 물 설사가 핵심 증상이다. 여기에 복통, 메스꺼움, 복부 팽만감, 피로감, 식욕 부진 등의 증상을 수반된다.
사이클로스포라증의 병원체인 기생충이 성숙하려면 따뜻한 날씨가 필요하다. 그래서 주로 여름에 발병해왔는데, 미국에서의 발생 숫자는 미미했다. 지난해 5월 1일부터 7월 14일까지 249건이 빌생해 별 주목도 받지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올해엔 지난해 같은 기간의 6배가 넘는 1600건에 이르렀다. 그 뒤 7월 중순 이후 더욱 급발진하면서 총발생 숫자가 1만 건을 넘어섰다.
하버드대 T.H 챈 보건대학원에 따르면 이 질환은 단세포 기생충인 사이클로스포라 카예타넨시스(Cyclospora cayetanensis)에 의해 발생하는 질환이다. 문제는 환자가 기생충이나 알에 오염된 음식이나 물을 섭취하고 비교적 긴 1~2주의 잠복기가 지난 뒤에야 증상이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시간적 지연’ 때문에 ‘동일 병원체에 의한 집단 감염’인데도 감염 사례 간의 연관성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전체 윤곽을 파악하고 질병을 역학적·보건학적·예방의학적으로 관리하기가 힘들어진다.
45개 주에서 발견, 9개 주 심각…
현재 미국은 ‘역대 최대 규모’의 사이클로스포라 감염 사태를 맞고 있다. 감염병 감시, 공중보건 위기 대응, 백신 정책 권고를 수행하는 보건복지부 산하의 핵심 연방 공중보건 기관인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평가다. CDC에 따르면 7월 27일(현지 시간)을 기준으로 45개 주에서 최소한 1건의 확진 및 의심 사례가 보고됐다. 미국 전체를 합치면 실험실에서 확진된 사례가 1만8000건 이상이다. 이 가운데 최소한 300명은 입원 중이다.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미시간 주에서만 이날까지 모두 9680건의 확진 사례가 보고됐다. 이 가운데 160명 이상이 입원이 필요한 상태로 분류됐다. 오하이오에선 500건 이상이, 켄터키, 오클라호마에선 50건 이상이 보고됐다. 일리노이, 인디애나, 캔자스, 펜실베이니아, 웨스트 버지니아 등도 상대가 심각한 것으로 분류됐다.
미 최대 신선식품 유통업체가 멕시코에서 들여온 양상추에서 확산

미국 연방기관인 CDC와 식품의약국(FDA), 그리고 여러 주의 공중보건 당국이 원인을 조사한 결과는 충격적이다. 이 기생충 집단감염이 멕시코 중부에서 생산해 미국 최대 신선식품 공급업체의 하나인 테일러 팜스를 거쳐 미국에서 가장 큰 멕시칸 레스토랑 체인인 ‘타코 벨’ 매장에 공급된 ‘잘게 썬 양상추’에서 시작된 것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테일러 팜스는 2026년 7월 17일 멕시코 중부에서 공급받은 모든 아이스버그 양상추에 대한 리콜에 들어갔다. 미국 보건당국은 소비자들에게 테일러 팜스 멕시코에서 생산된 리콜 대상 양상추를 구매했다면 섭취하지 말고 폐기하거나 반품하라고 당부하고 있지만 사태는 이미 미국 전역으로 퍼지고 있다.
식품안전시스템 허점에서 비롯한 ‘자업자득’ 평가도
존스홉킨스대 블룸버그 보건대학원은 최근 소식지에서 사이클로스포라증 확산을 ‘자업자득(We Had It Coming)’에 비유했다. 이번 사태가 식품 안전 시스템, 특히 감시체계의 허점을 드러낸 인재라고 지적하면서다. 식중독 기생충이 수천 명의 미국인에게 퍼지도록 허용했다는 사실 자체가 기존 시스템이 불안정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는 설명이다.
또 다른 문제점은 감염의 순환구조다. 오염된 음식이나 물에서 발견되는 이 기생충은 사람 몸에 들어오면 위장관에서 번식한 뒤 대변을 통해 다시 환경으로 배출되는데 불과 일주일 만에 다시 감염이 가능한 형태로 자란다. 이러한 ‘오염과 감염의 순환구조’가 일단 가동되면 걷잡을 수가 없게 된다. CNN은 “이 기생충이 농업용 관개용수에 유입되면 더 많은 작물을 오염시키고 더 많은 사람을 감염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결국 현대의 식품 경작과 유통의 순환 시스템이 고장나면서 사건이 발생했다는 해석이다.
감염원인 사이클로스포라는 일반 살균으로는 제거 안돼

또 다른 문제점은 감염원인 사이클로스포라가 일반적인 식품 살균 처리를 피해간다는 사실이다. 산업식품 가공공장에선 재료 소독을 위해 일반적으로 염소를 사용한다. 염소를 물에 섞으면 차아염소산(HOCl)과 하이포아염소산 이온(OCl⁻)으로 해리되는데 차아염소산은 병원균을 포함한 미생물의 세포벽을 쉽게 통과해 강력한 산화 작용으로 구조를 파괴하고 필수 효소를 산화시켜 대사 활동을 멎게 함으로써 세포를 사멸시킨다. 식중독의 흔한 원인 병원체인 대장균이나 살모넬라균은 이렇게 제거된다.
하지만 초자충류 기생충인 사이클로스포라는 단단한 껍질을 가진 포자 형태인 일생에서 난포낭 상태로 버티는 시기가 길다. 난포낭 단계에선 혹독한 날씨나 열, 그리고 세척제 등 외부 환경에 강력한 저항성을 가진다. 염소가 포자 껍질을 뚫지 못해 세포를 파괴하기가 힘든 것이다. 이 때문에 체외의 토양·물·음식 속은 물론 소독 과정에서도 생존성이 높아 쉽게 제거하기가 힘들다. 결국 기존 식품 소독 과정은 사이클로스포라에는 거의 효과가 없다.
이 기생충을 죽이는 유일한 확실한 방법은 약 71°C의 고온으로 가열 방법이다. 하지만 이는 사이클로스포라 발생의 주요 원인인 샐러드 채소, 라즈베리, 허브 그리고 기타 신선 농산물에는 현실적인 방법이 아니다. 신선식품을 삶아서 먹으라고 요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더욱 현실적인 문제는 사이클로스포라가 일반 장비로는 식별이나 검출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우선, 일반 실험실의 미생물 배지 배양 방식으로는 사이클로스포라를 키워서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정확한 식별을 위해선 특수장비가 필요하지만 이를 충분히 갖춘 실험실은 미국에서도 충분하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이를 확실히 막으려면 식품의 공급망에 유입되지 않도록 차단하고 관리하는 것뿐이라고 존스홉킨스대 블룸버그 보건대학원 소식지는 전했다.
트럼프 행정부, 보건예산 삭감·기준완화도 영향
이 소식지는 존스홉킨스대 ‘지속 가능한 미래 센터‘ 전문가를 인용해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보건·의료·과학 관련 예산 삭감이 이번 유행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예산 삭감으로 식품 안전을 담당하는 연방 기관들은 식품 생산자를 검사·감사·감독 시스템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인력과 자금을 확보하지 못하게 되면서 식품안전 시스템의 상당 부분이 업계의 자발적인 자율 규제에만 의존하게 된 게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감시 체계의 약화가 발병 원인을 파악하고 확산을 막을 기회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다.
보건 전문가들, “언제 어디서나 재발 위험” 지적
존스홉킨스대 블룸버그 보건대학원의 아벨 울먼 석좌교수로 ‘물과 보건’ 전문가인 켈로그 J. 슈왑 박사는 소식지에 이렇게 말했다. “이런 식중독 발생은 매년 일어날 것이다. 중요한 건 어떻게 대처하느냐이다. 그게 바로 핵심이다.”
슈왑 교수는 미국의 산업화된 식품 공급망을 그 근거로 제시했다. 그에 따르면 수많은 소규모 농장에서 생산된 농산물은 중앙 집중식 가공 공장으로 보내 혼합, 절단, 포장한 다음 전국으로 배송한다. 때로 국경을 넘기도 한다.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시스템이다. 문제는 병원체가 일단 시스템에 유입되면 단 한 번의 오염 사고라도 해당 지역에서 끝나지 않고 공급망을 따라 광범위한 지역으로 퍼질 수 있다. 현재의 사이클로스포라증 확산이 그 증거라는 것이다. 신선식품을 생산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동시에 질병을 광범위한 지역의 수많은 사람에게 퍼뜨리는 가장 빠른 방법이기도 하다는 지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