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7월 11일 (토)

동네의원에서 시작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관악구 50년 병원의 기적

[K-베스트병원] 지역거점병원 - 에이치플러스 양지병원

H+양지병원은 대형병원 쏠림 현상이 심한 서울에서 지역종합병원으로 탄탄한 입지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진은 이 병원 의료진이 수술을 진행하는 모습. 사진=H+양지병원

한강 이남에서 2030 청년 1인가구 비율이 가장 높은 서울 관악구. 젊음이 꿈틀대는 도림천과 신림역 인근에, 올해로 쉰 살을 맞은 중년 병원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하루 평균 2000명 이상의 방문객이 찾을 정도로 붐비는 에이치플러스(H+) 양지병원이다. 28개 임상과와 의사 110여 명, 10개의 전문센터, 325병상을 갖춘 이 종합병원은 유독 대형 대학병원 쏠림이 심한 서울에서도 독특한 위상을 가진다. 시설과 규모뿐 아니라, 반세기 동안 지역 주민들과 신뢰를 쌓아온 병원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시작은 동네 의원이었다. 1976년 3월, 김란희 산부인과 전문의가 관악구 신림사거리에 산부인과를 열었다. 곧 내과 전문의인 남편도 진료를 시작했다. ‘김철수 내과·김란희 산부인과’는 당시만 해도 허름한 분위기였던 관악구 신림동을 지켰다. 부부는 저녁 늦게까지 환자를 진료하고, 새벽까지 환자들의 상태를 놓고 머리를 맞대는 것이 일상이었다.

1980년에는 ‘양지병원’으로 이름을 바꾸고 진료과를 6개로, 병상을 51개로 늘렸다. 김철수 당시 병원장(현 H+양지병원 이사장)의 신념은 경제적·사회적 여건과 관계없이 누구나 필요한 치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병원 이름을 ‘양지’로 정한 것도 그런 뜻에서였다. 병마와 삶의 무게로 어둡고 추운 그늘에 놓인 환자들에게 따뜻한 햇볕 같은 병원이 되고 싶다는 바람이었다.

그 신념은 병원의 성장 과정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다. 2007년 종합병원으로 승격되고 지역응급의료기관으로 선정되면서 지역의 대표 병원으로 자리 잡았지만, 양지병원의 목표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병원은 더 큰 꿈을 꾸기 시작했다.

병원이 주민들과 가까운 곳에서 만나려면…

2008년, 김상일 현 병원장이 부친의 뒤를 이어 부임했다. 김 병원장은 지역 주민들의 신뢰를 얻는 게 가장 급한 과제라고 봤다.

“지역에서 오랜 역사를 가진 병원이었지만, 당시에는 지역 주민들이 가장 먼저 찾는 병원은 아니었어요. 주민들의 병원을 향한 감정도 마냥 긍정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고요. 결국 지역거점병원으로서의 역할을 강화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죠.”

지역 주민이 몸이 아플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병원. 입원·수술·회복까지 한 곳에서 믿고 맡길 수 있는 병원. 그것이 김 병원장이 그린 ‘양지병원’의 모습이었다. 이때부터 김 병원장은 의료 서비스 질을 높이는 데 몰두했다. 비슷한 규모의 병원 대비 의료진과 시설·장비에 대한 투자를 늘렸다.

그래픽=윤상선 디자이너

김 병원장은 본관 건물을 대대적으로 리모델링하는 한편, 병원명을 ‘H+양지병원’으로 바꾸면서 제2의 도약을 꿈꿨다. H에는 Hope(희망), Humanity(인류), Healing(치료)의 의미를 담았고 ‘+(플러스)’에는 함께 더 나은 것을 추구한다는 뜻을 녹였다.

가장 먼저 입소문을 탄 분야는 ‘소화기’ 분야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위암 적정성평가 1등급을 5회 연속 획득했고, 대장암 적정성평가는 4회 연속 획득했다. 2018년에는 아예 소화기 전담 부속병원을 개원했다. 한 해에 3만 건 이상의 소화기 내시경과 1000건 내외의 치료 내시경을 진행하는 병원이 됐다.

비만당뇨수술센터 역시 대학병원에 못지 않은 성과를 내고 있다. 연간 250건이 넘는 고도비만 수술과 관련 합병증 수술이 이곳에서 진행된다.

“지역거점병원은 환자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만난다는 특징이 있어요. 생활권 안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게 중요합니다. 단순히 병원 규모만 키운다고 가능한 일은 아니죠. 환자의 병력과 생활환경을 이해하고 치료 이후의 삶까지 함께 살피는 것, 그것이 지역거점병원의 역할이자 에이치플러스 양지병원의 역할입니다.”

말뿐인 지역거점병원은 아니었다. 병원은 의료 활동 밖에서도 주민들과 함께 했다. 다양한 건강 강좌와 취약계층 지원, 의료 봉사를 통해 지역 주민의 삶을 돌본다. 2018년에는 ‘따뜻한 마음 후원회’를 발족해 저소득 환자들의 치료비를 지원하고 있으며 노인복지관 배식봉사·불우이웃돕기 바자회·아동복지시설 후원 등을 지속적으로 열고 있다.

이 병원의 또 다른 정체성은 ‘국제진료’ 분야가 담당한다. 본원에 딸린 H+국제병원은 국내외 거주 외국인 환자를 위한 진료기관이다. 현재까지 130개 국가의 환자가 국제병원을 거쳤다. 영어·러시아어·몽골어 등 다국어 원어민 코디네이터가 외국인 환자들에게 전담 서비스를 제공하기에, 불편 없이 진료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H+국제병원은 지난해 보건복지부 ‘외국인 환자 유치 의료기관’ 인증을 획득했다. 글로벌 환자들이 신뢰할 수 있는 국제진료 창구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기술이 가져온 또 한 번의 도약

H+양지병원은 2020년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이 무렵, 모든 병원이 비슷한 고민을 했다. 코로나19 검사 과정에서 의료진은 하루에도 수백 명의 검사를 담당해야 했다. 의료진은 방호복을 착용한 채 장시간 진료에 투입됐고, 환자들은 야외에서 추위에 노출된 채 차례를 기다려야 했다. 모두가 같은 문제를 고민했지만 해법을 가장 먼저 내놓은 곳이 H+양지병원이었다.

H+양지병원은 세계 최초 ‘워크스루 선별진료소’를 개발하며 이 문제를 해결했다. 환자는 공중전화 부스 크기의 공간 안에서 검사를 받고, 의료진은 환자와 완벽히 분리된 채 벽에 설치된 장갑을 통해 검체를 채취하는 방식이다. 직접 접촉을 최소화하고 검사 효율을 높인 접근 방식에, 이 병원은 K-방역의 주역으로 떠올랐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H+양지병원이 선보인 ‘워크스루 선별진료소’는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CNN BBC 등 30여 개국, 50여 개 주요 외신이 이 사실을 집중 보도했다. 화제의 중심에 섰다는 것보다 더 값진 성과는 ‘경험’이었다.

김상일 병원장은 “정해진 답이 없는 위기 상황에서 병원이 스스로 해법을 만들어낸 경험을 얻었다”며 “이를 계기로 의료 혁신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가지고 스마트병원 전환을 지속적으로 추진했다”고 전했다.

대표적인 것이 인공지능(AI) 대장내시경이다. AI가 내시경 영상을 실시간으로 감지해 용종 의심 부위를 표시하고 의료진 판독을 돕는다. 웨어러블 심전도기를 활용해 입원 환자 생체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자동 모니터링하는 시스템도 갖췄다.

관악구 거점병원에서 아시아 거점 병원으로

2024년 12월엔 베트남 하노이에 H+국제의료센터가 출범했다. 국내 의료기관이 100% 투자해 설립하고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최초의 국제 의료시설이다. 약 910평 규모에 자기공명영상(MRI), 컴퓨터단층촬영(CT), X-레이, 유방촬영, 내시경, 초음파 등 다양한 검진 인프라가 들어섰다.

현재 H+국제의료센터는 현지 VVIP 환자와 교민들 대상 프리미엄 검진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베트남 국민들과 하노이를 방문하는 69개국 환자들을 진료하고 있다.

물론 어려움이 컸다. 의료 제도와 문화, 언어, 보험 체계가 달랐다. 한국의 의료시스템과 H+양지병원의 진료 서비스를 글로벌 환자들이 신뢰하기까지는 시간과 노력도 필요했다.

김 병원장은 기술이나 서비스 자체보다 지속 가능한 협력 모델을 제시했다. 현지 진료나 검사 결과 문제가 생기면 서울의 본원과 즉시 연계하는 ‘글로벌 패스트트랙 시스템’은 베트남과 한국의 의료를 잇는 핵심 교두보다.

김 병원장은 “중증질환이나, 정밀 치료가 필요한 이상 소견이 발견되면 검사 결과와 영상 자료를 바탕으로 한국 본원 전문의가 실시간 협진을 진행한다”며 “단순히 화상으로 진료하는 개념을 넘어, 지역 간 의료 격차는 줄이고 전문의 접근성은 높이는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50년 동안 한 지역에서 경쟁력을 키워온 만큼, 검진-진단-치료를 연계하는 시스템에 대해 체계적인 경험을 쌓았다고 판단했습니다. 특히 한국 병원들은 의료진의 임상 경험이 풍부하고, 다양한 진료과가 협진하는 모델이 잘 갖춰져 있죠. 여기에 적절한 원격 의료 운영 시스템을 더하면 국가 간 의료 접근성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고 봤어요.”

베트남으로 무대를 넓혔지만 그의 시선은 여전히 관악구를 향해 있었다. 병원의 미래와 비전을 묻는 질문에, 김 병원장은 “지역 주민이 가까운 곳에서 믿고 찾을 수 있는 병원으로 기억해주셨으면 한다”고 대답했다.

반세기 동안 한 동네에서 쌓아온 신뢰. 그 신뢰를 바탕으로 이제는 해외 환자에게 한국 의료를 소개하고, 의료계에는 지역종합병원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 김 병원장이 그리는 H+양지병원의 미래다.

“병원 역시 지역사회에 대한 책임과 사명을 잊지 않아야겠지요. 진료와 수술은 물론, 회복·재활·요양·연구에 이르기까지 환자에게 필요한 모든 의료서비스를 하나의 흐름 안에서 주민들께 제공하고자 합니다. 주민은 안심하며 치료받고, 직원은 자부심을 갖고 일하며, 사회가 함께 성장하는 혁신 병원이 됐으면 좋겠네요.”

쉰 살이 된 병원은 여전히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그 출발점은 50년 전과 다르지 않았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먼저 손을 내미는 병원이 되는 것이다.

김상일 H+양지병원장은 “지역거점병원은 끝없이 지역사회에 대한 책임과 사명을 다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사진=H+양지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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