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례 1) “출산 때까지 먼 곳 가지 말고 조심해라! 주치의 병원 근처를 벗어나면 안 돼”…
오늘도 중년의 엄마는 딸 걱정에 전화를 건다. 딸은 결혼이 늦어 30대 후반에 첫 임신한 이른바 ‘고위험 산모’다. 힘든 시험관 시술 끝에 쌍둥이를 임신해 곧 출산을 앞두고 있다. 손주 볼 생각에 마음은 들떠있지만 불안감도 드리우고 있다. 최근 ‘분만 뺑뺑이’ 사건을 뉴스로 자주 봤기 때문이다. 혹시 우리 딸도.... 119 구급대까지 출동해 병원에 응급 출산을 간청해도 잇따라 거절 당한다는 것이다. 한 밤 중에 거리를 헤맨 끝에 태아가 사망한 사례도 있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일까?
사례 2) "응급 수술이 두려워요. 이러다 감옥가면..."
고위험 임신부의 분만을 기피하는 병원이 늘고 있다. 덜컥 응급 분만에 나섰다가 의료사고 발생 시 의사가 처벌 받을 수 있다. 이른바 '사법 리스크'가 두렵다. 아기를 받는 산과 뿐만 아니라 응급의학과 의사도 공포를 갖고 있다. 새벽에 응급처치를 잘 해도 '배후 진료'를 담당할 다른 과 전문의가 나서지 않는다. "그 환자를 받았다가 결과가 나쁘면 모든 책임을 혼자 떠 안아야 한다"는 공포감이 짓누르고 있다. 재판에서 형사 처벌과 함께 거액의 배상금을 물어야 한다. 열악한 지역의료를 위해 혼자서 산부인과 의원을 운영하다 엄청난 배상금에 파산한 사례도 있다.
그동안 많이 들었던 '필수의료' 처우 개선...현실은?
그동안 '필수의료' 처우 개선 얘기가 많이 나왔지만 현실은 나아진 게 별로 없다. 피부-미용 의사보다 돈을 못 버는 것은 참을 수 있어도 감옥 가는 것은 너무 두렵다. 분만, 응급 등 필수의료 의료사고의 사법 리스크를 해결하지 않으면 젊은 의사의 이탈을 막을 수 없다. 본인이 자원해도 의사의 부모가 반대한다. "스트레스 적고 편안한 분야를 선택하라"고 말린다. 열악한 삶을 사는 필수의료 의사를 목격하기 때문이다. 거리마다 미용 의사는 넘쳐 나지만 생명을 구하는 의사는 사라지고 있다. 집에서 자다가 응급 콜을 받고 병원으로 달려가는 중년 의사들이 많다. 이러다 필수의료의 대가 끊길 수 있다는 위기감이 높다.
의료사고 발생하면...파산 가능성 높다
정부가 필수의료 배상보험료 국가지원 확대에 나서기로 했다. 보건복지부는 '필수의료 의료진 배상보험료 지원 사업'을 모자의료센터의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응급의료기관 전담 전문의까지 확대한다고 11일 발표했다. 의료사고 배상보험은 의료행위 중 과실에 따라 발생한 손해배상 책임을 보장하는 보험이다. 의료사고 발생 시 높은 배상 부담은 의사들의 필수의료 기피 현상을 심화시키는 주된 원인이다. 분만, 응급 현장에서 의료진이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의료사고에 따른 배상 부담 없이 중증 산모, 응급환자를 신속하게 수용하고 치료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것이다.
우리 아기 지키는 소아외과·소아흉부외과·소아심장과·소아신경외과...
정부는 의료사고 배상액 중 1억 5천만 원 상당까지는 의료기관의 부담하고, 1억 5천만 원을 초과한 15억 5천만 원 배상액 부분에 대해 보장하는 보험을 설계할 계획이다. 국가는 해당 보험료 중 전문의 1인당 175만 원 상당(1년 단위)을 지원한다. 지원 대상자는 전문의의 경우 ‘분만 실적이 있는 산부인과 전문의, 모자의료센터 전담 전문의(산과, 부인과, 소아청소년과), 병원급의 소아외과·소아흉부외과·소아심장과·소아신경외과 전문의, 응급의료기관 전담 전문의’ 등이다. 전공의의 경우 지난해와 동일하게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심장혈관흉부외과, 응급의학과, 신경외과, 신경과 소속 레지던트가 대상이다.
배상액 갈수록 커지고 있어...위기감 증폭
정부의 의료사고 배상액 지원이 의료진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배상액이 갈수록 커지고 있어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분만 뺑뺑이’ ‘응급실 뺑뺑이’는 나에게, 우리 가족에도 해당될 수 있다. 모두가 잠든 새벽에 분만실, 응급실을 혼자서 지키는 의사들의 공포감을 상상해보라. 이들은 "차라리 미용의사나 할 걸"... 후회 하는 경우가 있다. 젊은 의사들의 필수의료 기피 현상이 사회 문제가 될 정도로 심각하다. 중년의 의사가 은퇴하면 수술할 의사가 없다고 한숨 짓는 병원이 많다. 의료수가(건강보험에서 받는 돈)는 '찔끔' 인상이고, 출근하면 동료 의사가 하나 둘 사라지고 있다. 경험 많은 전문의가 부족하니 의료사고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
고위험 산모 크게 늘고 있는데...산과 의사는 사라진다
앞의 사례에 나온 중년 엄마는 딸이 손주를 '무사히' 출산해도 걱정이다. 만일 아기의 심장에 문제가 있는 경우 또 다른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소아과 중 고난도의 수술을 하는 소아외과·소아흉부외과·소아심장과·소아신경외과 전문의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의 결혼이 늦어지면서 고위험 산모가 크게 늘고 있다. 반면에 고위험 임신부를 돌보는 산과 의사는 대가 끊길 위기에 직면해 있다. 최근 저출산 현상이 완화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산과 의사가 떠나고 있는데, 우리 손주는 건강하게 태어날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