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모님이 걸리셨으니 나도 피하긴 힘들지 않을까."
치매 가족력이 있는 40~50대라면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했을 법하다.
그런데 알츠하이머 위험 유전자를 가진 중년들을 10년간 추적한 연구에서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왔다. 유전자보다 일상의 선택이 뇌의 '미래'를 좌우했고, 그 선택은 지금 당장 시작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같은 유전자, 왜 뇌가 달라졌을까
아일랜드·영국의 5개 대학(트리니티 칼리지 더블린, 케임브리지, 옥스퍼드, 에딘버러, 임피리얼 칼리지 런던)이 공동 운영하는 PREVENT-Dementia 프로그램은 2014년부터 40~59세 인지기능 정상 성인 700명을 모집, 같은 사람들을 10년에 걸쳐 뇌 영상·혈액·인지 검사를 반복 추적하는 연구다. 참여자의 38%는 알츠하이머 위험을 높이는 유전자 변이 'APOE ε4' 보유자였다. 이 변이는 1개만 가져도 알츠하이머 위험이 약 2배, 2개면 약 6배 높아지는 가장 강력한 유전적 위험 인자다.
연구팀은 악기 연주, 해외여행, 가족·친구와의 교류, 예술 활동, 신체 운동, 독서, 외국어 학습 등 7가지 생활 활동이 인지기능에 미치는 영향을 APOE ε4의 영향과 직접 비교했다. APOE ε4 유전자는 알츠하이머 위험을 높이는 인자다.
결과는 명확했다. 생활 활동이 뇌에 미치는 이로운 영향이 유전자의 해로운 영향보다 강했다. 치매 유전자를 갖고 있더라도 중년의 활동 조합에 따라 인지기능이 달라졌다.
운동만, 또는 독서만 꾸준히 해도 치매를 막기엔 역부족이다. 이런 단일 활동의 한계는 이미 종전 여러 연구에서 확인된 바 있다.
이번 연구는 달랐다. 40~50대 중년에서 여러 활동을 함께 했을 때의 효과를 알츠하이머 유전 위험과 직접 비교했다. 활동이 다양할수록 뇌는 더 강해졌다.
운동보다 먼저 잡아야 할 것이 있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났을까.
트리니티 칼리지 더블린 심리학과의 로리나 나치 부교수는 "신체적·사회적·지적 자극을 함께 쌓을 때 뇌 보호 효과가 가장 두드러졌다"고 말했다.
이를 뇌과학에서는 '인지예비력'이라 부른다. 도로망이 잘 갖춰지면 한 길이 막혀도 우회로가 생기는 것처럼, 다양한 자극으로 뇌 신경망이 풍부하게 연결되면 일부 기능이 손상돼도 다른 경로로 기능을 유지할 수 있다.
나치 부교수는 "이러한 활동들이 노인이 되기 수십 년 전인 중년에 이미 인지기능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고 밝혔다.
반대로 인지기능 저하와 가장 강하게 연결된 요인은 우울 증상과 외상성 뇌손상(교통사고·낙상 등으로 뇌에 충격이 가해지는 부상)이었다. 이어 당뇨병·고혈압·수면 불량·청력 저하가 그 뒤를 이었다.
악기·여행·사교 등 자극 활동을 쌓는 동시에 우울감과 만성질환을 함께 관리해야 뇌를 온전히 지킬 수 있다.
40~50대의 하루하루가 70대의 뇌를 만들고 있다.
알츠하이머는 증상이 나타나기 10~20년 전부터 뇌 안에서 조용히 진행된다. 악기를 배우고, 낯선 곳으로 떠나고, 오랜 사귄 친구에게 연락하라. 치매를 막는 처방전이 이미 일상 안에 있다.
연구 결과는 치매 전문 학술지 《Alzheimer's & Dementia: Diagnosis, Assessment & Disease Monitoring》4월 21일자에 게재됐다.
[치매 예방, 당장 알아야 할 내용]
Q1. 치매를 부르는 주요 위험 요인은 무엇인가요?
A1. 세계적 권위의 의학 학술지 《Lancet》 산하 치매 예방 국제위원회는 2024년 보고서에서 저학력, 청력 손실, 고혈압, 흡연, 비만, 우울증, 운동 부족, 당뇨병, 과음, 외상성 뇌손상, 대기오염, 사회적 고립, 고LDL 콜레스테롤, 시력 손실 등 14가지를 생활습관으로 줄일 수 있는 위험 요인으로 제시했습니다. 이를 관리하면 치매의 약 45%를 예방할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고LDL 콜레스테롤과 시력 손실은 2024년에 새로 추가된 항목입니다.
Q2. APOE ε4 유전자를 갖고 있으면 알츠하이머가 반드시 생기나요?
A2. 그렇지 않습니다. APOE ε4는 위험을 높이는 인자이지, 발병을 확정하는 인자가 아닙니다. 유전자를 가진 사람도 중년기에 다양한 자극 활동을 병행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과 인지기능 차이가 벌어진다는 것이 이번 연구의 핵심입니다.
Q3. 수면이나 우울증도 뇌에 영향을 미치나요?
A3. 그렇습니다. 우울 증상과 외상성 뇌손상이 인지기능을 가장 크게 떨어뜨렸고, 당뇨병·고혈압·수면 불량·청력 저하도 뒤를 이었습니다. 자극 활동을 늘리는 것과 함께 정기 검진과 정신건강 관리를 병행하는 것이 치매 예방의 두 축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