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츠하이머병 치료의 오랜 해법으로 여겨져 온 ‘아밀로이드 가설’이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뇌에 쌓이는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이 병의 출발점이라는 이론을 바탕으로 개발된 신약들이 최근 몇 년 새 잇달아 등장했지만, 정작 기억력 저하와 일상 기능 악화를 눈에 띄게 늦추는지는 여전히 논쟁적이라는 대규모 재평가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한때 ‘게임체인저’로 불리던 알츠하이머 치료제들에 다시 먹구름이 드리운 셈이다.
이번 논란은 국제 임상 근거평가 기관인 코크란(Cochrane)의 새 검토에서 비롯됐다. 코크란은 전 세계 190여 개국 1만1000여 명의 전문가가 참여하는 비영리 보건연구 기관으로, 보건의료 의사결정에 필요한 임상 근거를 평가하고 제시하는 곳이다.
코크란은 최근 발표한 체계적 문헌고찰에서, 아밀로이드 베타를 표적으로 하는 단클론항체 치료제들이 인지 저하와 치매 중증도를 줄이는 데 임상적으로 의미 있는 효과를 보이지 못했거나, 효과가 매우 제한적이었다고 평가했다. 분석에는 17개 임상시험과 2만 명이 넘는 참가자 자료가 포함됐다.
분석 대상에는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바이오젠·에자이의 레켐비(성분명 레카네맙), 아두헬름(아두카누맙), 일라이 릴리의 키썬라(도나네맙)와 함께, 한때 기대를 모았지만 임상에서 실패한 간테네루맙, 솔라네주맙 등 총 7종의 항체 치료제가 포함됐다. 연구진은 이 약물들이 뇌 속 아밀로이드 양을 줄일 수는 있지만, 환자가 실제로 체감할 만큼 병의 진행을 늦췄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여기서 말하는 아밀로이드 가설은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뇌에 축적되는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이 신경세포 손상과 기억력 저하를 일으키는 핵심 원인이라는 이론이다. 오랫동안 알츠하이머 치료제 개발의 중심축이 된 것도 이 때문이다. 뇌 속 아밀로이드 덩어리(플라크)를 없애면 병의 진행을 늦출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실제로 최근 등장한 레켐비와 키썬라는 모두 이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을 직접 겨냥하는 항체 치료제다.
문제는 “아밀로이드를 없애는 것”과 “환자가 실제로 좋아지는 것”이 같은 말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이다. 레켐비는 3상 임상시험에서 18개월 시점 임상치매평가척도 합산점수(CDR-SB) 기준으로 위약 대비 인지·기능 저하를 27% 늦췄다는 결과를 바탕으로 FDA의 승인을 받았다. 키썬라도 3상 시험에서 18개월 기준 인지·기능 저하를 최대 35% 늦췄다고 릴리가 발표했고, 승인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이번 코크란 검토는 이런 통계적 차이가 환자와 가족이 실제 생활에서 뚜렷하게 체감할 만큼 큰 변화는 아닐 수 있다고 지적했다. 수치상 차이는 있어도 “정말 치료라고 부를 만큼 의미 있는가”라는 질문을 다시 던진 것이다.
부작용 우려도 논란을 키웠다. 코크란은 항아밀로이드 치료제가 뇌부종과 뇌출혈 위험을 높일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 약에서 자주 언급되는 ARIA(아밀로이드 관련 영상 이상)가 대표적이다. MRI 영상 검사에서 확인되는 뇌 부종이나 미세출혈 같은 이상 소견을 뜻한다. 약효가 크지 않은데 위험 부담까지 무시하기 어렵다면, 치료 가치에 대한 판단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다만 이번 결론을 둘러싼 반론도 적지 않다. 영국 알츠하이머학회와 일부 연구자들은 코크란이 과거 실패한 구형 약물과 최근 허가된 신약을 한데 묶어 평가한 점을 문제 삼고 있다. 레켐비와 키썬라는 알츠하이머 초기 환자에서 일정한 이득을 보인 최신 약물인데, 이미 개발이 중단된 후보물질들과 함께 평균 효과를 내면 실제 가치가 과소평가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일라이 릴리 역시 자사 약물의 임상 성과를 들어 검토 방법론에 이의를 제기했다.
이 때문에 쟁점은 단순히 “약이 듣느냐, 안 듣느냐”를 넘어선다. 아밀로이드 가설이 완전히 틀렸는가, 아니면 아밀로이드만으로는 알츠하이머를 설명하기에 부족한가로 질문이 옮겨가고 있다. 최근 학계에서 타우 단백질, 신경염증, 미세아교세포, 혈관 변화, 뇌-장 축 같은 다른 경로를 함께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것도 이런 이유다. 아밀로이드가 병의 시작점 중 하나일 수는 있지만, 이후 병을 악화시키는 과정은 훨씬 더 복잡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결국 남는 질문은 하나다. 뇌 속 아밀로이드 플라크를 지우는 것만으로 알츠하이머를 멈출 수 있느냐는 것”이라며 “지금까지의 답은 ‘아직 충분하지 않다’에 가깝다”고 말했다. 이어 “레켐비와 키썬라가 완전히 무의미하다고 단정할 단계는 아니지만, 아밀로이드 하나만 겨냥하는 전략이 결정적 해법이 되기는 어렵다는 신호는 더 뚜렷해졌다”고 덧붙였다. 알츠하이머 치료의 다음 장은 결국 아밀로이드 이후 경로를 얼마나 정교하게 설명하고 공략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