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프고 고열에 시달린 60대 영국인 남성이 응급실을 찾았다. 이 환자는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자마자 허리에 극심한 통증을 느꼈다. 몸을 뒤척이거나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도 힘들 정도였다. 5일 뒤에는 40°C가 넘는 높은 열과 함께 메스꺼움, 구토, 식욕부진, 어지럼증을 느꼈다. 또한 집에서 쓰러질 정도로 걸음걸이가 불안정했다. 말투가 어눌해지고 일시적인 정신혼란 증상까지 나타나 뇌졸중으로 의심됐다.
영국 카운티 더럼 및 달링턴 NHS 재단 트러스트 산하 달링턴 메모리얼 병원 연구팀에 의하면 이 65세 남성 환자는 고혈압과 위식도역류, 식도열공 탈장을 앓은 적이 있었다. 당뇨병 진단을 받지는 않았지만 신체적 스트레스·약물 반응 등으로 혈당 수치가 정상보다 높은 편이었다.
응급실에 실려온 이 환자는 체온(40.1도), 혈압(150/77mmHg), 호흡수(분당 20회), 산소포화도(94%)가 모두 불안정한 상태였다. 혈액 검사 결과 염증 수치인 C-반응성 단백질(CRP) 수치가 정상 기준(4mg/L 미만)을 크게 넘는 242mg/L까지 치솟아 있었다.
연구팀은 즉시 뇌 CT(컴퓨터단층촬영)와 흉부 X선 검사를 진행했으나 신경학적 이상이나 뇌졸중, 폐 질환 등 명확한 원인을 찾지 못했다. 혈액 배양 검사에서는 식중독과 피부감염의 원인이며 혈액을 타고 온몸으로 퍼지면 치명적일 수 있는 ‘메티실린 감수성 황색포도상구균(MSSA)’이 검출됐다.
연구팀은 세균이 혈액 내에 침투해 돌아다니는 상태(균혈증)의 원인을 찾기 위해 정밀 전척추 MRI(자기공명영상) 검사를 했다. 그 결과 환자는 나이에 따른 단순 퇴행성 디스크 질환일 뿐, 감염이나 농양(고름집)의 징후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이상 없음’ 판정을 받았다. 환자는 항생제를 투여받았으나 허리 통증과 고열이 사라지지 않았다. 피 검사에서 균혈증도 계속 발견됐다.
연구팀은 초기 MRI가 정상인데도 멈추지 않는 균혈증과 척추 통증에 주목했다. 입원 약 2주 뒤, 허리뼈에 조영제를 주사하고 MRI 검사를 다시 했다. 그 결과 불과 2주 전 깨끗했던 5번 요추와 1번 천추 사이(L5-S1)에 심각한 척추디스크염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그 때문에 신경을 누르는 경막외 농양(척추 신경을 둘러싼 막 외부에 차는 고름집)까지 생긴 것으로 드러났다. 초기 MRI 촬영 당시에는 염증 세포가 너무 작아 영상에 잡히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정체를 드러낸 것으로 분석됐다.
환자는 6주간의 항생제 정맥 투여 치료를 받은 뒤 걸어서 퇴원할 수 있었다. 신경 손상이 진행돼 다리 마비, 배뇨 장애 등 증상이 나타나기 전에 농양을 발견한 덕분이었다. 이 사례 연구 결과(Initial Negative MRI Spine and Persistent Staphylococcus aureus Bacteraemia Lead to Delayed Diagnosis of Lumbar Spondylodiscitis and Epidural Abscess: A Case Report)는 최근 국제 학술지 《큐레우스(Cureus)》에 실렸다.
이 사례는 초기 영상 검사에서 별다른 이상이 없다는 결과가 나왔는데도 황색포도상구균 균혈증이 사라지지 않고 허리 통증이 계속되면, 척추 감염을 의심해봐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또한 MRI 재검사로 척추 경막외 농양 진단을 받은 환자는 수술하지 않고 성공적으로 관리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척추 골수염, 척추디스크염은 전체 골수염의 약 3%~5%를 차지하며 매우 위험한 병이다. 고령화와 당뇨병 등 만성병 환자의 증가, 몸에 칼이나 바늘을 대는 시술(침습적 시술)의 확대 등으로 발병률이 계속 높아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보건의료빅데이터를 보면 척추지방, 척추골수염 등 감염성 척추병으로 진료받는 환자의 대다수는 60대 이상이다. 척추 감염을 일으키는 가장 흔한 원인균은 황색포도상구균으로 전체 원인균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이 균이 혈액을 따라 돌아다니다가 척추 뼈나 추간판에 자리를 잡고 염증을 일으킨다. 심하면 척추 신경을 둘러싼 막 외부에 고름이 차는 경막외 농양으로 악화한다.
환자나 의사가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은 초기 영상검사의 한계다. MRI는 척추 감염 및 경막외 농양 진단에서 민감도와 특이도가 90%가 넘는 매우 우수한 검사법이다. 그러나 감염 초기 1~2주 안에는 뼈나 디스크의 구조적 변화가 뚜렷하지 않아 MRI상 정상(가짜 음성)으로 나타날 수 있다. 미국감염병학회(IDSA) 지침에 의하면 초기 MRI 검사에서 정상으로 나오더라도 지속적인 황색포도상구균 균혈증이 있거나 원인을 알 수 없는 요통과 고열이 이어지면 1~3주 이내에 MRI 재검사를 권한다.
허리 통증과 함께 원인 불명의 고열이 지속되거나, 혈액 배양 검사에서 균이 계속 검출된다면 첫 번째 MRI 결과만 믿고 방심해서는 안 된다.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하반신 마비, 배뇨 장애 등 심각한 후유증을 겪거나 생명을 위협받을 수 있다.
[자주 묻는 질문]
Q1. 허리 통증과 함께 열이 날 때 담이 들었거나 일반 척추병인 경우도 있고 감염성 척추염인 경우도 있다는데 이를 어떻게 구별할 수 있나요?
A1. 일반적인 디스크나 근육통은 특정 자세를 취할 때 통증이 심해지고 휴식을 취하면 통증이 줄어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면 척추 감염에 의한 통증은 쉬어도 통증이 사라지지 않고 38도 이상의 고열이나 오한, 원인 모를 체중 감소와 식욕 부진이 함께 나타날 수 있습니다. 특히 혈액 검사에서 염증 수치가 치솟을 수 있습니다.
Q2. 경막외 농양이 생겼다면 척추 수술을 받아야 하나요?
A2.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다리 근력 약화, 감각 이상, 대소변 장애 등 신경 손상에 따른 마비나 이상 증상이 이미 진행됐거나 척추 구조가 불안정하면 긴급 응급 수술로 농양을 제거해야 합니다. 신경학적 이상이 없고 감염균에 맞는 항생제 치료에 반응을 보인다면, 수술하지 않고 장기간의 표적 항생제 투여만으로도 치료할 수 있습니다.
Q3. 황색포도상구균 균혈증은 어떤 경로로 발생하며 왜 척추로 잘 퍼지나요?
A3. 황색포도상구균은 사람의 피부나 코점막 등에 있는 게 정상이지만 상처, 주사 바늘, 시술, 잇몸병 등을 통해 혈관 내로 침투할 수 있습니다. 피를 타고 온몸을 돌던 균은 피가 많이 흐르고 맴도는 척추 뼈와 추간판 주위에 정착하기 쉽습니다. 여기에 척추 골수염이나 디스크염(추간판염)이 자주 발생하는 까닭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