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이 글로벌 제약·바이오 산업의 주요 신약 공급처로 부상한 배경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단순한 정부 지원이나 거대한 내수시장만으로는 최근의 성장을 설명하기 어렵다고 본다. 규제개혁과 대규모 환자·임상 인프라, 자본 등 산업 기반이 맞물리면서 후보물질을 빠르게 임상에 진입시키고 사람에게서 검증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는 분석이다.
25일 제약·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최근 중국 공업정보화부와 국가발전개혁위원회, 국가약품감독관리국(NMPA) 등 10개 부처는 ‘제15차 5개년 의약공업 발전계획’을 공개했다.
중국은 2030년까지 일정 규모 이상 제약기업의 매출을 3조5000억위안 이상으로 키우고, 전 세계 퍼스트인클래스(FIC) 신약 가운데 중국이 개발한 신약의 비중을 25% 이상으로 높이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혁신신약 산업의 연평균 성장률도 20% 이상으로 설정했다. 중국 정부가 바이오의약을 단순한 성장산업을 넘어 국가 주력산업으로 키우겠다는 것이다.
중국은 2015년 이후 의약품 심사·허가제도를 지속적으로 개혁했다. 2018년 임상시험 심사체계를 개편하면서 일정 기간 내 규제기관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임상을 진행할 수 있는 ‘묵시적 승인’ 체계를 도입했고, 현재 일반적인 임상시험 심사는 60영업일 체계로 운영된다.
중국의 경쟁력은 실제 임상 수행기간에서 나타난다. 한국바이오협회에 따르면, 단일국가 임상 기준 종양 임상 1상의 평균 소요기간은 미국이 26.2개월인 반면 중국은 17.2개월이었다. 임상 2상도 미국 37.6개월, 중국 30.2개월로 중국이 짧았다. 전체 적응증 기준으로 중국에서 임상 1상을 수행하면 미국보다 평균 7개월 빠른 것으로 분석됐다.
비용도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임상 1상 평균 비용은 미국 580만달러, 중국 329만달러로 집계됐다. 전체 적응증을 기준으로 중국의 임상 1상 비용은 미국보다 30~50%, 2상은 15~30% 낮은 것으로 분석됐다. 종양 임상만 보면 중국에서 1상을 진행할 경우 미국보다 32%, 2상은 25% 비용이 적게 들었다.
대규모 임상에 AI 결합…개발 속도 더 끌어올려
다만 중국의 신약개발 경쟁력을 단순히 임상 승인기간이나 비용 차이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전문가들은 대규모 환자와 병원, CRO 등 임상 인프라를 활용해 많은 후보물질을 동시에 검증할 수 있다는 점을 더 큰 강점으로 꼽는다.
윤희정 KISTEP 바이오혁신전략팀장은 “중국의 강점은 개별적인 IND 심사기간 자체보다는 대규모 환자군과 병원, CRO 등 임상 인프라를 기반으로 많은 후보물질을 동시에 임상에서 검증하고 다음 단계로 넘길 수 있는 전체적인 개발 규모와 속도에 있다”고 설명했다.
인공지능(AI)도 이 속도전에 가세했다. 윤 팀장은 AI의 효과가 현재 가장 직접적으로 나타나는 영역으로 표적 발굴, 가상 스크리닝, 분자 설계와 후보물질 최적화 등 초기 탐색단계를 꼽았다.
중국의 특징은 여기에 로보틱스와 자동화 실험실을 결합한다는 데 있다. AI가 실험을 설계하고 로봇이 실제 실험을 수행한 뒤 결과를 다시 AI가 학습하는 '자율실험실(Self-Driving Laboratory)' 구축이 활발하다는 것이다.
대표기업으로 인실리코 메디슨(Insilico Medicine)과 XtalPi가 꼽힌다. 인실리코는 생성형 AI를 활용해 표적 발굴과 분자 설계를 수행하고 있으며, XtalPi는 AI와 물리 기반 계산, 로봇 자동실험을 결합한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다.
실제 개발 성과도 나오고 있다. 인실리코가 AI로 발굴·설계한 특발성 폐섬유증 치료제 후보물질을 올해 7월 임상 3상에 진입시킨 것으로 전해진다.
정부 자금도 AI 신약기업으로 들어가고 있다. 중국 AI 신약기업 METiS TechBio는 지난해 8월 베이징 의료보건산업투자펀드와 다싱산업투자펀드 등이 참여한 시리즈D 투자에서 4억위안을 조달한 것으로 전해진다.
사람 데이터까지 붙여 판다…빅파마가 중국 찾는 이유
글로벌 빅파마가 중국을 찾는 주요 이유 중 하나로 강력한 임상 인프라가 꼽힌다. 후보물질이 실제 환자에게 효능을 보이는지 확인하는 개념입증(PoC·Proof of Concept)을 상대적으로 빨리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빅파마 입장에서는 전임상 또는 초기 후보를 처음부터 직접 개발하는 것보다 사람에게서 어느 정도 검증된 자산을 사들이면 개발시간과 실패 위험을 동시에 낮출 수 있다.
여기에 더해 ‘특허 절벽’으로 향후 수년간 대형 블록버스터 제품의 특허만료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글로벌 제약사들은 빈 파이프라인을 채워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모든 신약 후보를 자체 R&D에서 만드는 데는 시간과 비용, 실패 위험이 크기 때문에 외부 자산 도입의 중요성이 높아졌고 중국이 새로운 공급처가 된 것이다.
중국은 대규모 환자와 임상 인프라, 자본과 정책 지원을 바탕으로 후보물질을 빠르게 임상에서 검증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오기환 한국바이오협회 바이오경제연구센터장은 “중국의 압도적인 규모의 경제와 속도에 맞서기는 어렵다”며 “우리의 강점을 활용해 차별화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