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교적 잘 지내던 68세 여성이 최근 1년 동안 한 달에 한 번 정도 의식을 잃고 쓰러지곤 했다. 되풀이되는 실신 탓에 응급실을 들락날락했고, 삶의 질이 뚝 떨어졌다. 이 환자는 평소 심장이 파르르 불규칙하게 뛰는 심방세동과 심장이 정상보다 느리게 뛰는 서맥을 앓고 있었다. 심방세동과 서맥은 모두 부정맥에 속한다.
미국 웨스트버지니아대 등 연구팀은 이 환자가 심장 박동이 불규칙하고 빠르게 뛰는 심방세동 때문에 자주 실신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환자는 영구 심박조율기를 이식받은 상태였다. 하지만 뇌파·뇌영상촬영·심초음파·핵의학 검사 등 온갖 정밀 검사를 해봐도 환자가 지병 탓에 실신을 일으켰다는 뚜렷한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
그 사이 환자의 실신 빈도는 월 2~3회로 늘어났다. 쓰러지기 전에는 머리가 핑 돌면서 몸에 힘이 빠졌고, 아침에 물리치료도 받을 수 없을 만큼 상태가 나빠졌다.
연구팀은 지병이 아닌 약물 부작용으로 눈을 돌렸다. 환자가 매일 복용하던 10여 가지의 약물을 꼼꼼하게 분석했다. 실신의 원인은 심장 약도, 혈압약도 아니었다. 2021년부터 불안증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매일 복용해 온 벤조디아제핀 계열의 신경안정제인 디아제팜이 주범이었다.
연구팀은 환자의 혈압 변화를 추적해봤다. 그 결과 디아제팜을 복용하고 약 3~4시간이 지나면 수축기 혈압이 70mmHg까지 뚝 떨어지는 증상이 일정하게 나타나는 것을 발견했다. 약 먹는 시간에 맞춰 혈압이 바닥을 치는 약물 부작용이 실신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분석됐다.
연구팀은 디아제팜 복용량을 하루 2회, 회당 5mg에서 하루 2회, 회당 3mg으로 줄이고 경과를 살폈다. 약을 줄이자마자 4개월 동안 실신 횟수가 단 1회로 줄었다. 이후 디아제팜을 회당 2mg으로 더 줄이자, 5~9개월 차에는 혈압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면서 환자는 단 한 번도 실신하지 않았다. 1년 넘게 괴롭히던 원인 불명의 실신이 신경안정제의 복용량을 줄인 것만으로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이 사례 연구 결과(Diazepam-Associated Hypotension Contributing to Recurrent Syncope in an Older Adult)는 최근 국제 학술지 《큐레우스(Cureus)》에 실렸다.
이 사례는 지병을 앓는 노인 환자들의 약물 복용 상태를 되돌아보게 해준다. 특히 약을 매일 한 움큼씩 먹는 많은 환자들이 약물 상호작용의 위험에 노출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실신은 뇌로 가는 피의 양이 순간적으로 모자라 의식을 잃는 현상이다. 노년층에서는 지병 자체보다는 복용 중인 각종 약의 부작용이 얽혀 발생하는 사례가 많다.
특히 다섯 가지 이상의 약을 한꺼번에 복용(다약제 복용)하는 것이 갑자기 일어설 때 혈압이 뚝 떨어지는 기립성 저혈압과 약물 유발성 저혈압의 주요 원인이다. 65세 이상 10명 중 1~3명(5~33%)이 기립성 저혈압을 겪는다.
이 환자에게 부작용을 일으킨 디아제팜은 벤조디아제핀 계열의 대표적인 신경안정제다. 약을 먹고 30분~1시간 안에 효과가 나타나 마음을 빠르게 가라앉혀 준다. 처방받는 환자의 상당수는 불안장애, 공황장애, 우울증과 함께 나타나는 불안증, 불면증 등을 겪는 사람들이다. 근육을 풀어주고 진정시키는 효과도 뛰어나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만 연간 300만 명 이상이 벤조디아제핀 계열의 신경안정제를 처방받고 있다. 이는 담 걸림 등 급성 근육병이나 시술·수술 전에 안정을 취해야 하는 환자들이 포함된 수치다.
하지만 이 계열의 약물은 교감신경을 누르고 혈관을 넓히며 심장 힘을 약하게 해 혈압을 강제로 떨어뜨리는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나이가 들면 간과 콩팥(신장)의 약물 배출 능력이 떨어진다. 특히 디아제팜은 몸속 지방에 오래 남아 부작용이 훨씬 길게 지속된다.
특히 이 사례 속 환자처럼 혈압약(리시노프릴), 심장약(메토프로롤), 비뇨기약(탐술로신) 등을 복용하는 상태에서 디아제팜 부작용이 더해지면 혈압을 뚝 떨어뜨리는 작용이 연쇄 반응을 일으켜 심각한 저혈압과 실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에서도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5종 이상의 약을 복용하는 노인 비율이 40%가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대한부정맥학회에 의하면 국내에서 2022년 부정맥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 46만3538명 가운데 약 56%가 심방세동 환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심방세동은 뇌졸중과 심부전의 원인이 된다. 돌연사의 약 90%는 부정맥 중 심실세동에 의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인이 원인을 알 수 없는 어지럼증이나 실신, 낙상 등을 겪는다면 지병 탓만 해선 안 된다. 복용 중인 모든 약의 부작용 가능성을 정밀 점검해야 한다. 약물 부작용이 의심된다고 약을 갑자기 끊으면 불안이 심해지거나 금단 증상이 올 수 있으니 반드시 의사와 상의한 뒤 조치를 취해야 한다.
[자주 묻는 질문]
Q1. 신경안정제를 먹고 있는데 어지러우면 바로 약을 끊어야 하나요?
A1. 마음대로 약을 끊으면 안 됩니다. 벤조디아제핀계 신경안정제를 갑자기 끊으면 불안이 더 심해지거나 불면증, 혈압이 갑자기 오르는 금단 증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어지럼증이나 저혈압 증상이 있다면 즉시 담당 의사와 상의해 약 용량을 천천히 줄이거나 다른 약으로 바꿔야 합니다.
Q2. 디아제팜을 먹으면 왜 나이가 들수록 약물 부작용이 더 잘 생기나요?
A2. 나이가 들면 간과 콩팥의 기능이 약해져 약 성분이 몸 밖으로 빠져나가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특히 디아제팜은 지방에 잘 들러붙는 성질이 있어 노인의 체지방에 오래 남아있습니다. 이 때문에 약 성분이 몸에 쌓이면서 혈압 저하, 낙상, 기억력 저하, 과도한 졸음 등 부작용이 더 강하고 길게 나타납니다.
Q3. 혈압약과 신경안정제를 같이 먹을 때 약물 부작용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A3. 두 약을 함께 먹으면 혈압이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이 떨어지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습니다. 약을 복용하고 3~4시간 뒤에 핑 도는 어지러움이나 피로감, 두통이 생기는지 혈압을 재며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병원에 갈 때는 영양제를 포함해 현재 복용 중인 모든 약 목록을 의사에게 보여주고 약끼리 충돌하지 않는지 문의하는 게 바람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