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7월 23일 (목)

항암제 치료받아도 안 낫는 사람들, 몸속에 '이것' 있었다

혈중 세포외소포체, '항암 항체' 무력화…치료 반응 예측 바이오마커 가능성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혈액 검사용 튜브에 담긴 혈액 샘플. 삼성서울병원 연구팀은 이런 혈청 샘플을 분석해, 치료 전 CD20 양성 세포외소포체 수치가 리툭시맙 치료 결과를 예측하는 바이오마커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똑같은 항암제를 써도 유독 안 듣는 환자가 있다. 림프절 곳곳에 넓게 퍼지며 빠르게 자라는 이 혈액암에서 특히 그렇다.

왜 그럴까. 답은 암세포가 아니었다. 한국 연구진이 찾아낸 범인은, 암세포가 스스로 만들어 혈액 속에 풀어놓은 가짜 미끼였다.

이 병의 정식 이름은 미만성 거대 B세포림프종이다. 우리 몸의 면역을 담당하는 림프구가 암으로 변한 것으로, 혈액암 중 가장 흔한 유형이다. 진행이 빨라 공격적인 암으로 분류되지만, 적절히 치료하면 완치를 기대할 수 있다.

표준 치료제는 리툭시맙. 암세포 표면의 CD20이라는 표식을 알아보고 달라붙어, 몸속 면역세포가 암을 공격하도록 이끄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왜 절반 가까이 약발이 안 먹혔을까

문제는 이 치료를 받은 환자의 40~50%에서 약이 듣지 않는 내성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간 리툭시맙이 알아보는 이 CD20 표식이 암세포에서 사라지는 현상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돼 왔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내성의 나머지 원인을 찾는 연구가 계속돼 왔다.

삼성서울병원은 혈액종양내과 김석진 교수 연구팀이 리툭시맙의 효과를 떨어뜨리는 또 다른 경로를 찾아냈다고 23일 밝혔다.

범인은 암세포가 아니라, 암세포가 만든 가짜였다

그 정체는 종양세포가 분비하는 'CD20 양성 세포외소포체'라는 작은 입자였다. 암세포가 자신을 복제하듯 떼어내 혈액 속으로 내보내는 이 소포체는 암세포와 똑같이 표면에 CD20 표식을 달고 있다. 리툭시맙 입장에서는 진짜 암세포와 구분이 되지 않는 셈이다.

원래 세포외소포체는 세포들이 서로 신호나 물질을 주고받기 위해 스스로 떼어내 내보내는 미세한 입자로, 정상적인 몸속에서도 늘 만들어지고 오간다.

연구팀은 이 소포체의 정체를 좀 더 들여다봤다. 항체를 먼저 붙잡아 정작 종양에는 닿지 못하게 만드는 '항원 미끼'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실제로 세포의 움직임을 입체 영상으로 실시간 볼 수 있는 4차원 광학현미경으로 관찰하자, 리툭시맙은 암세포보다 이 소포체에 먼저 달라붙었다. 그만큼 정작 암을 향해 결합하는 항체의 양은 줄었다.

세포실험 결과는 더 나빴다. 이 소포체는 림프종 세포의 증식을 도왔고, 리툭시맙의 항암 효과와 면역세포의 공격력까지 함께 떨어뜨렸다. 약효를 방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종양이 살아남기 좋은 환경까지 만들어준 셈이다.

피 한 방울로 예후 미리 읽을 수 있을까

연구팀은 새로 진단받은 환자들의 혈청에서 이 소포체 수치를 쟀다. 환자 26명을 먼저 살펴본 뒤, 별도의 환자 90명으로 다시 검증했다. 결과는 같았다. 치료 시작 전 소포체 수치가 높았던 환자일수록 생존율이 뚜렷하게 낮았다. 병의 진행 정도를 나타내는 국제예후지수를 반영해 다시 분석해도 마찬가지였다. 이 지수와 상관없이, 소포체 수치 자체가 의미 있는 예측 지표였다는 뜻이다. 다만 소포체 수치가 높다고 치료가 무조건 실패하는 건 아니다. 치료 효과가 떨어지고 예후가 나쁠 가능성이 크다는 상관관계를 보여줄 뿐이다.

이번 연구는 아직 초기 단계다. 국내 한 병원의 환자만을 대상으로 했다는 한계가 있다. 임상에 실제로 쓰려면 더 많은 환자를 대상으로 한 후속 검증이 필요하다.

(왼쪽부터) 김석진 삼성서울병원은 혈액종양내과 교수, 박본 삼성융합의과학원 박사과정(제1저자), 유경주 삼성융합의과학원 연구원 사진=삼성서울병원

연구팀은 종양세포가 만든 이 소포체가 치료 결과까지 좌우한다고 보고 있다. 김석진 교수는 "혈액 속 세포외소포체가 치료 항체와 결합해 종양세포에 대한 항종양 효과를 떨어뜨리는 새로운 내성 기전을 제시한 연구"라고 설명했다. 이어 "치료 전 혈액검사만으로 리툭시맙 반응과 예후를 예측할 수 있는 바이오마커 개발 가능성을 제시하고, 향후 항체 치료의 효과를 높이기 위한 새로운 치료 전략과 정밀의료 발전에 중요한 기반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앞으로 치료 시작 전 간단한 채혈만으로 내성 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길이 열릴 수 있다. 리툭시맙 효과가 낮을 것으로 예상되는 환자는 처음부터 다른 치료 전략을 고려할 수 있다. 환자 개개인에 맞춘 치료, 정밀의료가 한 걸음 더 가까워지는 셈이다. 이번 연구는 그 가능성을 보여주는 첫 단서다.

이번 연구 결과는 혈액암 분야의 국제학술지 《Blood Cancer Journal》에 실렸다. 연구에는 박본 삼성융합의과학원 박사과정(제1저자), 유경주 삼성융합의과학원 연구원, 최민규 서울대 의과학원 연구원, 윤상은·김원석·김석진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교신저자)가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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