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폐경을 전후해 여성호르몬이 크게 변하면서 혈액 속 여러 단백질도 달라지고, 이런 변화가 뇌를 비롯한 몸의 노화와 훗날 기억력 저하·알츠하이머병 위험과 연결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해외에서 나왔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샌프란시스코(UCSF)와 UC샌타바버라(UCSB) 등의 공동 연구팀은 폐경 전후 여성의 혈액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살펴보고, 이런 변화가 노년기 뇌 건강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분석했다. 연구 결과는 지난 22일(현지시간) 국제학술지 《네이처 메디신(Nature Medicine)》에 발표됐다. 연구진은 폐경이 단순히 생식 기능이 끝나는 데 그치지 않고 몸과 뇌의 노화 과정에 변화가 나타나는 중요한 시기일 가능성에 주목했다.
폐경 시작, 호르몬 바뀌고 혈액도 달라져
연구진은 먼저 43~58세 여성 80명을 폐경 전 30명, 폐경으로 넘어가는 시기인 ‘폐경 이행기’ 26명, 폐경 후 24명으로 나눠 뇌·신경계와 관련된 혈액 단백질 118개를 분석했다. 같은 연령대 남성 36명도 비교했다.
그 결과 폐경 후 여성에게서 16개 단백질이 폐경 전보다 증가했다. 여기에는 몸의 염증과 면역에 관여하는 단백질, 뇌 신경세포끼리 정보를 주고받는 데 관여하는 단백질, 에너지 사용과 관련된 단백질 등이 포함됐다. 알츠하이머병과 관련된 BACE1과 p-tau231도 증가했다.
연구진은 이들 단백질의 변화를 종합해 ‘폐경 단백질체 점수’를 만들었다. 혈액 속 단백질이 폐경 후 여성에게 나타나는 모습과 얼마나 비슷한지를 보여주는 수치다. 이 점수는 폐경 전보다 폐경 이행기에 높았고 폐경 후에는 더 높아졌다.
단순히 나이가 들어 나타난 변화로 보기도 어려웠다. 나이와 폐경 여부를 함께 고려하자 나이와 단백질 변화의 관계는 뚜렷하지 않았다.
여성호르몬 줄고 난포자극호르몬 늘수록 변화 뚜렷
연구진은 그 원인으로 호르몬 변화에 주목했다. 폐경이 가까워지면 난소 기능이 떨어지면서 대표적인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라디올은 감소한다. 반대로 뇌에서 난소에 난자를 자라게 하라고 신호를 보내는 난포자극호르몬(FSH)은 증가한다.
분석 결과 에스트라디올이 적을수록 폐경 관련 단백질 변화가 컸고, 난포자극호르몬이 많을수록 변화가 두드러졌다. 여성호르몬 감소는 염증에 관여하는 단백질과, 난포자극호르몬 증가는 뇌 신경세포의 활동이나 알츠하이머병과 관련된 일부 단백질 변화와 연결됐다.
즉 ‘폐경으로 호르몬이 변한다→혈액 속 염증·뇌 기능 관련 단백질이 달라진다’는 흐름이 관찰됐다고 봤다.
같은 나이에도 폐경 후 뇌·장기 더 '늙은 신호'
연구진은 영국 바이오뱅크에 참여한 45~60세 여성 2814명을 대상으로 결과를 다시 확인했다. 혈액 단백질 2923개를 조사한 결과 44%인 1300개가 폐경 단계에 따라 차이를 보였다.
이어 혈액 단백질을 이용해 장기와 세포의 ‘생물학적 나이’, 즉 실제 나이와 별개로 몸이 얼마나 늙었는지를 추정했다. 폐경 후 여성은 같은 나이의 폐경 전·이행기 여성보다 조사한 13개 장기 중 11개, 38개 세포 종류 중 36개에서 더 나이 든 신호가 나타났다.
특히 동맥과 장뿐 아니라 뇌에서도 노화 신호가 두드러졌다. 폐경에 따른 변화가 생식기관에 그치지 않고 뇌를 포함한 몸 전체의 노화와 관련될 가능성을 보여주는 결과다.
수십 년 뒤 기억력 저하⋯알츠하이머병 위험 15% 높아
연구진은 마지막으로 평균 연령 60.7~72.1세인 여성 총 1만1925명이 참여한 4개 연구 자료를 분석해 이런 변화가 노년기 뇌 건강과 연결되는지 살펴봤다.
미국 여성 673명을 평균 약 5년 추적한 결과, 폐경 관련 단백질 변화가 큰 여성일수록 기억력과 사고력 등 인지기능이 더 빠르게 떨어졌다. 다른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타났다.
가장 규모가 큰 영국 바이오뱅크에서는 여성 1만1059명을 평균 15.7년 추적했다. 폐경 관련 단백질 변화가 큰 여성은 알츠하이머병에 따른 치매 발생 위험이 15% 높았다.
다만 연구진은 폐경이 치매를 직접 일으킨다는 뜻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모든 여성이 폐경을 겪지만 대부분 치매에 걸리지는 않는다. 이번 연구 역시 폐경과 알츠하이머병의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입증한 것은 아니다.
연구진은 폐경기에 나타나는 호르몬과 혈액 단백질의 변화가 훗날 뇌 건강을 보여주는 신호가 될 가능성이 있으며, 폐경기가 여성의 뇌 노화 위험을 일찍 발견하고 관리할 수 있는 중요한 시기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