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구들과 저녁 식사에서 발효 황새치 회를 한입 먹은 뒤 갑자기 물조차 삼킬 수 없게 된 20대 여성이 보튤리늄 중독 진단을 받고 중환자실 치료를 받은 사연이 전해졌다.
미국 매체 뉴욕포스트, NBC 계열 지역 방송사 KPNX 등에 따르면 애리조나주에 사는 트리니티 피터슨-메이스(24)는 지난달 친구들과 식사를 한 뒤 몸 상태가 빠르게 나빠졌다. 24시간 동안 점점 상태가 악화된 그는 나중에 물도 전혀 마실 수 없을 지경까지 이르렀다. 급히 응급실을 찾아 검사를 받은 결과, 원인은 친구들과 함께 먹은 발효 황새치 회로 인한 보툴리눔 중독(botulism)이었다.
황새치는 국내에서는 주로 횟집, 참치 전문점, 오마카세, 냉동 횟감 시장을 통해 소비되는 경우가 많지만 발효형태로 제공되는 경우는 드물다. 황새치 뱃살은 지방 함량이 높아 참치 뱃살과 식감이 비슷해 횟감으로 널리 사용된다. 사연에서 보툴리눔 중독을 일으킨 원인은 황새치 자체가 아니라 발효 과정에서 생성된 보툴리눔 독소다. 발효 황새치는 한국에서는 낯선 음식이지만 알래스카 원주민 지역이나 북유럽, 일부 태평양 연안 지역에서는 오래 전부터 자주 섭취돼왔다.
입원 후 피터슨-메이스의 상태는 더 악화됐다. 침도 삼키지 못했고 얼굴 근육에서도 힘이 빠졌다. 진단 후 그는 다른 병원 신경 전문 치료기관으로 옮겨졌다. 독소가 몸 전체로 퍼지면서 마비가 진행됐고 인공호흡기 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상태가 나빠졌다.
피터슨-메이스는 생후 2개월 때 희귀 소아암, 11세 때 골암을 앓았던 암 생존자로 알려졌다. 다만 구체적인 암 종류는 공개되지 않았다. 그는 항독소 치료를 받은 뒤 현재 회복 중이다. 보툴리눔 독소가 신경 기능을 차단하기 때문에 근육 기능이 돌아오려면 신경 연결이 다시 회복되는 시간이 필요하다.
문제가 된 발효 생선을 함께 먹은 친구 5명 가운데 2명도 보툴리눔 중독 진단을 받았다. 이들은 모두 퇴원했지만 피터슨-메이스는 퇴원 후에도 수개월 동안 회복 치료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의 어머니 로렌은 치료비와 생활비 마련을 위해 고펀드미(GoFundMe) 모금 페이지를 개설했다.
오염된 음식이나 발효 식품 등을 통해 인체 유입, 신경 마비 일으키기도
보툴리눔 중독(보툴리눔독소증)은 클로스트리디움 보툴리눔(Clostridium botulinum)이 만들어내는 신경독소에 의해 발생하는 신경마비성 질환이다.
세균 자체보다 독소가 문제를 일으키며, 오염된 음식이나 발효식품, 부적절하게 보관된 통조림 등을 통해 인체에 들어올 수 있다. 보툴리눔균은 자연계에 널리 존재하지만 독소가 만들어지려면 특정 환경이 필요하다. 산소가 거의 없는 상태, 낮은 산도, 낮은 당분과 염분, 적절한 수분, 일정한 온도가 갖춰져야 독소가 생성된다.
이 독소에 감염되면 신경과 근육 사이의 신호 전달을 차단하면서 시야가 흐려지거나 두 개로 보이는 복시, 눈꺼풀 처짐, 발음 장애, 삼킴 장애, 근력 저하가 나타난다. 의식은 대부분 또렷하게 유지되지만 마비가 점차 진행하며 심하면 호흡근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미국에서는 매년 약 24건의 식품 매개 보툴리눔 중독이 발생한다고 보고된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보툴리눔독소증은 국내에서도 매우 드문 감염병이다. 2002년 법정감염병으로 지정된 이후 2003년 3건, 2004년 4건이 신고됐으며 이후에는 대부분의 연도에서 환자가 없거나 1건 정도만 발생했다. 최근에도 2020년과 2023년에 각각 1건이 보고됐다.
보툴리눔 중독이 의심되면 가능한 한 빨리 항독소를 투여해야 한다. 항독소는 이미 발생한 마비를 되돌리지는 못하지만 독소의 추가 작용을 막아 증상 악화를 줄이는 데 도움을 준다. 중증 환자는 인공호흡기 치료가 필요할 수 있으며, 신경 기능이 회복될 때까지 수주에서 수개월이 걸릴 수 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적절한 치료를 받아도 일부 환자는 사망할 수 있어, 조기 진단과 신속한 치료가 중요하다. 예방을 위해서는 통조림이나 저장식품을 충분히 가열해 섭취하고, 부풀어 오르거나 손상된 용기의 식품은 먹지 않는 것이 권고된다.
보툴리눔 중독 위험이 높은 식품
△부적절하게 가정에서 통조림으로 만든 식품
채소나 육류처럼 산도가 낮은 식품을 가정에서 통조림으로 만들면 위험이 높아진다. 저산성 식품은 압력식 통조림 공정을 사용하는 것이 권장된다.
△발효 해산물
알래스카에서는 식품 매개 보툴리눔 중독 대부분이 발효 생선이나 수산물과 관련돼 있다. 발효 과정에서 공기가 제대로 순환하지 않으면 균이 증식해 독소를 만들 수 있다.
△손상된 용기 속 식품
용기가 새거나 부풀어 오르거나 금이 갔거나 열었을 때 액체나 거품이 분출되는 식품은 폐기해야 한다.
△알루미늄 포일에 싸서 실온에 방치한 감자
1998년 미국에서 발생한 대규모 보툴리눔 중독 집단발병은 포일에 싼 채 며칠 동안 실온에 둔 구운 감자에서 시작됐다. 전문가들은 일반적인 조리만으로는 보툴리눔 포자를 제거할 수 없으며, 오랫동안 따뜻한 상태로 포장해 두면 독소 생성 환경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설명한다.
△기름에 담근 마늘
미국 조지아대학교 연구진은 실온에서 보관한 마늘-오일 혼합물이 보툴리눔 독소 생성 위험이 높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전문가들은 마늘 오일은 만들자마자 냉장 보관하고, 4.4℃ 이하에서 7일 이내에 섭취할 것을 권고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