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7월 07일 (화)

비만약 효과 오래가게 할 효소 찾았다

[바이오키워드] PapB, GLP-1 약물 지속시간 늘릴 ‘분자 매듭’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비만·당뇨병 치료제 시장을 바꾼 위고비와 오젬픽의 핵심은 ‘오래 작용하도록 설계된 호르몬 신호’다. 우리 몸에는 식사 뒤 혈당을 낮추고 포만감을 높이는 GLP-1(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이라는 호르몬이 있다. 하지만 자연 상태의 GLP-1은 체내에서 금세 분해된다. 약으로 쓰려면 몸속에서 더 오래 남아 작용하도록 구조를 바꿔야 한다. 이들 약물의 주성분인 세마글루타이드가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진 GLP-1 계열 약물이다.

최근 미국 연구진이 GLP-1 계열 펩타이드 약물의 지속시간을 늘리는 데 활용될 수 있는 새로운 효소 기반 설계법을 제시했다. 펩타이드 약물의 양 끝을 이어 ‘고리’처럼 묶으면 몸속 단백질 분해효소의 공격을 피하고, 약물이 더 오래 작용하도록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유타대 화학과 바헤 반다리안 교수 연구팀은 펩타이드 치료제를 고리형 구조로 바꿀 수 있는 효소 ‘PapB’를 확인하고, 이를 GLP-1 계열 유사 펩타이드에 적용한 연구 결과를 미국화학회(ACS)가 발행하는 생명·바이오 관련 국제학술지 ≪ACS Bio & Med Chem Au≫ 최근호에 발표했다.

이번 연구의 핵심은 ‘거대고리화(macrocyclization)’다. 펩타이드는 아미노산이 사슬처럼 이어진 물질이다. 단백질보다 작지만 생체 신호를 정교하게 조절할 수 있어 약물로 활용 가치가 크다. 문제는 사슬 형태의 펩타이드가 체내에서 쉽게 잘린다는 점이다. 단백질을 분해하는 효소인 프로테아제(protease)가 펩타이드를 아미노산 단위로 빠르게 쪼갤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팀이 주목한 PapB는 이런 펩타이드 사슬의 양 끝을 연결해 단단한 고리 구조로 바꾸는 효소다. 이 과정에서 황과 탄소가 연결된 ‘티오에테르(thioether)’ 결합이 만들어진다. 사슬 끝이 묶이면 단백질 분해효소가 펩타이드를 잘라내기 어려워진다. 결과적으로 약물이 체내에서 더 오래 버틸 가능성이 생긴다.

약물이 빨리 분해되는 문제, ‘고리 구조’로 푼다

GLP-1 계열 약물은 비만·당뇨병 치료제 시장에서 가장 주목받는 분야다. 세마글루타이드는 GLP-1 수용체 작용제다. GLP-1과 비슷하게 작용해 인슐린 분비를 돕고, 위 배출 속도를 늦추며, 뇌의 식욕 조절 신호에 관여해 포만감을 높인다. 다만 펩타이드 기반 약물인 만큼 체내 안정성, 지속시간, 표적 작용을 어떻게 조절하느냐가 차세대 약물 개발의 중요한 과제로 꼽힌다.

유타대 연구팀은 PapB를 이용해 세마글루타이드, 티르제파타이드, 레타트루타이드 계열을 본뜬 펩타이드 유사체 3종을 시험했다. 티르제파타이드는 GIP·GLP-1 이중 작용제, 레타트루타이드는 GIP·GLP-1·글루카곤 삼중 작용제로 개발되는 약물 계열이다. 연구 결과 PapB는 각각의 선형 펩타이드를 고리형 펩타이드로 전환했다. 특히 현재 인크레틴(incretin) 계열 약물에 쓰이는 비표준 아미노산이 포함된 경우에도 작동했다. 인크레틴은 식사 후 장에서 분비돼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는 호르몬 계열을 말한다. GLP-1도 대표적인 인크레틴이다.

이 발견이 의미 있는 이유는 제조 방식에도 있다. 기존에는 펩타이드를 고리형으로 만들려면 복잡한 화학 합성 공정이 필요했다. 약물 개발 후반부에 구조를 바꾸는 일도 까다로웠다. 반면 PapB는 효소가 특정 물질을 알아보도록 돕는 일종의 안내 표지 없이도 작동했다. 연구팀은 PapB가 이런 추가적인 보조 서열 조정 없이도 GLP-1 계열 유사 펩타이드의 끝을 정밀하게 연결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연구팀은 이 방식을 “작은 분자 기계를 이용해 펩타이드를 매우 통제된 방식으로 바꾸는 효소적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함께 세테라 테라퓨틱스(Sethera Therapeutics)를 공동 창업해 해당 기술의 실제 약물 개발 적용을 추진하고 있다. 유타대 기술이전실은 이들의 다중거대고리 펩타이드 발굴 플랫폼을 인정해 2025년 ‘올해의 창업자’로 선정했다.

다만 이번 연구가 곧바로 ‘더 강한 비만약’의 탄생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 연구는 GLP-1 계열 유사 펩타이드를 대상으로 한 실험실 단계의 분자 설계 연구다. 실제 약물로 이어지려면 고리형 구조가 인체에서 얼마나 오래 유지되는지, 수용체 작용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안전성에는 문제가 없는지 등을 추가로 확인해야 한다.

그럼에도 해당 결과는 차세대 GLP-1 약물 개발의 방향을 보여준다. 지금의 GLP-1 치료제 경쟁은 단순히 체중을 얼마나 줄이느냐를 넘어 투여 간격을 얼마나 늘릴 수 있는지, 위장관 부작용을 줄일 수 있는지, 근육 감소나 대사 개선 효과를 어떻게 조절할 수 있는지로 확장되고 있다. PapB 같은 효소 도구는 기존 약물 골격을 크게 바꾸지 않으면서 안정성이나 작용 시간을 조절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다.

비만약 위고비, 마운자로 열풍 이후 GLP-1 계열 약물은 비만·당뇨병 치료를 넘어 다양한 대사질환 영역으로 연구가 확대되고 있다. 이번 결과는 그 경쟁의 다음 무대가 새로운 약물 표적을 찾는 데만 있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미 강력한 약물을 더 오래, 더 정밀하게 작동시키는 ‘분자 구조 설계’도 차세대 비만·당뇨 치료제 개발의 중요한 축으로 떠오르고 있다.

*논문출처: Leader-Independent C-Terminal Modification by a Radical S-Adenosyl-l-methionine Maturase Enables Macrocyclic GLP-1-Like Peptides. ACS Bio, 2025; 5 (6): 1007 DOI: 10.1021/acsbiomedchemau.5c0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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