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에서는 조현병(옛 정신분열증)으로 진료를 받는 사람 중 70~80%가 통원 치료를 받으며 지역사회에서 살고 있다. 평소 조현병을 잘 관리하며 지역사회에서 잘 살고 있던 50대 미국 여성이 갑자기 행동이 달라지고 말이 어눌해져 대학병원을 찾았다가, 예상 밖의 진단을 받은 사례가 학계에 보고됐다. 이 환자는 정신질환이 다시 도진 것이 아니라 전두엽에 악성 뇌종양이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 뉴욕주립대 연구팀은 조현병 재발과 비슷한 증상으로 응급실을 찾은 55세 여성 환자를 검사한 결과, 왼쪽 전두엽의 깊숙한 곳에 큰 종양이 자리잡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이 환자는 몇 년 동안 꾸준히 조현병 약물 치료를 받으며 지역사회에서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해 왔고, 직장 생활도 별 문제없이 잘 해냈다.
그러다 갑자기 어느 날부터 공공장소에서 행동을 조절하지 못하고, 평소와 달리 위축되고 불안해했다. 게다가 말이 어눌해지거나 발음이 꼬이는 증상(구음 장애)까지 나타났다. 가족들은 조현병이 다시 도진 것으로 생각했고, 서둘러 이 환자를 병원 응급실로 데려갔다.
하지만 의료진은 환각이나 망상 같은 전형적인 조현병 재발 증상이 없고, 대신 말이 어눌해지고 생각이 끊기는 등 뇌 기능 이상을 의심할 만한 신호가 보이는 점에 주목했다. 의료진은 컴퓨터 단층 촬영(CT)과 자기공명영상(MRI)을 촬영했다.
그 결과, 환자의 왼쪽 전두엽에서 지름 5cm가 넘는 큰 혹이 물주머니처럼 부풀어 오른 것을 발견했다. 이 혹은 주변 뇌를 심하게 눌러 뇌가 한쪽으로 밀릴 정도의 압박을 가하고 있었다. 이 환자에게 생긴 물주머니 같은 혹은 ‘낭성 종괴’라 하며, 이로 인해 뇌부종 증상을 보였다.
환자는 진단 직후 신경외과로 옮겨져 왼쪽 전두엽 절개술로 종양을 제거했다. 이 환자는 조직검사 결과 최종적으로 뇌종양의 일종인 교모세포종 진단을 받았다. 의료진은 수술로 뇌를 압박하던 종양을 없애고 집중적인 관리에 들어갔다.
이 연구 결과(Frontal glioblastoma masquerading as schizophrenia exacerbation)는 최근 국제 학술지 《옥스퍼드 의학사례 보고(Oxford Medical Case Reports)》에 실렸다.
뇌종양 중 교모세포종은 악성 뇌종양이다. 성장 속도가 빠르고 주변 뇌 조직을 침범하는 특징을 보인다. 전두엽은 사람의 감정 조절, 판단력, 행동 억제 기능을 맡는 곳이다. 이 부위가 손상되면 정신질환과 비슷한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정신질환을 앓은 적이 있는 사람이라도 갑자기 행동이나 성격이 달라지면 뇌 자체에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특히 말이 어눌해지거나 손발이 둔해지는 등 신경학적 변화가 함께 나타난다면 즉시 뇌 검사를 받아야 한다. 성인에게 갑자기 행동 조절이 안 되거나 말이 어눌해지는 증상이 나타나면 뇌 문제를 의심해봐야 한다. 이런 환자는 정신과·신경과·영상의학과 전문의가 함께 진료하면 오진을 막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한국의 조현병 환자는 인구의 약 1%인 50만 명 내외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실제로 병원을 방문해 진료를 받은 인원은 연간 약 21만~24만 명 수준이다. 진료를 받는 환자 중 입원 치료를 받는 사람이 20~30%, 통원 치료를 받는 사람이 70~80%다. 대다수 환자가 약물을 복용하며 지역사회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뜻이다.
특히 진단받지 못한 조현병 환자가 전체 조현병 추산 환자의 50% 이상에 이른다는 점은 큰 문제다. 조현병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거부감으로 가족들이 환자를 외부와 차단하거나, 환자 스스로 은둔형 외톨이로 지내는 경우가 매우 많다. 이들은 초기 발병 연령대인 10~20대에서 치료를 기피하다가 증상이 만성화된 40대에 처음으로 병원을 찾는 경향이 있다.
[자주 묻는 질문]
Q1. 뇌종양이 왜 조현병 재발처럼 보일 수 있나요?
A1. 전두엽은 사람이 감정을 다스리고 행동을 조절하는 ‘브레이크 역할’을 합니다. 이곳에 혹이 생겨 뇌를 누르면 감정 조절 체계가 무너져 돌발 행동이 나타나고 정신 질환이 다시 심해진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Q2. 정신질환과 뇌종양을 구분할 수 있는 단서는 무엇인가요?
A2. 정신질환은 보통 환각이나 망상이 함께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뇌종양은 이번 사례처럼 말이 어눌해지거나 생각이 끊기는 등 뇌 기능 이상을 의심할 수 있는 신호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런 변화는 정신적인 문제가 아니라 뇌가 직접 손상됐다는 뜻일 가능성이 큽니다.
Q3. 조기 발견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A3. 핵심은 평소와 다른 변화입니다. 약물로 잘 조절되던 사람이 갑자기 성격이 달라지거나 판단력이 떨어지면, 정신과 진료만으로 끝내지 말고 CT나 MRI 같은 뇌 검사를 통해 혹이나 다른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는 게 좋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