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횡단보도 신호가 파란불로 바뀔 때, 안심하고 건널 수 있습니까?”
얼핏 보면 교통 안전 캠페인 같지만, 이는 일본 후생노동성이 노인의 ‘운동 기능’을 평가하는 핵심 질문이다. '기본 체크리스트'(基本チェックリスト) 총 25문항 중 6~10번, 5개 문항이 이 영역에 해당한다.
일본은 왜 횡단보도를 예로 들었을까? 녹색 신호가 켜지는 시간은 보통 20~30초. 폭 10m 횡단보도를 건너려면 초속 0.5m 이상 속도가 필요하다. 그런데 노쇠(프레일티, frailty)가 진행되면 보행속도가 0.8m/s 이하로 떨어진다. 신호가 빨간불로 바뀌기 전에 못 건널 수도 있는 것이다.
“보행 속도로 생존율을 예측한다”는 2011년 미국의사협회지(JAMA) 연구는 유명하다. 65세 이상 3만4000명을 분석한 결과, 보행속도 0.4m/s 미만인 85세 남성의 5년 생존 가능성은 25%였다. 하지만 1.4m/s 이상이면 91%로 크게 치솟았다.
일본은 이 연구를 20년 전부터 전국 단위로 적용해왔다. 프레일티 선별 검사의 핵심 지표가 바로 ‘운동 기능’이었던 것이다.
【문항: 운동 기능】
계단을 손잡이나 벽을 짚지 않고 올라갈 수 있습니까?(예=0점, 아니오=1점)
의자에서 아무것도 붙잡지 않고 일어날 수 있습니까? (예=0점, 아니오=1점)
15분 정도 계속 걸을 수 있습니까? (예=0점, 아니오=1점)
지난 1년간 넘어진 적이 있습니까? (예=1점, 아니오=0점)
넘어질까 봐 불안해서 외출을 삼가고 있습니까? (예=1점, 아니오=0점)
이 5개 질문에 대한 답변 점수를 합산해서 3점 이상이면 ‘운동 기능 저하’ 단계로 본다. 일본 후생노동성 기준으로는 ‘즉시 개입 필요’에 해당한다.
츠쿠바대 야마다 교수 “15분 운동으로 전 항목 개선”
2025년 3월, 일본 NHK 「사용설명서쇼(トリセツショー)」는 프레일 특집을 방송했다. 츠쿠바대 야마다 미노루(山田実) 교수가 개발한 15분 ‘엑서사이즈(exercise, 운동)’가 소개됐다.
프로그램 핵심은 간단했다. 발 디딤 운동(1초 2보 페이스, 팔 크게 흔들기), 의자에서 앉았다 일어서기 (허벅지 근력), 한 발로 서기 (균형감각)가 다였다.
여기엔 또 고치현 니요도가와초(仁淀川町)의 92세 카타오카 켄이치로(片岡賢一郎)씨 사례가 나왔다. 3개월간 주 2회, 1일 3시간 운동 프로그램 참여 후 보행 속도가 개선됐고, 전체 테스트 항목 능력이 향상됐다.
160명이 참가한 이 프로그램의 출석률은 60%. “97세 최고령 참가자가 있으니 나도 할 수 있다”며 동료 효과(peer effect)가 작동했다. 2개월 후 참가자 전원의 운동 기능 항목 점수가 올랐다. 야마다 교수는 “매일 15분이면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은 ‘악력계조차 없는’ 보건소가 태반
우리는 어떨까? 대한노인병학회가 권장하는 프레일티 진단 기준(CHS Index)에는 ‘보행속도 측정’과 ‘악력 측정’이 포함된다. 하지만 전국 보건소 중 악력계를 갖춘 곳은 절반도 안 된다.
2018년 경희대병원 원장원 교수(가정의학과) 연구팀이 개발한 한국형 근감소증 기준은 남성 6.4kg/m², 여성 5.2kg/m²였다. 아시아 기준(남 7.0, 여 5.7)보다 더 엄격하다. 그런데 정작 이 기준으로 전국 노인을 측정하는 시스템은 없다.
그렇다면, 보행속도는? 일부 대학병원 노인병 클리닉에서만 4m 보행 테스트를 한다. 동네 보건소에서 “혹시 보행속도 재 주실 수 있나요?”라고 물으면 “그런 건 안 합니다”라는 답이 돌아온다.
결국 한국의 60, 70대는 ‘내 근력이 정상인가, 위험한가’를 알 방법이 없다. 자신이 프레일티 단계에 들어섰는지조차 모른다.
‘나는 괜찮을까?’...계단과 의자로 30초 체크
다시 일본의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계단을 손잡이 없이 올라갈 수 있습니까?” “의자에서 아무것도 붙잡지 않고 일어날 수 있습니까?”
만약 요즘 계단이 버겁고, 의자에서 일어날 때 팔걸이를 짚게 된다면? 그것이 바로 근력 저하의 신호다. 일본 1200만 명이 이 5개 질문으로 자신의 운동 기능을 확인했다. 3개 이상 ‘아니오’가 나오면 즉시 운동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그리고 츠쿠바대 연구처럼 2개월 만에 개선됐다.
당신도 지금 의자에서 일어나보라. 팔을 쓰지 않고 일어날 수 있는가? 10번 반복할 수 있는가?
만약 힘들다면, 이제부터라도 ‘주의’하며 근력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 일본이 20년에 걸쳐 증명했듯, 운동 기능은 가장 빨리 떨어지지만, 가장 빨리 회복되는 영역이다.
다음 [Vital Again] Pre-시리즈 ③에선 일본 ‘기본 체크리스트’(基本チェックリスト)의 세 번째 영역 '영양 상태'를 다룬다. “6개월간 2~3kg 빠지셨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