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 시절 한번 쯤 감염되는 바이러스에 'BK 바이러스'가 있다. 이 바이러스에 40대에 감염된 남성이 수년 후 방광함으로 진단된 사례가 전해졌다.
BK 바이러스는 폴리오마바이러스(polyomavirus) 계열에 속하는 DNA 바이러스다. 대부분 5~9세 사이에 처음 감염되고, 이후 신장과 요로 상피조직에 평생 잠복한다. 감염 직후 아이들은 대개 감기 같은 가벼운 증상을 겪거나 아예 증상이 없다. 잠복된 상태에서 특별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지만, 면역이 약해지는 순간 ‘깨어나’ 증상을 유발할 수 있다.
영국 일간 더선 보도에 따르면 사우샘프턴에 사는 팀 태벤더(51)는 2015년 신장이식 이후 BK 바이러스에 감염된 뒤, “계속 감기 몸살을 앓는 듯한 이상한 피로감”을 느꼈다고 회상했다. BK 바이러스 보통 어린 시절 감염되지만 팀은 신장이식 후 감염된 것이었다.
그는 면역억제제를 줄이지 않으면 바이러스를 억제할 수 없었고, 약을 줄이면 이식 신장이 거부 반응을 일으킬 수 있어' 의학적 외줄타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의 면역계가 바이러스를 이겨내는 데 4년이 걸렸다.
하지만 2021년, 소변에 피가 섞여 나오는 혈뇨를 발견했다. 병원 진찰 결과 방광암 진단이 내려졌고, 의료진은 그의 암이 신장이식 후 걸린 BK 바이러스 감염과 연관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신장이식 환자들은 BK 바이러스 재활성화 위험이 높으며, 방광암 발생률이 일반인보다 약 3배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팀은 13시간에 걸친 방광 절제술을 받았고, 현재는 회복 중이다. 그는 “처음에는 몸도 마음도 힘들었지만, 이제 암이 없어졌다는 사실에 감사하다”며 “BK 바이러스를 통제하는 방법이 개발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아무 증상 없는 BK 바이러스, 성인 80~90%는 이미 감염...신장 이식 환자 특히 조심
의학 논문과 감염병 교과서에 따르면 성인의 80~90%는 이미 BK 바이러스에 노출된 상태다. 대부분은 유아기에서 초등학생 시기 사이에 자연스럽게 처음 감염돼 조용하게 지나가는 특징이 있다. 실제로 초기 감염자의 거의 대부분은 아무 증상이 없거나, 있어도 감기처럼 미미한 몸살 수준에 그친다.
수두처럼 피부 발진이 나타나거나, 고열 통증처럼 기억할 만한 특징적인 증상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감염 사실을 인지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이 BK 바이러스에 이미 감염된 채로 성장하지만, 평생 그 사실을 모른 채 살아가기도 한다.
하지만 BK 바이러스가 아예 침묵 상태인 것은 아니다. 체내에 잠복해 있다가 면역이 약해지는 시점에 다시 활성화되기도 한다. 신장이식 환자처럼 면역억제제를 꾸준히 사용해야 하는 사람이나 고령·당뇨·HIV 감염 등 면역기능이 떨어져 있는 사람에게서 BK 바이러스는 신장과 요로 상피를 직접 손상시키며 혈뇨, 요로 감염, 이식 신장 기능 저하 등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 이식 신장 기능을 빠르게 망가뜨리는 ‘BK 바이러스 신장병증’은 이식 환자에게 중요한 합병증 중 하나다.
위 사례처럼 BK 바이러스로 인해 방광암이 나타날 수 있다는 연관성은 최근 학술지 ⟪Science Advances⟫에 발표된 연구에서도 밝혀졌다. 해당 연구진은 인간 요로 상피세포를 BK 바이러스에 노출시키고 이 과정에서 세포의 항바이러스 방어 반응이 작동하면서 DNA 손상이 발생하는 것을 확인했다.
바이러스가 직접 유전자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바이러스를 제거하려는 인체 효소가 정상 세포 DNA까지 함께 손상시키는 ‘친족 사격(friendly fire)’ 같은 현상 때문으로 분석됐다. 특히 감염되지 않은 주변 세포에서도 DNA 변형이 발견돼, 바이러스가 사라진 뒤에도 돌연변이가 오래 남아 시간이 지나 암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신장이식 환자에서 방광암 위험이 일반인보다 약 3배 높은 이유도 이러한 메커니즘으로 설명된다. 바이러스는 암 조직에서 흔적이 거의 발견되지 않지만, 과거에 남긴 DNA 손상이 축적돼 수년 뒤 방광암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BK 바이러스가 면역저하 환자에서 신장 손상과 암 위험 증가라는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정기적인 모니터링과 조기 대응이 중요한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