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세포 잡는 암세포?… ‘이이제이’ 항암제 곧 구현

'암 백신' 개발도 가능... 유전자공학으로 암세포에 '귀소·항암본능' 부여

치료용 줄기세포(초록색)가 종양세포(붉은색)을 잡아먹는 모습. 미국 하버드의대 부속 브리검여성병원 신경외과 칼리드 샤 교수 연구팀의 2020년 연구 결과. [자료=유튜브/CSTI -Shah lab]
‘이이제이(오랑캐로서 오랑캐를 제압한다)’라는 사자성어처럼 암세포를 이용해 암세포를 죽이는 신개념 항암요법의 가능성이 제기됐다. 과거라면 꿈만 같던 얘기지만, 생명공학 기술의 발달로 조만간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미국 하버드의대 연구팀이 유전자공학 기술로 일부 암세포의 유전자를 조작해 △체내 다른 암세포를 찾아가는 ‘귀소 본능'(표적·추적 치료)은 물론 △다른 암세포를 만나면 ‘항암 본능’의 특성을 갖도록 구현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암세포가 고대 그리스 신화의 ‘트로이목마’와 같은 역할을 하게 만든 셈이다.

4일(현지시간) 미국 하버드대와 하버드의대 학보 등에 따르면, 최근 미국 하버드의대 부속 브리검여성병원 신경외과 칼리드 샤 교수 연구팀은 이와 같은 원리를 활용해 향후 신개념 항암제와 암 백신을 개발할 수 있다는 내용의 연구 결과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중개의학’에 공개했다.

해당 연구는 암세포의 기본적인 성질을 반대로 이용할 수 있다면 강력한 항암제로 만들 수 있다는 단순한 생각에서 시작했다. 암세포는 정상세포를 공격하면서도 스스로는 끊임없이 증식하기 때문이다.

이는 현대 유전공학 기술로 충분히 구현할 수 있었다. 연구진은 살아있는 종양세포에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기술을 적용해 다른 암세포를 만났을 때 면역반응을 촉발하도록 유전자를 조작했다.

구체적으로는 종양세포의 유전자 내에 면역유도물질인 ‘인터페론 베타(IFNβ)’와 ‘과립구 대식세포 콜로니 자극 인자(GM-CSF)’의 분비를 촉진시켰다. 이들 물질이 분비하면 체내에 생긴 종양이나 염증, 이물질을 잡아먹는 ‘대식세포’ 등의 자연면역 반응이 유도된다.

유전자공학 기술로 킬러 암세포로 교정된 종양세포(ThTC)가 교정 내용에 따라 실제 실험용 쥐에서 면역반응을 유도해 뇌종양 성장이 억제된 정도. 킬러 암세포의 효과는 그래프 E와 J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나머지는 대조군으로 면역유도물질인 ‘인터페론 베타(IFNβ)’와 ‘과립구 대식세포 콜로니 자극 인자(GM-CSF)’를 분비하도록 교정된 경우일수록 뇌종양 억제 효과를 확인할 수 있지만, 유전자공학 기술로 교정된 ‘킬러 암세포(ThTC)’에는 미치지 못한다. [자료=사이언스중재의학]
연구진은 또한 암세포가 ‘귀소본능’을 띠도록 만들었다. 기존 연구가 일부 종양세포에서 확인한 유전체적 특성(암 줄기세포)을 활용한 유전공학 기술도 적용한 것이다. 이번 연구에서 사용된 것은 악성 뇌암과 신경교종(뇌 또는 척수를 구성하는 세포에서 발생하는 종양·암)을 유발하는 ‘교모세포종’이다.

연구진은 교모세포종과 같은 일부 종양세포의 유전자를 조작한 뒤 다시 신체에 주입할 경우, 신체 안에서 종양이 처음 발생했던 위치(교모세포종의 경우 뇌나 척수 등)를 스스로 찾아서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에 착안했다. 면역반응을 일으키는 인자를 안고 암세포가 살고 있는 부위로 돌아가는 것이다. 암세포 스스로가 알아서 표적을 찾아가는 ‘킬러 암세포’로 재탄생한 셈이다.

실험쥐를 이용한 동물실험 결과 ‘킬러 암세포’는 성공적으로 작용했다. 종료 시점까지 킬러 암세포의 활약으로 뇌종양이 사라진 실험쥐는 생존했으며 연구진은 실험쥐의 체내에서 킬러 암세포가 다른 암세포를 제거하는 것은 물론 T세포에 의한 장기 면역까지 유도한 결과를 확인했다.

칼리드 샤 교수는 하버드의대 학보에서 “이번 연구 결과는 자연면역의 원리를 활용해 암세포를 효율적인 암 치료제(항암제)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면서 “향후 더욱 다양한 종류의 암세포에 해당 치료기법을 적용하고 임상시험을 거쳐야 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인류 최초의 ‘암 백신’을 개발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현재 샤 교수는 오는 2025년을 목표로 해당 연구 내용에 대한 6개월간의 임상시험 1상을 준비하고 있다.

2022년 5월 유튜브 강연 ‘테드’에서 해당 연구 내용을 강의 중인 미국 하버드의대 칼리드 샤 교수. [사진=유튜브/TEDx Talks]

 

 

    최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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