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술적 창의성이 높은 사람은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등 일부 정신건강 문제를 겪을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반면 과학적 창의성이 높은 사람에게서는 이러한 경향이 나타나지 않았으며, 일부 정신건강 문제는 오히려 적은 것으로 확인됐다.
글로벌 의학전문매체 메디컬익스프레스는 10월 31일(현지시간) 독일 막스플랑크 경험미학연구소와 스웨덴 카롤린스카연구소 등이 참여한 국제 공동연구팀이 스웨덴 쌍둥이 1만4658명의 자료를 분석해 이 같은 결과를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연구 결과는 지난달 8일 국제학술지 《분자정신의학(Molecular Psychiatry)》에 발표됐다.
고흐·헤밍웨이와 정신건강의 연관성
그 동안 예술적 창의성과 정신질환의 관계는 학계의 관심을 꾸준히 받아왔다. 화가 빈센트 반 고흐나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 등 뛰어난 예술가들이 정신건강 문제를 경험한 사례가 알려지면서 두 특성 사이에 특별한 관계가 있을 것이라는 인식도 형성됐다. 기존 연구에서는 예술 활동이 정신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도 나와 명확한 결론을 내리기 어려웠다.
연구팀은 이를 확인하기 위해 2012~2013년과 2022~2023년에 실시한 스웨덴 쌍둥이 설문조사 자료를 분석했다. 전체 참여자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6419명은 두 차례 조사에 모두 참여했다.
연구진은 음악·문학·무용·연극·미술 등 예술 분야와 과학·발명 분야의 성취를 구분했다. 또 직업의 창의성 수준과 새로운 경험에 대한 개방성도 평가했다. 정신건강 상태는 설문조사와 국가 환자등록자료에 기록된 우울증, 불안장애, 조현병, 양극성장애 등의 진단 정보를 활용했다.
예술적 성취 높을수록 일부 정신건강 문제 연관
분석 결과를 보면 예술적 성취가 높은 사람은 우울 증상과 정신증 유사 경험이 더 많이 나타나는 경향을 보였다. 정신증 유사 경험은 실제 정신질환으로 진단받지 않았더라도 환청이나 비현실적인 생각 등 정신증과 비슷한 경험을 하는 것을 말한다.
예술 관련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 역시 우울 증상과 정신증 유사 경험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새로운 경험과 생각을 받아들이려는 성격 특성인 '개방성'이 높은 사람에게서는 정신증 유사 경험과의 연관성이 확인됐다.
장기간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서도 비슷한 경향이 나타났다. 첫 조사에서 예술적 성취가 높았던 사람은 이후 조현병, 불안장애, 스트레스 관련 장애를 진단받을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반면 과학적 창의성은 다른 양상을 보였다. 과학 분야의 성취나 예술 이외 분야의 창의적인 직업은 정신건강 문제와 뚜렷한 연관성이 없거나 오히려 정신건강 문제가 적은 방향으로 연관됐다.
연구진은 과학 분야에서 요구되는 높은 인지 능력이나 정신적 회복력 등이 이러한 차이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다만 이는 가능한 설명일 뿐, 이번 연구에서 직접 입증된 것은 아니다.
우울 증상, 창의적 성향에 영향 줄 가능성도
이번 연구에서 주목할 부분은 창의성과 정신건강의 관계가 한쪽 방향으로만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첫 조사에서 우울 증상이 많았던 사람은 약 10년 뒤 새로운 경험에 대한 개방성이 더 높은 경향을 보였다. 이러한 연관성은 유전적 특성이 거의 동일한 일란성 쌍둥이를 비교한 분석에서도 유지됐다.
연구진은 우울 증상을 경험한 사람이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깊이 돌아보거나 예술 활동을 통해 심리적 어려움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개방성이 높아질 가능성을 제시했다.
다만 우울증 자체가 창의성을 높인다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 실제로 주요우울장애 진단과 개방성 사이의 연관성은 쌍둥이 비교 분석에서 유의하지 않았다. 심각한 우울증은 오히려 인지기능과 호기심, 동기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연구진은 창의성과 정신건강 문제 사이의 연관성이 나타나는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일란성 쌍둥이 비교와 유전정보 분석도 진행했다.
그 결과 예술적 창의성과 정신건강 문제 사이에서 관찰된 연관성 대부분은 일란성 쌍둥이 비교에서 약해지거나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게 나타났다. 이는 두 특성에 공통으로 영향을 미치는 유전적 요인이나 성장 환경 등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의미다.
유전정보 분석에서도 이러한 가능성이 뒷받침됐다. 조현병과 양극성장애, 스트레스 관련 장애에 대한 유전적 소인이 높은 사람은 예술적 성취도 높은 경향을 보였다. 반면 직업적 창의성과 주요우울장애, 불안장애, 스트레스 관련 장애 사이에서는 유전적으로 반대 방향의 연관성이 관찰됐다.
연구진은 이번 결과가 창의성과 정신건강의 관계를 단순하게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예술적 창의성과 과학적 창의성은 서로 다른 특성을 지니며, 정신건강과의 관계에서도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해당 연구가 관찰연구라 인과관계를 확정할 수 없는 한계를 드러냈다는 점도 언급했다. 일란성 쌍둥이 비교에서도 개인별 환경적 요인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고 조현병과 양극성장애 진단을 받은 참여자도 상대적으로 적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