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폐경기 에스트로겐 단독 호르몬요법을 받은 여성은 그렇지 않은 여성에 비해 알츠하이머병과 관련된 뇌 병리가 적고 치매 진단 가능성도 낮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다만 관찰연구에서 확인된 연관성인 만큼, 치매 예방을 목적으로 호르몬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연구진은 강조했다.
미국 스탠퍼드 의대 연구진은 대규모 알츠하이머병 연구 자료를 이용해 폐경기 호르몬요법(MHT)과 알츠하이머병 관련 뇌 변화 및 치매 위험 사이의 관계를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호르몬요법은 폐경 증상 완화에 사용되는 치료법이다. 그 중 이번 연구에서 살펴본 것은 에스트로겐 단독요법으로, 일반적으로 자궁을 적출한 여성에게 사용된다. 자궁이 있는 여성의 경우 전신 에스트로겐을 단독으로 사용하면 자궁내막암 위험이 높아질 수 있어 대개 프로게스토겐을 함께 사용한다.
연구진은 미국 국립알츠하이머병 조정센터(NACC)와 알츠하이머병 신경영상 이니셔티브(ADNI) 등 두 개의 대규모 자료를 분석했다. 연구 대상은 50세 이상 여성으로, 에스트로겐 단독요법 사용 경험을 보고한 여성과 폐경기 호르몬요법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보고한 여성을 비교했다.
호르몬요법 사용 여성 부검, 알츠하이머병 병리 심할 가능성 35% 낮아
분석에는 사망 후 뇌 부검 자료가 있는 여성 2959명이 포함됐다. 이 가운데 에스트로겐 단독요법 사용자는 258명, 비사용자는 2701명이었다. 사망 당시 평균 연령은 각각 81.9세와 82.2세였다.
연구진은 뇌 조직을 조사해 알츠하이머병의 대표적인 병리적 특징인 아밀로이드 플라크와 타우 단백질로 이루어진 신경섬유 엉킴 등을 평가했다. 그 결과 에스트로겐 단독요법을 사용한 여성은 사용하지 않은 여성보다 부검에서 알츠하이머병과 관련된 뇌 병리가 심하게 나타날 가능성이 35% 낮았고, 임상적으로 치매 진단을 받을 가능성도 39%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생존해 있는 참가자들 중에서도 에스트로겐 단독요법을 받은 여성들은 기억력 검사에서 더 나은 결과를 보였으며, 일상생활에서 기능 저하 증상을 덜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에스트로겐 단독요법 사용자 110명과 비사용자 1948명의 자료 분석을 통해, 혈액과 뇌척수액에서 측정한 아밀로이드 관련 생체지표에서도 호르몬요법 사용과 더 낮은 알츠하이머병 관련 병리 부담 사이의 연관성을 확인했다.
연구 책임자인 스탠퍼드대 정신의학 및 행동과학과 하디 호세이니 부교수는 “혈액과 뇌척수액을 이용한 생체지표 연구가 크게 발전했지만 이것만으로는 뇌 손상이 정확히 어느 부위에서, 어느 정도 발생했는지 모두 파악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실제 뇌 손상이 어디에서 발생했는지 알 수 있으면, 알츠하이머병을 특징짓는 변화가 어느 부위에 얼마나 나타났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에스트로겐, 뇌에 어떤 영향 미치나
에스트로겐과 알츠하이머병의 관계는 오랫동안 연구돼 온 주제다. 폐경 이후 여성의 에스트로겐 수치가 크게 떨어지는 것이 여성의 알츠하이머병 위험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제기돼 왔기 때문이다.
연구 공동저자인 제니퍼 브루노 박사는 “동물 모델에서 에스트로겐의 신경보호 효과는 잘 알려져 있다”며 “에스트로겐은 아밀로이드가 알츠하이머병과 관련된 형태로 만들어지는 것을 줄이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타우 단백질의 탈인산화를 촉진한다. 아밀로이드와 타우는 모두 알츠하이머병의 대표적인 병리적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또 “에스트로겐은 신경세포 사이의 연결이 변화하고 적응하는 능력인 시냅스 가소성을 돕고, 신경염증을 줄이며, 혈액과 뇌 조직 사이에서 물질의 이동을 조절하는 혈액뇌장벽의 기능을 유지하는 데도 관여한다”고 덧붙였다. 브루노 박사는 “따라서 에스트로겐 단독요법을 사용한 여성에서 알츠하이머병 관련 병리가 적게 관찰된 것은 이러한 기전과 일치한다”고 말했다.
상반된 연구 결과 발표되기도...치료 시작 시점, 호르몬 종류 등 중요
다만 폐경기 호르몬요법과 치매의 관계는 단순하지 않다. 과거 일부 무작위 임상시험에서는 오히려 호르몬요법이 치매 위험을 높일 가능성이 보고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여성건강계획 기억력 연구(WHIMS)에서는 65세 이상 여성을 대상으로 한 무작위 임상시험에서 일부 호르몬요법이 치매 위험을 높일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3년 발표된 연구에서는 에스트로겐과 합성 프로게스토겐인 프로게스틴을 함께 사용했을 때 치매 위험이 높아지는 결과가 보고됐다.
따라서 현재까지 무작위 임상시험을 통해 폐경기 호르몬요법이 알츠하이머병을 예방한다는 사실이 입증된 것은 아니다. 기존 연구에서도 65세 이후 에스트로겐을 포함한 호르몬요법을 치매 예방 목적으로 시작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 지적돼 왔다.
최근에는 호르몬요법의 효과가 모든 여성에게 똑같지 않고 치료를 시작한 나이와 폐경 후 경과 기간, 사용하는 호르몬의 종류와 조합 등에 따라 달라질 가능성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특히 폐경 전후나 폐경 후 비교적 이른 시기에 치료를 시작하는 경우와 고령이 된 뒤 시작하는 경우의 뇌 건강 효과가 다를 수 있다는 가설이 연구되고 있다. 다만 이를 뒷받침하는 확정적인 임상시험 근거는 아직 부족하다.
관찰연구 한계...치매 예방 위해 호르몬 치료 시작해선 안 돼
이번 연구에는 중요한 한계가 있다. 연구진이 여성들에게 에스트로겐을 무작위로 투여한 임상시험이 아니라 과거 호르몬요법 사용 여부와 이후의 건강 상태를 비교한 관찰연구라는 점이다.
연구진 또한 에스트로겐 단독요법을 선택한 여성과 호르몬요법을 사용하지 않은 여성 사이에는 연구진이 충분히 측정하지 못한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기본적인 건강 상태나 의료서비스 이용 정도와 같은 요인이 결과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호세이니 부교수는 연구진이 알려진 교란요인을 통계적으로 보정하고 부검 대상자가 선택되는 데 따른 영향까지 고려했지만 관찰 자료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번 연구는 에스트로겐 단독요법을 중심으로 한 결과이기 때문에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토겐을 함께 사용하는 병용요법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 연구 자료가 후향적으로 수집됐다는 점도 결과를 해석할 때 고려해야 한다.
연구진 역시 이번 결과가 현재의 폐경기 호르몬요법 권고를 바꿀 근거는 아니라고 강조했다. 브루노 박사는 이번 연구가 논란이 이어져 온 분야에 실제 뇌 병리 자료를 추가했다는 데 의미가 있지만, 뇌 건강을 위해 호르몬요법을 새로 시작하거나 기존 치료를 중단할 근거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앞으로 폐경 전부터 폐경기와 폐경 이후까지 여성을 장기간 추적하면서 뇌 영상과 혈액·뇌척수액 생체지표 등을 함께 측정하는 전향적 연구와 무작위 임상시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어떤 여성에게, 어떤 종류의 호르몬을, 어느 시점에 사용하는 것이 장기적인 뇌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신경학(Neurology)》에 ‘Association Between Menopausal Hormone Therapy and Alzheimer Disease Neuropathology’라는 제목으로 게재됐다.
국내 폐경 여성 6명 중 1명꼴 호르몬요법 사용 경험
국내에서도 폐경기 호르몬요법을 사용해 본 여성은 적지 않다. 2026년 ‘Frontiers in Public Health’에 발표된 연구에서는 국민건강영양조사 자료를 이용해 2005년부터 2024년까지 국내 40세 이상 폐경 여성 1만 1407명의 호르몬요법 사용 추이를 분석했다.
그 결과 호르몬요법을 평생 한 번이라도 사용한 경험이 있는 여성의 비율은 전체 조사기간 기준 15.0%였다. 2005년에는 13.8%였지만 2024년 조사에서는 17.5%로 높아졌다. 2024년 기준으로 보면 폐경 여성 약 6명 중 1명이 호르몬요법을 사용해 본 경험이 있는 셈이다.
대한폐경학회의 2025년 폐경호르몬요법 진료지침에 따르면 폐경기 호르몬요법은 안면홍조와 발한 같은 혈관운동증상과 폐경비뇨생식기증후군 등을 치료하는 데 효과적인 방법이다. 어떤 호르몬요법을 사용할지는 자궁 유무와 개인의 증상, 건강 상태와 위험 요인 등을 고려해 결정한다.
[자주 묻는 질문]
Q1. 폐경기 에스트로겐 치료를 받으면 치매를 예방할 수 있나요?
A. 아직 그렇게 볼 수 없습니다. 이번 연구에서는 에스트로겐 단독요법 사용자에게 알츠하이머병 관련 뇌 병리와 치매 진단 가능성이 낮게 나타났지만, 관찰연구이기 때문에 에스트로겐이 직접 치매를 예방했다고 입증한 것은 아닙니다. 연구진도 치매 예방을 목적으로 호르몬요법을 시작하거나 중단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Q2. 에스트로겐 단독요법은 모든 폐경 여성에게 사용할 수 있나요?
A. 아닙니다. 에스트로겐 단독요법은 일반적으로 자궁을 적출한 여성에게 사용합니다. 자궁이 있는 여성이 전신 에스트로겐을 단독으로 사용하면 자궁내막암 위험이 높아질 수 있어 자궁내막을 보호하기 위해 대개 프로게스토겐을 함께 사용합니다.
Q3. 과거에는 호르몬요법이 치매 위험을 높인다는 연구도 있지 않았나요?
A. 있습니다. 여성건강계획 기억력 연구(WHIMS)에서는 65세 이상 여성에게 일부 호르몬요법을 사용했을 때 치매 위험이 높아지는 결과가 보고됐습니다. 호르몬요법이 뇌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치료 시작 연령과 폐경 후 경과 기간, 호르몬의 종류와 조합 등에 따라 달라질 가능성이 있어 추가 연구가 필요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