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7월 15일 (수)

미프진 처방을 의사 재량에?…산부인과 개원의들 발끈한 까닭

이틀 연속 성명…불법 해외구매 해소엔 공감, 처방 주수·응급대응·법적 책임 기준 요구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산부인과 진료실에서 임신부가 의사와 상담하고 있다. 임신중지 의약품 도입 논의를 두고 산부인과 개원의 단체들은 처방 가능 시기와 사후관리, 의료진의 법적 책임 기준을 먼저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 없음.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약을 처방할 재량을 주겠다는데, 산부인과 개원의들은 왜 '정부의 책임 떠넘기기'로 받아들였을까.

직선제 대한산부인과개원의사회는 15일 성명을 내고 임신중지 의약품 ‘미프진’을 의사의 판단에 따라 사용하도록 하기 앞서 처방 가능한 임신 주수와 사후관리 방법, 의료진의 법적 책임부터 분명히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14일 대한산부인과의사회도 같은 문제를 제기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불법 해외 구매를 방치하지 말고 현실적인 해법을 찾아보자고 주문하자, 두 산부인과 개원의 단체가 이틀 연속 반발한 것이다.

두 단체가 특히 민감하게 받아들인 대목은 미프진 ‘도입’보다 ‘의사의 양심과 전문적 재량’이었다. 법률이 정해야 할 허용 범위와 사고 책임까지 진료 현장의 의사가 떠안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불법 구매 방치 안 돼”…도입보다 ‘준비 없는 허용’ 반대

직선제 대한산부인과개원의사회가 미프진 자체를 무조건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아니다.

이 단체는 성명에서 여성들이 불법 유통 경로로 검증되지 않은 약을 구매해 복용하는 현실을 우려한다며 “합리적인 제도 마련의 필요성에 전적으로 공감한다”고 밝혔다. 약물적 임신중지가 법과 제도의 빈틈에 방치돼서는 안 된다는 점에도 이견이 없다고 덧붙였다.

다만 국가가 처방 기준을 세우지 않은 채 판단을 의사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임신 주수와 처방 대상, 금기사항, 사전검사, 추적관찰, 응급대응 기준을 담은 국가 진료지침부터 마련해야 한다는 요구다.

약을 복용한 뒤 심한 출혈이나 감염, 임신 조직이 완전히 배출되지 않는 불완전 임신중지가 발생하면 어떤 기준으로 진료의 적절성과 의사의 책임을 가릴지도 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명에는 '초법적 허용', '의료 재앙'과 같은 거친 표현도 담겼다. 다만 의학적 안전 조건이 갖춰지면 제도 마련에 협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미프진 도입 자체보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의사에게 판단과 책임을 맡기는 방식에 반대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전날에는 “강행하면 전면 거부”…두 단체 요구는 비슷

대한산부인과의사회도 14일 성명을 내고 대체입법과 안전관리 체계 없이 미프진 사용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 단체는 처방 가능한 임신 주수와 부작용 책임을 의사의 재량에 맡기면 의료분쟁이 늘 수 있다며, 정부가 도입을 강행할 경우 전면 거부 운동에 나설 수 있다고 밝혔다. 투약 전 임신 주수와 위치를 확인하고 복용 뒤 경과까지 살필 수 있는 관리체계도 요구했다.

표현에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두 단체의 요구는 비슷하다. 불법 구매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데는 동의하면서도 처방 기준과 응급대응 체계, 의료진의 법적 보호장치를 먼저 마련하라는 것이다.

이 대통령 발언은 ‘당장 허용’ 아닌 해법 검토

두 단체가 성명을 내 이유는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14일 국무회의에서 미프진이 국내에서 허용되지 않아 필요한 여성들이 해외에서 직접 구매해 복용하고, 이 과정에서 사고까지 발생한다며 “방치하는 게 옳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여성의 건강 상태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는 만큼 법으로 일률적인 임신 주수만 정하는 것이 반드시 정답은 아닐 수 있다며, 의사의 양심과 전문적 재량에 맡기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관계 부처에는 절충안을 찾아보라고 주문했다.

미프진을 기준 없이 즉시 허용하자는 정책 발표라기보다, 불법 유통으로 밀려난 현실을 제도권 안에서 관리할 방법을 찾아보자는 제안에 가깝다. 다만 법적 기준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의사 재량’이 거론되면서 누가 최종 판단과 책임을 맡을 것인지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개원의에게 ‘재량’이 권한보다 부담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유

통상 의사의 재량은 환자 상태에 맞춰 치료법을 고르는 전문적 권한을 뜻한다. 다만 임신중지는 의료 판단만으로 풀기 어려운 문제가 얽혀 있다. 임신 몇 주까지 처방할 수 있는지, 미성년자의 동의는 어떻게 받을지, 처방을 원하지 않는 의사의 선택권을 인정할지 등을 함께 정해야 한다. 사고가 났을 때 민사·형사 책임을 가를 기준도 필요하다.

개원의는 약을 처방한 의사로서 의료기관 운영자이기도 한 경우가 많다. 환자가 밤이나 주말에 출혈과 통증을 호소하면 어디까지 상담해야 하는지, 수혈이나 수술이 필요할 때 어느 병원으로 보내야 하는지, 환자가 추적진료를 받지 않으면 책임을 어떻게 나눌지가 모두 현실적인 문제가 된다.

대학병원은 대체로 응급실과 수술실, 입원 진료를 한 기관 안에서 연계할 수 있지만 산부인과 의원은 응급수술이나 수혈 시설을 갖추지 않은 곳이 적지 않다. 처방은 의원에서 하고 합병증 치료는 다른 병원이 맡게 될 수 있다. 전원 기준과 기관별 책임을 미리 정하지 않으면 분쟁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임신 유지에 필요한 호르몬인 프로게스테론의 작용을 막는 약인 미페프리스톤을 처방하려면, 의료진이 환자가 약을 사용해도 되는 상태인지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규정한다. 수술이 필요할 경우 직접 치료하거나 다른 의료기관으로 연결할 수 있어야 하며, 환자가 응급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대비해야 한다.

이런 현실에서 개원의에게 ‘재량’은 자유로운 진료권보다 국가가 정하지 못한 기준과 사고 위험을 개인이 떠안으라는 말로 들릴 수 있다. 산부인과 학술단체보다 개원의 권익을 대변하는 두 단체가 먼저 강하게 반응한 이유로 풀이된다.

아울러 개원의 단체가 응급대응 체계 마련을 요구하는 배경에는 약물 복용 뒤 출혈이나 불완전 임신중지 등이 발생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는 우려가 있다.

이에 따라 정부가 제도를 설계할 때 상담과 추적관리, 야간 연락, 전원 조정을 어느 기관이 맡을지 분명히 하고, 필요한 인력과 비용의 부담 주체도 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초음파 검사, 모든 환자에게 의무화?

개원의 단체가 강조한 임신 주수 확인과 자궁외임신 배제, 응급대응 체계는 약물적 임신중지를 안전하게 시행하기 위해 검토할 사안이다.

다만 복용 전 초음파 검사를 모든 환자에게 의무화할 것인지는 별도의 쟁점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초음파 검사를 모든 환자에게 일률적으로 요구하지 않는다. 임신 기간이 불확실하거나 자궁외임신이 의심되는 등 의학적으로 필요한 경우에 시행하도록 권고한다. 미국 식품의약국(FDA)도 모든 환자의 대면 진료나 초음파를 의무화하지는 않지만, 처방 의료진이 임신 기간과 자궁외임신 가능성을 판단하고 응급진료나 수술로 연결할 수 있도록 요구한다.

한국 도입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초음파를 일괄 의무화할지보다 어떤 환자에게 필요한지, 합병증이 발생하면 어느 의료기관이 대응할지를 구체적으로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허가 심사도 법적 공백에 묶여

한국에서는 현대약품이 미페프리스톤과 미소프로스톨을 함께 사용하는 ‘미프지미소’의 품목허가를 신청했고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심사하고 있다. 식약처는 임신중지를 허용하는 기간 등이 법률로 정해져야 효능·효과와 위해성 관리계획 등 일부 허가자료를 확정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대통령의 발언만으로 곧바로 허가할 수 있는 구조는 아니라는 뜻이다.

헌법재판소는 2019년 형법상 낙태죄 조항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고 2020년 말까지 법을 고치도록 했다. 그러나 국회가 시한 안에 대체입법을 마련하지 못하면서 처벌 조항은 이미 효력을 잃었다. 임신중지를 허용하는 시기와 절차를 둘러싼 법적 공백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미프진 논쟁은 약 하나를 허가할 것인지에 그치지 않는다. 누가 처방하고 어디에서 관리할지, 어느 시기까지 사용할지, 응급상황과 의료분쟁의 책임을 어떻게 나눌지를 함께 정해야 한다.

물론 불법 해외 구매를 그대로 두는 것도 답이 아니다. 그렇다고 법과 제도의 빈자리를 의사 개인의 판단만으로 메울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정부가 처방 가능한 시기와 대상, 사후관리 방법, 책임 분담 기준을 구체적으로 내놓아야 여성의 안전한 접근권과 의료진의 우려를 함께 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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