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필이면 작년에 딱 한 번….”
동해 바다 수온이 올라가는지, 대기가 더워지면서 좀 답답하게 느껴지던 초여름이었다.
지인의 아내인 그녀를 병실에서 처음 만났다. 매년 남편의 직장에서 제법 완벽에 가까운 종합건강검진을 꼬박꼬박 받아오던 터였다. 그래서 딱 한 번, 작년 종합검진을 받으면서 유방 엑스레이 검사만 거부했다. 지금까지 아무 문제가 없었으니 그래도 될 거라고 믿었다.
유방 검사는 플라스틱 압박 판 사이에 유방을 끼워 넣고 최대한 납작하게 눌러 엑스레이를 찍는데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아팠다. 이 검사를 받아본 여성이면 누구나 진절머리를 쳤다. 재작년에는 유방 초음파 검사까지 했지만 결과는 정상이었다. 그러니 딱 한 번만 건너뛰고 다음번에는 꼭 검사해야지.
그후 유방에 대해서는 까마득하게 잊고 지냈다. 전문직 커리어우먼이었던 그녀는 늘 일에 쫓겨 바쁜 일상을 보냈다.
올해 건강검진에서는 하나도 빼먹지 않고 다시 착실하게 검사를 받았다. 이번에도 유방 촬영 검사는 여전히 고통스러웠다.
‘우측 유방 상외측에 미세석회화가 있음. 이전 검사에 없던 새로운 병변이며 악성의 가능성이 매우 높으므로 추가 영상검사와 조직검사를 권유함.’
검사 후 받아본 결과지에는 청천벽력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오른쪽 가슴을 만져보니 동전보다 커다란 멍울이 잡혔다. 겨드랑이에도 크고 작은 멍울이 만져졌다.
“일하느라고 내 몸에 이상이 생긴 것도 몰랐어요. 작년에 가까운 병원에서 유방 초음파검사라도 해 볼 생각이었는데 바빠서 그만 깜빡했어요.”
입원 초기 그녀와 나눈 대화는 이게 전부였다. 정밀 검사가 하나씩 둘씩 진행되는 동안 그녀는 말도, 행동도 점점 굳어져 갔다. 모든 게 귀찮다는 듯 침대 위에서 등을 돌리고 누워 묻는 말에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원래라면 씩씩하고 애교가 많았을 귀염상이었다. 아직 쉰도 안된 그녀는 이 모든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듯, 어떤 감정도 읽을 수 없는 무표정한 얼굴이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매일 아침 나는 나쁜 소식만 전하는 의사였다.
“조직검사 결과 악성 소견이 확인됐어요. 성장과 분열 속도가 빠르고 공격적인 성향을 지닌 암이예요. 오른쪽 겨드랑이 임파선에도 전이가 된 것으로 보입니다.”
“……”
“흉추 8-12번에 뼈 전이 소견이 있어요. 그동안 등이나 허리가 아프진 않으셨어요? 진통제를 좀 드릴까요?”
“……”
입을 닫아버린 그녀를 위로할 무슨 말이라도 건네고 싶었다. 그동안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오느라 고생했다, 이제라도 발견했으니 내 몸 고치는 일에만 집중하자, 호르몬 수용체 검사에서 항암제가 잘 듣는 것으로 결과가 나오면 치료가 잘 될 수 있다, 아이들과는 자주 통화하느냐, 애들 생각해서라도 힘 내보자….
이런 말을 건넬 때마다 그녀는 돌아누운 어깨를 들썩이며 다시 한번 뒤척일 뿐이었다. 먹먹한 침묵만을 남겨 둔 채 병실을 나왔다.
수술로 완치를 기대하기는 이미 늦은 상황이었지만, 수용체 검사 결과에 기대를 걸어보기로 하고 우선 전이된 척추 부위에 방사선치료를 시작했다. 암이 폐나 간, 뇌 등 다른 장기로 가지 않고 뼈에만 전이된 경우는 예후도 훨씬 좋고 통증 조절도 잘 된다.
방사선치료 이틀째, 수용체 관련 면역조직화학 검사 결과가 나왔다.
“유방암과 관련된 에스트로겐 호르몬 수용체와 프로게스테론 호르몬 수용체, HER2 수용체가 모두 양성으로 나왔어요. 세 가지 모두 양성이면 항호르몬제나 항암제가 매우 효과적입니다.”
암세포가 먹고 자라는 호르몬 분비를 차단하는 항호르몬제와, 암세포 성장을 촉진하는 HER2 단백질만 골라 공격하는 표적치료제를 강력한 무기로 쓸 수 있다는 게 무엇보다 다행이었다.
“……”
그래도 묵묵부답. 막 방사선치료를 받고 온 터라 속이 울렁거리는지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항구토제를 추가로 더 드리겠다는 말만 더하고 물러났다.
다음날 오후 종양내과가 정한 프로토콜대로 서둘러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워낙 심신이 지쳐있는 환자인데 항암제 때문에 더 힘들어하지는 않을까, 온 신경이 그녀의 병실쪽으로 쏠렸다. 3시간 가량에 걸쳐 항암제가 무사히 다 들어갔다고 간호사가 전해왔다.
항암제가 다 들어가고 30분쯤 지난 저녁 무렵, 환자가 37.8도의 미열과 함께 부들부들 떨며 추워한다는 보고가 왔다. ‘이런…. 항암제 말고 또 다른 열 나는 문제가 생긴 걸까.’
곧바로 달려가 기침 가래는 없는지, 설사는 안 하는지, 소변 볼 때 통증은 없는지 이런저런 질문을 하며 진찰했다. 그녀는 여전히 등을 돌리고 누워 ‘네’, ‘아니오’ 라고 짧게 대답했다. 다른 이상은 없는 것 같고 항암제 때문에 열이 날 수 있다고 안심시킨 후 응급으로 해열제를 처방했다.
다음 날 아침, 병실에 들어서자 그녀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앉아 있었다.
“해열제 한 알이 이렇게 대단한 약인 줄 몰랐어요. 어제 항암제 주사를 맞고 열 나면서 죽을 듯이 힘들었는데 이제 살 것 같아요.”
처음으로 밝게 웃는 그녀를 보며 일주일 내내 졸여왔던 가슴을 쓸어내렸다. 밤새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어떤 이유였든 다시 일어서려는 모습이 너무도 고마왔다.
“이제 아주 긴 여정이 될 거예요. 힘드시겠지만 항암치료 꾸준히 하시면 암이 진행되지 않는 상태로 오랫동안 잘 지내실 수도 있어요. 너무 지루하실 때는 우리 병원에서 하는 미술교실이나 식이요법교실 같은 암환자 모임에 참여하시면 마음 건강관리에 도움이 될거구요.”
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쫑긋 귀를 기울였다.
8박 9일의 폭풍 같은 시간을 견뎌낸 그녀는 앞으로는 종양내과 외래에 다니면서 방사선, 항암치료를 받기로 하고 퇴원했다. 병동에서는 두 달 정도 후 항암반응평가 정밀 검사를 하러 입원할 때야 그녀를 만날 수 있다. 다음 번에는 암세포들이 기적처럼 사라져 있기를 바라며 그녀를 배웅했다.

<편집자주>
입원전담전문의(호스피탈리스트)는 병동에 상주하며 가장 가까이에서 입원환자를 돌보는 의사를 말한다. 2016년 시범사업으로 시작된 입원전담의 제도는 2021년 본사업으로 전환되어 올해 꼭 10년을 맞는다.
'호스피탈리스트 다이어리'는 이들이 병동에서 환자들을 만나고 치료하고 퇴원시키며 하루하루 쌓아가는 작은 순간들의 기록이다. 환자와 보호자, 다른 의료진, 그리고 입원전담의 자신에 대한 고백까지, 이 연재(주1회)를 통해 병원 안에서 겪는 '사람 사는 이야기'를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대한입원의학회 도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