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자가 첫 항암 치료를 위해 입원한 날이었다. 큰 키에 머리에는 가벼운 웨이브가 있는 40대 미혼 남성이었다.
침상 커튼을 걷자, 그는 짙은 베이지색 강아지 인형을 양팔로 꼭 안고 앉아 있었다. 품 안에 꽉 찰 정도의 크기였다. 인형 얼굴도 내 쪽을 향한 채, 마치 ‘이 친구도 같이 들어야 해요’라는 듯한 자세였다. 인형을 안고 있는 40대 남성의 모습이 낯설었다. 그는 이후로도 입원할 때마다 강아지 인형과 함께였다. 보호자로는 늘 어머니가 있었다.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던 어느 날, 그가 병실 침대에 앉아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연필로 그린 밑그림 위에 색연필로 색을 입히고 있었다. 커다랗고 동그란 눈을 가진 엄마 소와 아기 소가 나란히 서 있는 그림이었다. 각각 파스텔 톤의 하늘색과 분홍색 목도리를 두르고 있었고, 목도리 색깔에 맞춘 신발을 신고 있었다. 동화책의 한 장면 같기도 했다. 그저 두 마리의 소가 서 있을 뿐인데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지는 그림이었다.
알고 보니 그는 미술을 전공한 화가였다. 그림이 마음에 든다고 말하자, 휴대전화를 꺼내 본인이 작업했던 작품들을 한참 보여주었다. 대부분 동물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었다. 강아지, 곰, 양, 송아지. 동물들은 하나같이 선한 눈망울을 하고 있었고 누가 보아도 사랑스러웠다. 어떤 작품은 동물들이 손을 잡고 있었고, 어떤 작품은 그냥 함께 서 있었다. 혼자 있는 동물은 다른 누군가를 향하듯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작품들은 어렵지 않았다. 보고 있으면 어린아이를 바라볼 때처럼 웃음이 났고, 나까지 잠시 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작품을 보여주는 동안 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조금 빨라졌다. 어떤 작품을 설명할 때는 손가락으로 휴대전화 화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친구는 혼자 있는 게 아니에요. 옆에 있던 애가 잠깐 어디 간 거예요.”
그의 작품들을 보다 보니 그가 강아지 인형을 소중히 안고 있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암성 통증과 반복되는 구토로 충분히 지칠 만한 상태인데도 그는 놀라울 만큼 밝았다. 때로는 너무 긍정적이어서 신기할 정도였다.
“어제 다섯 번 토하기는 했는데 양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어요.”
“배가 좀 아프긴 한데, 진통제 조절하면서 점점 괜찮아지는 것 같아요.”
그의 그림 속 커다란 눈망울의 강아지 한 마리가 나를 보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큰 눈으로, 순하게, 담담하게.
두 달쯤 지났을까. 아침 회진 때 그가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멜빵 청바지를 입은 곰돌이 한 마리가 아이스크림을 들고 있는 그림이었다. 곰돌이는 웃고 있었다. 그의 정성이 고마웠지만 통증과 구토를 견뎌내며 그림을 그렸을 모습이 눈앞에 그려져 가슴 한편이 저려왔다. 그림을 집으로 고이 가져와서 액자에 넣었다.
한동안은 치료가 잘 되는 듯했다. 항암치료와 우회술 이후 복통도 줄었고, 영상검사에서도 암이 조금 감소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암은 결국 다시 나빠졌다. 1년쯤 지나자 암이 진행하기 시작했고, 바꾼 항암제도 잘 듣지 않았다.
그는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졌다. 여동생도 어머니와 함께 그의 곁을 지키기 시작했다. 더 이상 그가 병실에서 그림을 그리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휠체어를 타고 잠깐 병실 밖으로 나오는 것조차 힘들어했다. 때로는 눈을 뜨고 있는 것도 힘들어 보였다. 나와 대화 중에도 중간중간 조는 듯 눈을 감았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려는 듯 눈을 다시 크게 뜨고를 반복했다.
어느 순간부터 그는 더 이상 강아지 인형을 안고 있지 않았다. 늘 누워 있었다. 강아지 인형도 이제는 머리맡에 조용히 누워 있었다. 그때 보호자 침대를 보다가 우연히 발견했다. 거기에도 똑같은 강아지 인형이 하나 더 있었다.
“강아지가 한 마리가 아니네요?”
여동생이 말했다.
“언니랑 오빠랑 저랑 한 마리씩 갖고 있어요.”
삼 남매라서 총 세 마리라고 했다. 그 말을 듣던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돌려 벽만 바라보았다. 세 남매가 각자의 방에서, 각자의 자리에서 똑같은 인형을 하나씩 안고 있는 모습이 그려졌다. 아프기 전부터 그랬을 것이다. 아프고 나서도 그랬을 것이다.
그는 점점 컨디션이 떨어졌다. 본인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제 저도 정리를 좀 해야 할 것 같아요.”
담담한 말투였다. 마치 전시가 끝난 뒤 작업실을 정리해야 한다는 이야기처럼. 그의 말에 선뜻 대답할 수가 없었다.
이후로 집에 돌아오면 자꾸만 액자 속 곰돌이가 눈에 들어왔다. 복슬복슬한 털을 가진 곰돌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웃고 있다. 그가 아파해도, 구토를 해도, 눈물을 흘려도, 아무 일도 없다는 얼굴로. 그의 곰돌이는 웃고 있다.

<편집자주>
입원전담전문의(호스피탈리스트)는 병동에 상주하며 가장 가까이에서 입원환자를 돌보는 의사를 말한다. 2016년 시범사업으로 시작된 입원전담의 제도는 2021년 본사업으로 전환되어 올해 꼭 10년을 맞는다.
‘호스피탈리스트 다이어리’는 이들이 병동에서 환자들을 만나고 치료하고 퇴원시키며 하루하루 쌓아가는 작은 순간들의 기록이다. 환자와 보호자, 다른 의료진, 그리고 입원전담의 자신에 대한 고백까지, 이 연재(주1회)를 통해 병원 안에서 겪는 ‘사람 사는 이야기’를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대한입원의학회 도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