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강한 20대 남성이 몸에 열이 나고 목구멍이 아파 해열진통제 한 알을 먹었다. 이후 하루 만에 온몸에 붉은 반점과 물집이 생기고, 피부가 화끈거리고 만지기만 해도 통증이 생기는 등 심각한 발진 증상이 나타나 병원을 찾았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 라시드 병원 및 모하메드 빈 라시드 의대 연구팀은 27세의 건강한 남성이 시중에서 구하기 쉬운 해열진통제 이부프로펜 400mg 한 알을 먹은 뒤 극심한 약물 부작용을 겪은 사례를 학계에 보고했다. 이 남성은 이부프로펜 복용 나흘 만에 피부의 90%가 벗겨지고 눈·입·생식기 기능에 이상이 생기고, 대장에 구멍이 뚫리고, 심지어 두 번이나 심장이 멈추는 상황을 겪었다.
연구팀에 의하면 이 환자는 발열과 인후통 증상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통상적인 해열진통제 복용량(200~400mg)에 해당하는 400mg 알약 하나를 복용했지만 뜻밖의 심각한 증상이 나타났다. 약을 먹은 지 하루 만에 심한 발진과 함께 입(구강), 눈(안구), 생식기(요도) 등의 점막에 심한 염증이 생겨 음식을 잘 삼키지 못하고, 눈을 잘 뜨지 못하고, 소변을 잘 보지 못했다. 검사 후 입원해 각종 치료를 받았지만 두 차례나 심폐 정지를 일으켰다.
환자는 초기에 지역 클리닉에서 스테로이드 처방을 받았으나 병세의 급격한 악화를 막지 못했다. 첫 증상이 나타난 지 나흘째 대학병원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 환자의 상태는 매우 심각했다. 온몸 체표면적의 90%나 되는 피부가 괴사해 벗겨졌고, 검사 결과 사망 위험이 약 35%나 되는 것으로 분석됐다. 의료진은 생검을 통해 피부의 전층이 죽어서 진피와 분리되는 ‘독성 표피 괴사 융해증(TEN)’ 이라는 진단을 최종적으로 내렸다.
의료진은 화상 병동에서 에타너셉트와 면역글로불린 투여 등 치료에 집중했으나 합병증이 온몸의 장기에서 발생했다. 입원 기간 중 염증 수치는 정상치의 수백 배(9.4ng/mL)까지 치솟았고 급성 콩팥 손상과 피 엉킴증(파종성 혈관 내 응고증)이 뒤따랐다.
환자는 입원 30일째 갑작스러운 심폐 정지로 쓰러졌으며, 응급 수술 과정에서 대장의 일부(횡행결장)에 2mm 크기의 작은 구멍이 뚫린 천공이 확인됐다. 심정지 후 소생술을 통해 생명을 건졌지만 의식이 매우 흐릿했고 심한 뇌 손상(중증 저산소성 뇌 손상)을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중증 TEN 환자에게서 원인 불명의 패혈증이나 대사 이상이 나타나면, 위장관 천공 등 합병증 가능성을 의심하고 즉각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연구 결과(Concurrent Gastrointestinal Perforation and Cardiopulmonary Arrest in Toxic Epidermal Necrolysis: A Case of Profound Multi-organ Involvement)는 최근 국제 학술지 《큐레우스(Cureus)》에 실렸다.
이부프로펜 한 알의 비극, ‘면역체계의 자폭’이 부른 참사
타이레놀(성분명 아세트아미노펜)과 이부프로펜(성분명 이부프로펜)은 널리 쓰이는 해열진통제다. 타이레놀은 열을 내리고 통증을 완화해주며, 이부프로펜은 열을 내리고 통증을 누그러뜨리는 것에 더해 염증을 가라앉혀준다.
평소 건강하던 20대 남성이 누구나 흔히 복용할 수 있는 이부프로펜 한 알에 자칫 목숨을 잃을 뻔했다. 이 사례의 핵심 원인은 약물의 독성이 아니라 면역 체계의 오작동이다. 이런 치명적인 증상은 알고 보니 ‘독성 표피 괴사 융해증(TEN)’이었다. 이 병증은 인구 100만 명당 1~2명꼴로 발생한다.
일반적인 약물 부작용은 너무 많은 양의 약을 먹어서 생기지만, TEN은 용량과 관계없이 특정 성분이 몸속의 면역 세포를 잘못 건드려 발생한다. 일종의 특이 체질적 반응이다. 인체를 지키는 면역세포인 T세포가 이부프로펜 성분을 만나면 피부와 점막 세포를 적으로 오인해 일제히 공격을 가할 수 있다.
특히 이 환자는 몸 대부분의 피부가 벗겨지는 현상(박리), 대장에 구멍이 뚫리는 현상(천공) 외에 심폐정지까지 나타나 충격적이다. 점막은 인체 내부를 보호하는 방어막인데 입과 눈뿐만 아니라 식도와 위, 대장의 점막까지 면역 세포의 공격을 받아 허물어지면서 장기 자체가 파괴됐다. 이는 TEN 환자 중에서도 극히 일부에서만 나타나는 매우 치명적인 합병증이다.
피부가 전신의 90%나 벗겨지면 몸은 중화상을 입은 것과 다름없다. 보호막이 사라진 틈으로 세균이 마구 들어와 패혈증이 생기고, 체액이 빠져나가면서 심장과 콩팥이 기능을 멈춘다. 환자가 두 차례나 심폐정지를 겪고 뇌 손상까지 입은 것은 바로 이런 연쇄적인 장기 붕괴 과정에서 비롯됐다.
일반적으로 이부프로펜은 TEN을 일으키는 주요 약물 중 하나로 꼽힌다. 특정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 특정 약물을 만날 경우, 이런 심각한 부작용을 빚는다. 어떤 약물을 복용한 뒤 감기 증상과 함께 피부가 따갑거나 입술, 안구 점막이 헐기 시작하면 단순 몸살로 가볍게 보지 말고 즉시 큰 병원을 찾아야 한다. 초기에 면역을 억제하는 치료를 시작하면 전신 붕괴를 막을 수 있다.
[자주 묻는 질문]
Q1. 흔한 해열진통제 이부프로펜 400mg은 위험할 정도로 많은 양인가요?
A1. 아닙니다. 성인 1회 권장 복용량(200~400mg)에 해당하는 지극히 통상적인 양입니다. 이번 사례는 약의 용량이 많아서 생긴 독성 반응이 아니라, 특정 약물 성분에 대해 환자의 면역 체계가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해 생긴 특이 체질적 면역 사고입니다.
Q2. 약을 먹은 뒤 어떤 증상이 나타날 때 ‘독성 표피 괴사증(TEN)’을 의심해야 하나요?
A2. 약물 복용 후 감기나 몸살 증상과 함께 피부가 붉게 변하고 따갑거나 통증이 느껴질 때, 특히 입술·눈·생식기 등 점막 부위가 헐거나 물집이 생기면 TEN을 의심할 수 있습니다. 이런 증상은 단순 발진보다 훨씬 더 급격히 진행되므로 즉시 약 복용을 중단하고 대형 병원 응급실을 찾아야 합니다.
Q3. 이부프로펜 외에 다른 약도 이런 치명적인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나요?
A3. 네, 그렇습니다. 이부프로펜과 같은 비스테로이드성 항염증제(NSAID)는 물론 일부 항경련제, 항생제, 통풍 치료제 등도 TEN을 일으킬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약물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특정 유전적 소인을 가진 사람의 면역 체계와 약물 성분이 만났을 때 일어나는 희귀한 반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