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강남의 한 피부과에서 의사 2명이 향정신성의약품에 스스로 중독된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 원장 A씨와 소속 의사 B씨다.
두 사람은 이 약의 위험성을 누구보다 정확히 아는 것은 물론 처방전을 발행하고 약품 금고를 관리하던 이들이었다. 그런데도 외국인 환자 3400여 명의 개인정보를 몰래 훔쳐 허위 처방전 4331장을 만들고, 병원 금고 속 프로포폴까지 빼내 스스로에게 투약한 혐의를 받고 있다. 두 사람은 마약류관리법·의료법·개인정보 보호법 위반 혐의로 지난달 25일 구속됐다.
위험을 가장 잘 아는 사람조차 이 약 앞에선 무너질까
건강검진 때 수면내시경을 받아본 적이 있다면 이미 프로포폴을 경험했을 가능성이 크다. 환자가 처방전을 들고 약국에서 약을 타 오는 방식이 아니라, 병원이 자체 구비한 약을 시술 당일 의료진이 직접 놓아주는 방식이라 정작 본인은 '처방받았다'고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2025년 한국에서 의료용 마약류를 이런 식으로 한 번이라도 투여·처방받은 사람이 2020만 명, 국민 10명 중 4명꼴이었다. 다만 이 숫자 대부분은 의료진 감독 아래 단 한 번, 정해진 용량만 사용한 안전한 경우다.
관리의 테두리를 벗어나 반복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문제가 된다. 앞으로 형사재판을 받게 된 두 의사가 바로 그 경계를 넘은 대표적인 인물이다.
뇌를 이중으로 잠그는 약
우리 뇌에는 '흥분 신호를 켜는 스위치'와 '흥분 신호를 끄는 브레이크'가 동시에 존재한다.
프로포폴은 이 두 가지에 한꺼번에 작용한다. 먼저 GABA라는, 뇌를 가라앉히는 신호를 받는 자리(GABA-A 수용체)를 자극해 브레이크를 세게 밟는다. 동시에 NMDA라는, 뇌를 흥분시키는 신호를 받는 자리를 막아버려서 액셀조차 밟지 못하게 만든다. 브레이크는 세게 밟고 액셀은 원천봉쇄하니, 뇌는 순식간에 깊은 진정 상태로 빠진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프로포폴은 뇌 안의 '보상 회로'라 불리는 부위, 정확히는 측좌핵이라는 곳에서 도파민이라는 물질을 왈칵 분비시킨다. 도파민은 우리가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좋아하는 일을 할 때 나오는, '기분 좋다'는 신호를 만드는 물질이다. 뇌를 강제로 재우는 동시에, 그 순간 강렬한 행복감까지 함께 선물하는 셈이다. 이 약을 맞은 사람들이 "정말 개운하다", "찰나에 깊이 잔 것 같다"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졸피뎀도 원리는 비슷하다. GABA 수용체를 자극해 잠을 유도한다. 자꾸 쓰다 보면 뇌가 그 자극에 점점 무뎌진다. 그래서 처음과 같은 효과를 보려면 조금씩 더 많은 양이 필요해진다. 몸이 약에 적응하면서 차츰 중독되는 것이다.

"안전해 보인다"는 게 가장 위험한 신호
프로포폴은 몸속에 퍼지는 속도와 빠져나가는 속도 모두 빠르다. 주사 몇 초 만에 효과가 오고, 10분 안팎이면 다시 말짱해진다. 다음날 업무나 인지 기능에 지장을 남기지 않는다.
이 '안전해 보이는 느낌'이 사용량을 조금씩 늘리는 발판이 된다. 위험한 약은 위험해 보이지 않을 때, 가장 멀쩡해 보이는 사람부터 무너뜨린다.
아는 사람도 못 이긴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불안, 긴장, 수면 부족에 시달리는 직군일수록 이런 중독이 잦다고 설명한다. 스트레스가 클수록 뇌는 즉각적인 쾌감 자극에 더 강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이런 반응이 반복될수록 뇌는 그 자극을 점점 더 필요로 하게 되면서 심리적 의존이 시작된다.
프로포폴과 졸피뎀은 몸이 아니라 마음을 붙잡는 약이다. 신체적 금단 현상은 약해도, 심리적 의존은 유달리 강하다. 몸이 아프지 않으니 의지로 참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정작 무너지는 건 의지가 아니라 그 쾌감을 다시 찾으려는 갈망이다.
위험성을 가장 잘 아는 전문가들조차, 혼자 힘으로는 끊어내지 못한다. 스스로 중독을 인정하고 정신과에 입원 치료를 자청한 의사까지 나왔을 정도다.
막으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프로포폴이나 졸피뎀을 처방받으려고 같은 시술을 여러 병원에서 반복해서 받거나, 처방받은 약을 예정보다 빨리 다 쓰거나, 약효가 없을 경우 곧바로 불안·초조함을 느낀다면, 이는 이미 위험 신호다. 이럴 땐 정신건강의학과나 지역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를 찾아가야 한다.
정부 역시 심각성을 알고 있다. 대응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1일 '의료용 마약류 특별감시단'을 출범시켜 처방 이력을 실시간으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동안 이 감시망에서 비켜나 있던 프로포폴도 오는 8월부터는 실시간 투약 이력 확인 대상에 새로 들어간다. 여기에 인공지능이 오남용 패턴을 잡아내는 통합감시시스템도 올해 안에 구축을 마칠 예정이다.
문제는 이런 조치 대부분이 '약을 받는 사람'을 들여다보는 데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 이번 사건처럼 처방 권한을 쥔 의료인 본인이 무너지는 경우를 막으려면 달리 접근해야 한다. 의료기관 내부에서 약품 재고를 이중으로 확인하는 절차, 중독에 빠진 의료인이 면허 박탈부터 걱정하지 않고 치료를 먼저 받을 수 있는 회복 지원 통로가 함께 마련돼야 하는 이유다. 처벌이 두려워 숨기는 한, 이런 사례는 앞으로도 뒤늦게야 드러날 수밖에 없다.
위험을 가장 잘 아는 두 사람마저 이 약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졌다. 이 사실이 남기는 질문은 하나다. 앞서 말한 신호들, 나와 내 가족에게는 정말 없을까.





